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결혼을 하면서 각종 혼수를 장만할 때, 나는 모든 가구와 가전을 최신형으로 구매할 수는 없어 현실적으로 타협이 필요했다. 몇몇 가구는 리퍼브 매장에 가서 저가형 상품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등 필수적인 가전만큼은 최신형 모델로 구매하였다. 평생 써본 적 없는 최신형 모델이었기 때문에 구입하고 나니 너무도 기뻤다.
그런데 겨우 2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산 가전들은 '최신형'이라고 칭하기 민망해졌다. 그 사이 비스포크, 오프제, 시그니쳐 등으로 불리는 프리미엄 가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시장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가전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세상은 너무도 '프리미엄화'되었다. 과거에는 휴대폰을 살 때 한 달에 2~3만 원 정도의 통신요금만 내면 사실상 기기는 공짜에 가까웠는데, 어느새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100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오르더니, 이제는 폴더블 폰 등 200만 원에 육박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있다.
거리에서도 저렴한 백반집이나 포장마차는 사라져 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1인분에 2~3천 원이면 먹던 떡볶이가 이제는 차돌박이, 모짜렐라치즈 등 각종 토핑을 얹어 1만 원이 가까운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과거에는 한 판에 1만 원 내외의 피자가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은 스테이크나 새우와 같은 고급스러운 토핑이 얹어진 3만 원 내외의 피자가 일반적인 피자가 되었다. 햄버거 가게에서도 고급스러운 패티가 들어간 비싼 햄버거들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이보다 더 비싼 수제버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고 해도 너무 높은 상승률이고, 음식 자체가 고급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LG 시그니쳐 홍보 사진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물론 과거 대비 국민 평균 소득은 크게 올랐다. 피자 한 판을 1만 원에 먹던 90년대와 비교하면 분명 지금 우리는 더 잘 살고 있다. 물가상승률의 영향도 있겠지만 국민 소득이 오른다면 과거보다 점점 더 좋은 음식과 물건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 '공짜폰'으로 불리던 폴더폰에 비하면 지금의 스마트폰은 월등히 편리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우리의 생활이 타인을 의식하면서 상향 평준화되었다는 것이다. 생활이 상향 평준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의 생활을 보면 '다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필수적 지출'이 너무도 많아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되지 않기 위해 백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이 필요해졌고, 때로는 시계나 핸드백 등 명품이 필요해졌다.
시장도 점차 '가진 자들'에게 타깃이 맞춰지고 있다. 기업들은 서민들이 사기 힘든 프리미엄 제품들을 자꾸만 시장에 내놓고 있다. 부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이러한 제품을 사지 않는다면 프리미엄 제품들은 당연히 시장에서 퇴출되겠지만, 이제는 서민들도 자신이 서민임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리해서라도 프리미엄 제품들을 사용하는 그룹에 편승하고 싶어 한다. 특히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런 제품을 사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마음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이라도 평소에는 가기 힘든 고급 음식점에 가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프리미엄화'된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나 홀로 '프리미엄화'되지 않은 세상에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만약 스마트폰이 아닌 저렴한 폴더폰을 사용하고, 통돌이 세탁기와 같은 구형 가전을 사용하고, 햄버거 가게에 가서도 데리버거와 같은 저렴한 햄버거만 먹으면서 생활한다면 어떨까? 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평범한 사회생활이 힘들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 심지어 자녀를 기르고 있다면 자녀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생활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최근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라고 한다. 과거에는 어려운 가정에서도 10명이 가까운 자녀를 낳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도 많고 낳더라도 1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과거보다 소득 수준이 올랐는데도 이런 결과를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
이는 우리가 남들보다 열등한 존재가 되지 않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분명 경제적으로 큰 희생이 따르므로, 많은 딩크족은 아이를 포기하는 대신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자 한다.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두 명의 아이를 기르기보다는 한 명만 낳아 한 명의 자녀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고자 하기 때문에 출산율은 자꾸만 낮아지고 있다.
과거에 나는 하루 동안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꽃동네 시설에는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그들이 하는 미사를 얼핏 들어보니 생활할 공간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살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비록 계속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분명 자신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꽃동네에 있던 표어의 내용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불만을 갖지 않고 생활하자는 것이므로 어떻게 보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도 한 번씩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과거 대비 우리의 소득 수준은 크게 올랐고, '절대적'인 삶의 질은 분명 크게 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상대적'인 삶의 질을 스스로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들과 비교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스스로 행복을 찾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