귀와 마음에 영원히 걸어 놓을 아티스트
앨범이 나오면 보통 수록곡 전부를 들어보는 편이다. 예전엔 정말 정말 좋아하는 몇몇 아티스트들을 제외하곤 그냥 타이틀곡만 후딱 맛보고 플레이리스트에 남겨둘지 지울지 결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는데, 이제는 단 한 톨의 관심이라도 있는 이들의 신보라면 일단 다 들어본 후 마음을 건드리는 곡들을 선별하여 리스트를 꾸린다.
그렇게 타이틀곡만큼, 어쩌면 보다 더 좋은 곡들을 종종 마주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냥 지나쳤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안도감과 애틋한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쾌감이 두근거림을 배가시킨다. 그런 식으로 쌓아가는 리스트의 밀알들은 나만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 다듬고 형상화하는데 야무진 자양분이 된다.
사실 검정치마의 앨범은 타이틀곡 딱지의 유무에 관계없이 전곡을 다 들을 수밖에 없는 특유의 기질 같은 게 있다. 이른바 ‘조휴일 오디오 아우라‘에 스며드는 팬심의 기본자세와 더불어, 전체 재생을 누르고 떠나는 가슴 뭉클한 망망대해의 여정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약속과 다름없다.
081113 1집 <201>
110713 2집 <Don't You Worry Baby(I'm...)>
170530 3집 PART 1 <TEAM BABY>
190212 3집 PART 2 <THIRSTY>
220915 3집 PART 3 <TEEN TROUBLES>
더할 나위 없는 선물 꾸러미로 여겨지는 정규 앨범들의 발매 주기를 봐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검정치마에게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개봉을 기다리는 것만큼의 갈증을 비스름하게 느끼곤 하는데, 최근엔 그래도 2, 3년의 텀을 두고 짜자잔 나타나줬지만 2집과 3집 PART 1 사이에는 (중간에 싱글 앨범들로 와주긴 했지만서도) 무려 6년이라는 기다림이 존재한다.
시크한 휴일 씨는 단 10곡(심지어 기존 싱글 앨범 곡들을 제외하면 신곡은 8곡뿐이다)만 들고 오는 잔인함을 유감 없이 보여줬으나, 목 빠지게 기다린 입장에선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었다.
그리고 이 앨범과 다음 앨범에서,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마냥 좋은) 1번 트랙의 묘미가 더 짙게 나타난다.
<TEAM BABY>의 ‘난 아니에요’와 ‘Big Love’는 서로 이어진다.
<THIRSTY>의 ‘틀린질문’과 ‘Lester Burnham’도 서로 이어진다.
1번 트랙이 끝나면서 2번 트랙으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앨범을 왜 순서대로 전곡을 들어야만 하는가 하는 단순한 논리를 가장 잘 찝어주는 일종의 솜씨이자 굵디 굵은 감성의 시작점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소소하면서 진한 포인트에 함박미소.
그래서 <TEEN TROUBLES>의 1, 2번 트랙에게도 그러한 구조를 은근히(사실 아주 매우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없다.
다만 1번 트랙 Flying Bobs의 도입부에서 약간은 신비로운 내레이션을 깔아주는데, 들을수록 중독되는 오묘한 맛이 있다.
정규앨범별 최애곡들(아주 가-끔 바뀌기도 하는 건 비밀). <TEEN TROUBLES>는 아직도 한창 듣는 중이라 못 정했다.
귀와 마음에 영원히 걸어 놓을 아티스트. 들으면 들을수록 더없는 갈증이 차오르는 이 아이러니한 행복감을, 오늘도 소중히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