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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9월 21일 (1)

by 임어택

9월 21일



민주의 편지를 읽고 난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민주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 옆에 가서 누울 수가 없었다. 깊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시 소파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오빠, 일어났어?”


나는 민주의 목소리에 소파에서 눈을 떴다. 창밖에 높이 뜬 해가 빛을 깊숙이 드리우고 있었다. 민주는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그러고 잔 거야? 어쩌다 소파에서 잠들었어?”


민주는 식탁으로 음식을 옮기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비록 글로 남겼지만, 민주는 내게 엄청난 사실들을 고백했다. 내가 적지 않게 충격받았다는 건 민주도 알 것이었다. 그에 대해 한 마디 설명이라도 하는 게 맞지 않나. 민주는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얼른 와서 밥 먹어, 오빠. ”


나는 멍한 상태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민주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민주야. 너…….”

“오빠”


곧바로 민주가 말을 잘랐다.


“나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 그냥 앉아서 밥 먹으면 안 돼?”

“뭐?”


민주는 의자를 뒤로 빼더니 앉으라고 손짓했다.


“오빠가 나랑 먹는 마지막 아침일 수도 있잖아, 응?”


민주가 내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식탁만 바라보고 있었다. 민주의 얼굴이 빨개지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보였다.


어제 민주의 글을 읽고 처음에는 소름이 돋았다. 나를 사랑해서 한 일이었다고 해도, 민주는 본인이 우주를 이동한 것으로 모자라 계획적으로 나까지 이동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다중우주를 또 이동하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동해도 다른 우주와 기억만 뒤바뀌는 것일 테니, 몇 번을 이동해도 민주 옆에 내 육신은 존재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리 우주를 이동해도 민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의 옆에 누워 함께 잠을 자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 앞에서 초라하게 눈물을 흘리는 민주를 보니 안쓰러운 느낌도 들었다. 어쩌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연애할 때도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대부분 민주가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면서 생긴 일들이었다.


사랑의 크기만을 본다면, 미연이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는 건 민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의 방식이 결코 옳은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주가 글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건 그녀가 나를 사랑해서 벌인 일이었다. 내가 그녀를 이해해 주어야 할까. 이해하지 못한다면 떠나는 선택지도 있지만, 또 다른 내가 여전히 민주 곁에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출근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연구실에 혼자 앉아 있으니 어젯밤부터 휘몰아쳤던 감정이 조금은 잦아드는 것 같았다.


조금 뒤 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조교가 들어왔다.


“교수님, 출근하셨어요? 오늘 세미나 있는 거 아시죠?”

“아, 제 차례인가요?”


며칠 전 복도에서 철학과 세미나 포스터를 본 기억이 났다. 학생들이 주최하는 세미나이지만 교수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차례를 따져볼 겨를도 없었다.


“네, 이따 10시까지 세미나실로 오시면 돼요.”


하루하루가 정신없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복잡했는데 차라리 집중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는 게 오히려 반갑다고 생각했다.


세미나실에는 스무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평소보다 큰 규모였다. 그중 나윤도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발제를 맡은 학생이 말했다.


“자, 모두 오신 것 같네요. 신교수님도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분이 오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철학과 학생이라면 관심이 있기도 하고 재미있는 주제여서 그럴까요? 오늘 주제는 ‘공리주의와 트롤리 딜레마’입니다.”


트롤리 딜레마는 철학에서 아주 유명한 사고실험이자, 공리주의를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였다.


기차가 선로를 달리고 있다. 선로 앞에는 5명의 사람이 누워 있다. 그대로 두면 5명이 모두 기차에 치여 죽게 된다. 기차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위치를 누르면 기차의 선로를 옆 선로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옆 선로에도 1명의 사람이 누워 있어, 그 사람이 대신 기차에 치여 죽게 된다. 스위치를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학생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이 사고실험을 가지고 5천 명에게 물어본 결과, 89%는 스위치를 누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비교적 찬반이 대등하게 나뉘며 열띤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스위치를 누를 이유가 없죠. 스위치를 누른다는 건 제 행동으로 옆 선로에 있는 1명을 죽이는 행동이잖아요. 그 죄책감을 느낄 행동을 제가 왜 해야 할까요? 스위치를 눌러서 결국 1명을 죽게 했다면,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옆 선로에 있는 1명을 살리겠다고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 건, 결국 5명의 죽음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그게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5명이 아니라 100명이라면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면 당연히 5명을 살 수 있는 길을 택해야죠.”


그때 나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기차가 달리는 ‘원래 선로’에 5명이 있다는 거예요. 스위치를 누르는 건 5명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1명을 희생시키는 거죠. 그건 5명의 목숨이 1명의 목숨보다 더 가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그걸 어떻게 단정할 수 있죠? 저에게 사람 목숨의 가치를 매길 권한이 있을까요? 옆 선로에 누워 있는 사람은 원래대로라면 죽지 않았을 사람이에요. 이 사람에게 자신과 상관없는 5명을 위해 기꺼이 죽으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나윤은 언제나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수많은 견해를 들어 봤지만, 나윤의 말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다.


나는 나윤의 말을 내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다. 원래 이곳의 신성우는 자기 행복을 위해 내 인생을 빼앗았다. 나는 그가 너무도 미웠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 다중우주를 이동하는 나의 행동은 정당화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아무 상관 없는 또 다른 나의 인생을 빼앗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인생을 빼앗긴 그가 또 우주를 이동하고, 그곳에 있는 신성우가 또 우주를 이동한다면, 수많은 내가 고통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나 한 명의 행복을 위해 몇 명을 희생시키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발제자가 내게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덧붙여 해주실 말씀 없으신가요?”


내 생각만 하다가 내 역할을 잠시 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문득 내 상황에 대해 간접적으로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볼까요? 만약 원래 선로에 있는 5명과 옆 선로에 있는 1명이 모두 나 자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네? 교수님, 사람들이 다 자신이라니요? 그게…….”


학생들이 의아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하긴, 어떻게 설명해도 내 상황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최대한 둘러댔다.


“어차피 사고실험이니까요. 예를 들어…… 지난번 세미나에서는 시뮬레이션에 대해 다뤘잖아요. 시뮬레이션으로 인해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도 좋고요, 아니면 뭐 복제인간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선로에 누워 있는 5명 모두 나 자신이고, 옆 선로에 있는 것도 나고, 스위치 앞에 있는 것도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들은 내 질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민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조금 뒤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모두가 저 자신이라면요, 그 선택은 온전히 제 몫이 아닐까요? 1명을 희생시킨다고 해도 그게 나 자신이라면 아무도 비난할 수 없겠죠. 결국 더 많은 나를 살릴 수 있도록 스위치를 누르는 게 맞지 않을까요?”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학생이 ‘그렇겠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저는요…….”


잠시 뒤에 다른 학생이 말했다.


“저는 억울할 것 같은데요. 전부다 저 자신이라는 게 가정이니까 제 마음도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제가 옆 선로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기차가 선로를 바꿔서 제가 죽는다고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 저는 원래 선로에 있다가 죽는 것보다 5배 넘게 억울할 것 같아요. 더 많은 저를 살리면 좋겠지만, 저한테는 저 자신에게 억울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두 학생의 의견은 정반대였다. 더 많은 나를 살리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겠다는 의견과, 억울한 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지 않겠다는 의견.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 상황에서는 두 의견이 같은 답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우주를 이동한다면 또 다른 신성우가 이곳으로 와서 나와 같은 혼란과 좌절을 겪어야만 한다. 그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해서 또 우주를 이동하면, 또 다른 신성우가 이곳으로 오게 된다. 내가 우주를 이동함으로써 피해를 보아야 하는 나 자신은 몇 명인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적어도 한 명이고, 수십 명이나 수백 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분명 억울했다. 분하고, 절망스럽고, 아무리 나 자신이라고 해도 내 인생을 빼앗은 그가 원망스럽고 미웠다. 하지만 내가 우주를 이동한다면 내 인생을 이어서 살아야 할 그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결국 두 학생 중 어느 의견을 내 상황에 접목한다고 해도 결론은 같았다. 나는 ‘원래 선로’에 홀로 누워 있는 신성우였다. 그리고 스위치를 누르면 바뀌게 될 선로에는 다섯 명의,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신성우가 누워 있었다.


내가 여기서 그 고리를 끊는다면? 수많은 신성우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들 모두 나 자신이다. 나 하나 희생한다면 더 많은 내가 행복할 것이고,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다.


희생? 정말 희생인가? 방식이 조금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주는 민주가 있고, 나를 쏙 빼닮은 주원이가 있다. 그들과 함께할 인생이 불행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앞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지는 오직 나에게 달린 게 아닐까?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할 수는 없었다. 말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쓴 글을 읽게 하고, 믿든 말든 이 상황에 내가 해야 할 선택을 주제로 토론한다면? 지금까지 학생들이 낸 의견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이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지 않을까?


정답은 단순할수록 좋은 거야. 중요한 건 얼마나 본질을 잘 이해했느냐지.


김교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남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올바르게 판단하면서 조언도 잘해 주곤 한다. 하지만 같은 문제라도 그것이 본인의 문제가 되면, 자신의 상황에는 복잡한 무언가가 더 얽혀있다고 생각하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정답과 본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미연이와 다은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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