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트로
파리에서 럭셔리 패션과 관련된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은, 럭셔리 브랜드가 파는 것은 옷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샤넬, 디올, 에르메스에 비싼 가치를 지불하는 이유는 그들의 옷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둔 이미지라는 것.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업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향수 업계이다.
후각은 어느 시점의 기억이나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탁월하다. 그건 비단 향수를 뿌린 본인뿐 아니라, 그 향을 맡는 타인에게도 그러하다. 잘 어우러지는 향수만큼 임팩트 있는 것은 없으니까.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향수를 고르기도 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향수를 고르기도 한다. 내가 향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한 병의 향수를 살 때 우리는 그저 향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 향수를 뿌린 시간 동안만큼은 새로운 누군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사는 것이다.
한국에서부터 향수를 좋아해서 자주 시향을 하러 다녔다. 하지만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는 꽤 한정적이다. 니치 향수를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딥티크, 조말론, 바이레도, 크리드, 톰포드, 산타마리아노벨라, 르라보가 대부분이다. 물론 나도 상기한 브랜드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외에도 세상에는 재밌고 정체성이 뚜렷한 퍼퓨머리가 많이 있다. 나는 이 사실을 파리에서 살며 퍼퓨머리를 직접 찾아다니며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브런치 시리즈에서는 파리에서 찾은, 내가 사랑하는 향수 브랜드들과 향수들을 소개하고 싶다. 뻔한 향수 브랜드에 질린 향수 덕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첫 글은 Miller et Bertaux라는 향수 브랜드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