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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쇠 Jul 28. 2023

우리가 이 도시의 유일한 동양인이야

나도르라는 항구도시에서 시작, 애증의 모로코 여행 1일 차 기록.

나는 낙타가 보고 싶었다.


그것은 기억을 거슬러올라가 보면 나의 욕망은 아니고, 알던 사람이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 언젠가 그 말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수업을 듣던 지루한 금요일 오후, 나와 친구들은 노트북으로 수업 자료가 아니라 스카이 스캐너를 켜고 모로코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겠지만 나는 그때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구한 삼일 뒤 출발하는 모로코 발 항공편.

급하게 구한 탓에 우리는 카사블랑카나 마라케시가 아닌, '나도르'라는 곳으로 가는 라이언 에어를 타게 되었다. 라이언 에어는 유럽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인데, 파리에서 라이언 에어가 뜨는 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샤를드골도 아니고 오를리도 아닌, Beauvais 공항이라는 곳이다. 공항이라기보다는 시외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의 수식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4박 5일을 버틸 옷과 간식과 책을 바리바리 싸서, 터질 것 같은 배낭 하나씩 메고 우리는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나도르 공항은 놀라울치만큼 깨끗했고, 단순했고, 약간은 황량했다. 공항에서 유로를 모로코 돈으로 환전하고, 우리는 시내로 가는 택시를 잡으러 공항 문을 나섰다. 모로코 깃발만 세차게 흔들리던 공항 밖에는 우리 외에는 사람이 전무했다.

두리번거리던 중 누군가가 다가왔고,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그에게 우리는 택시를 구한다고 말했다. 얼마 간의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흥정과 협상이 오가고, 우리는 덜 덜 덜 소리가 나는 오래된 차에 비로소 앉을 수 있었다. 앞유리는 뿌옇게 더럽고,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나며, 창문은 레버를 돌려서 내리는 올드카.

택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구글맵으로 확인한 다음에야 나는 긴장을 풀고 창문 밖 모로코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밟는 아프리카의 대륙.

길 내내 자갈과 앙상한 나뭇가지가 이어졌다. 가끔 도로 옆을 걷는 당나귀와, 낮은 단층 집들이 보였다.

마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체리 향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은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정확히 이런 길들을 구불구불 달려갔었다. 비록 그 영화는 이란에서 촬영되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택시는 우리를 미리 예약해 둔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세 명이 숙박할 10만 원 정도의 숙소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럭셔리하지는 않았고, 한국의 저렴한 에어비앤비 펜션 같았다. 우리는 짐을 풀고 잠시 쉰 다음 유심칩을 사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도시를 둘러볼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길이었는데, 걷다 보니 어느새 이 도시 전체에 동양인이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가면 신기한 볼거리를 보듯 빤히 응시했다. 영화 '겟아웃'같다고 생각하며 앞장서서 걷던 나는, 시장을 통과할 때 비로소 약간 무서움을 느꼈다. 우리 뒤에 걷던 사람들이 우다다 뛰어와서 우리 얼굴을 빤히 보고 키득거리고, 사방에서 니하오라고 말을 걸고, 눈을 손가락으로 찢고. 가장 서늘했던 경험은, 파란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멀리서부터 어떤 차가 속도를 멈추지 않고 우리를 향해 돌진한 일이었다. 차는 우리를 치기 직전에 멈추고, 운전자가 창문을 내려 침을 뱉고 도망갔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후 유심을 사고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갔다.

잠시 긴장을 풀고 있으니 배가 고파왔다. 그때까지 하루종일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으니. 짧았던 외출에 언듯 봤던 동네에는 우리가 사 먹을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구글맵으로 간신히 맥도널드를 찾아내서 그곳을 찾아 걸어갔다. 20분 정도 걸으니 바다가 보였다.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황량한 바다. 아무도 없는 초소. 마치 도시에서 사람들이 사라진 것 같았다. 조금 더 가니 맥도널드가 눈에 보였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 가게가 마감하고 있어 우리는 테이크아웃해서 뜨끈뜨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버거를 품에 안고 식기 전에 빠르게 숙소로 돌아갔다.

어느새 도시는 밤이 되었다. 집집마다 불이 켜졌고, 그새 어디에 있었던 건지 모를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삼삼오오 얘기를 하고, 아이들은 축구를 했다. 모로코는 더운 나라여서 그런지 해가 져야 활기가 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낮의 긴장을 조금 풀고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후덥지근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열려있는 편의점 같은 구멍가게에서 과자와 물도 샀다.

숙소로 돌아와 정신없이 햄버거를 먹고, 오기 전부터 먹고 싶었던 민트티를 마실 수 있을까 하여 호텔 1층의 카페로 내려갔다. 호텔 지배인 같은 분이 우리를 보고는 뭔가를 도와줄까 물어보았고, 우리는 우리의 목적 (민트티)를 파는지 여쭈어보았다. 그분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면서 카페 안쪽의, 푹신한 소파 자리로 우리를 안내하고는 카페의 직원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멀뚱 가만히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민트티가 나왔고, 또 조금 더 있으니 이런 푸짐한 한 상이 나왔다.

우리는 직전에 햄버거를 포식한 상태였기에, 오우 너무 감사하지만 우리가 저녁을 방금 먹었다 괜찮다라고 손사래 쳤지만 그분들은 인자하게 웃으시기만 했고... 우리와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시고는 기묘한 홍보용 컨셉 사진을 찍으셨다.

난 영문도 모르고 잠옷 그대로 그냥 브이 하고 같이 사진에 찍혔는데, 우리끼리 이 사진이 과연 무슨 용도일지 열심히 추리했다. 동양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 사진이 아닐까, 결론 내렸다.


음식. 그렇게 대접받은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우선 민트티는 너무 아름다웠다. 아주 뜨겁고 달고 민트향이 진했는데, 이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파리에 가서도 계속 민트티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같이 나온 음식은 스프, 빵, 삶은 계란, 요거트, 그리고 약과 같은 찐득찐득한 과자. 이름은 전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음식들이었다. 대접받은 음식은 죽어도 남기면 안 된다는 K-손님 마인드에 눈물 날 정도로 열심히 먹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다 먹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더 있으면 뭔 가를 더 줄 것 같아 우리는 방으로 얼른 올라갔다.


그렇게 모로코 1일 차는 끝!

다음 일정은 기차를 타고 페즈에 가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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