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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쇠 Jul 31. 2023

 그저 사막을 향해

나도르에서 페즈로, 페즈에서 사하라로 가는 모로코 여행 2일차 기록. 

아침에 눈을 떠서 내가 아프리카에 와 있다는 사실을 느낄 틈도 없이 우리는 헐레벌떡 짐을 싸서 호텔 1층으로 내려갔다. 얼른 조식을 먹고, 다음 일정은 페즈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야 했으니!


어젯밤 우리에게 한 상을 내어주었던 카페 사장님이 온화하게 맞아주셨다. 잠시 뒤, 계란 프라이와 요구르트, 라떼, 주스와 빵으로 이루어진 컨티넨탈 아침 식사를 주셨다. 모로코 음식이 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호텔에서 나온 우리는 빨간색의 쁘띠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나왔다.

마찬가지로,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친구와 택시 기사와의 흥정이 오가고, 기사님은 허허 웃으면서 우리를 기차역에 내려주셨다.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이번 여행 내내 큰 도움을 받았다. 이번 기회를 삼아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아랍어를 할 수 없는 사람들끼리의 모로코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카사블랑카나 마라케시, 페즈 같은 관광객이 많은 도시들을 괜찮지만 나도르 같은 소도시는 일정에 넣지 않기를 추천한다.


기차역은 어제의 공항과 비슷하게 매우 깨끗하고 일견 황량했다. 얼마 전에 지어진 기차역 같았다.

새로운 나라에서 기차를 타는 것은 항상 긴장되는 일이기에,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바디랭귀지로 여기가 페즈 행 기차를 타는 곳이 맞는지 거듭 물어봤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더 지난 어느 순간 역으로 기차가 들어왔고, 우리는 예약했던 1등석 칸으로 올라탔다. 1등석은 여섯 자리씩 방으로 분리된 형태였다. 에어컨이 나왔고, 의자는 푹신했으며, 창은 컸다. 1등석에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세 명이었던 우리는 그 칸 전체를 여정 내내 우리 방인 것처럼 쓸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우리는 파리에서부터 가져온 간식들을 바리바리 꺼내어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얘기하며 과자를 먹었다. 창 밖의 풍경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뜨거운 햇살 아래,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고요한 토지를 지나쳐 기차는 빠르게 달렸다. hotel dusk: room 215라는 게임의 desert highway라는 곡을 무한반복으로 들었다. 몇 시간 뒤, 우리는 페즈에 도착했다. 마찬가지로 크고 깔끔한 기차역.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쁘띠 택시를 잡기 위해 역 밖으로 나갔다. 또다시 얼마 간의 흥정, 협상, 암투. 천 원 정도를 깎기 위해 우리는 돈 없는 학생이라고 혼신의 어필을 했다. 사실이기는 했지만 사실 큰 차이가 나는 금액은 아니었기에 굳이 그럴 필요 있었나 싶다.


쁘띠 택시는 우리를 페즈의 시장 골목 입구에 내려주었다.

이 푸른색 문을 통과하고 나면, 영화 알라딘 속 주인공과 원숭이가 천막 위를 뛰어가던 장면이 생각나는 시장 골목이 펼쳐진다. 주의할 점은, 시장 상인분들은 사진에 자신의 가게가 찍히는 것을 경계하신다. 덕분에, 나는 이 광경을 눈으로 열심히 담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관광객 티를 냈다. 시장 안은 개미굴같이 깊고 어지럽게 펼쳐져 있기에 길을 잃기 십상이다. 또한 시장 안은 구글지도도 잘 터지지 않는다. 미리 지도 화면을 캡처해서 들어가고, 나올 길을 생각한 다음 진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우선 미리 찾아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오후 3시가 지나가는 시간에 식당에는 우리 일행뿐이었다. 식당의 사장님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우리에게 메뉴판을 들고 와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후 한참의 열띤 주장과 비판, 타협이 오갔고, 우리는 쿠스쿠스와 미트볼 타진, 그리고 추천받은 디저트를 하나 시켰다. (애석하게도 그 이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모로코에서 먹는 첫 모로코 음식!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민망할 정도로 접시를 싹싹 긁으며 먹어치웠다. 그릇을 비우고 배불러서 멍 때리고 있을 때쯤, 사장님이 다시 등장하여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보았다. 우리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사장님이 자신의 여동생이 케이팝 팬이라며 혹시 우리와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 어째서 우리를?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은 원래 맛있는 음식을 준 사람에게 한 없이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어제에 이어 또 어색한 브이와 어쩔 줄 모르는 미소로 사진에 찍혀버렸다. 밥을 먹으니 이제 디저트. 시장을 걸어 다니며 조금 소화를 시킨 우리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목표는 당연히 민트티. 더불어 모로코 전통 과자와 크레페까지 야무지게 시켰다.

오늘 밤에 우리는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야 했으므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어느새 해가 졌고, 시장에는 어스름한 어둠이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주황색 조명 아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면 내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하곤 한다. 모로코는 한국에서 정말 멀리 떨어져 있다. 난 어째서 이렇게 먼 땅에 와 있는지, 새삼 느껴지는 생경함에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는 시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시장을 나서기 전에 뒤돌아 마지막으로 시장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아마도 한참 동안은 보지 못할 풍경이기에!


시장에서 나와 우리는 다시 쁘띠 택시를 잡아 페즈 기차역으로 갔다. 역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해가 진 페즈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걷기에 좋았다. 10시간의 버스 여정에는 당연히 저녁도, 물도, 아침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역 근처 마트에 가서 간단히 장을 봤다. 밤이었지만 무서운 느낌은 없었다. 간혹 어린아이들이 1유로만 달라고 따라붙기는 했지만, 그들 외에는 길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잠시 기다리니 플릭스 버스 같은, 혹은 공항버스 같은 큰 버스가 앞에 섰다.

결연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막을 향한 잠 오지 않는 괴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멀어지는 도시의 불빛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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