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여행 4일 차, 사하라 사막에서 도시 카사블랑카로.
밤새 위스키와 담배의 낭만을 홀로 즐기다 늦게 잠들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리는 덤프트럭에 타서 어제 우리가 출발했던 숙소로 배달되었다. 그곳에서 피곤함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아침을 먹었다.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잠시 쉬다가, 숙소가 있는 동네를 걸어서 구경하기로 했다. 사막의 초입에 위치한 그 동네에는 주로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 온 사람들을 위한 식당들이 몇 개 위치해 있었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 같지는 않았다. 구글 지도로 미리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놓고 호기롭게 숙소를 나섰다. 숨이 턱 막히는 공기에 빠르게 말이 줄어들었고, 동네를 구경하겠다는 목표는 사라져 버렸다.
그 식당에 도착했을 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글이 적힌 번호판을 단 캠핑카가 떡하니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곧이어 식당 테라스 좌석에 앉아있는, 몹시 한국인 같아 보이는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쭈뼛쭈뼛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마찬가지로 테라스에 앉았을 때, 부부가 먼저 한국분이시냐고 말을 걸어주었다. 우리는 여차저차 간단히 우리를 소개하고, 아까부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질문을 건넸다. 저 캠핑카가 한국에서 여기까지 건너온 것이냐고, 말이다. 부부는 그렇다며, 한국에서 러시아로 배를 실어 보내고 러시아에서부터 쭉 대륙을 횡단, 유럽을 거쳐 모로코에 도착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1년 동안 세계여행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말도 안 돼! 이런 세계여행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이었다. 나는 지나치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분들의 식사를 방해하며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그분들의 모습이 너무 부럽고 행복해 보여서 나도 중년의 나이쯤에 1년 정도 일을 쉬고 친구나 애인이나 가족과 함께 캠핑카로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도 못한 목표에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밤에는 캠핑카 위에서 별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을 의지 따라 도로 따라다니는 삶이 너무 자유로워 보였다. 물론 그 긴 거리를 그 긴 시간 동안 운전하고, 매일 밤 캠핑카를 델 데를 찾고, 혹시 도로를 달리던 중 기름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잔고장은 없을지 불안해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내가 너무 호기심에 꼬치꼬치 물어보자, 부부는 캠핑카 안을 구경하하고 싶냐고 제안하였고, 나는 그 말을 한 치의 사양 없이 덥석 물어버렸다. 캠핑카는 작지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제 자리에서 모두 작동하고 있었다. 냉장고와 침대와 화장실과 간이 책상과 심지어 세탁기까지! 그분들은 자신의 여행의 과정을 유튜브로 찍어서 간간이 올린다고 하셨다. 나에게 캠핑카를 소개해주는 것도 영상으로 담으셨던 것 같다. 아마 영상 속의 나는 우와... 오... 헐... 계속 이런 얼빠진 감탄사만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보답으로 그분들의 유튜브에 올라갈 릴스도 찍어드렸다.
예상치 못한 즐거운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걸어서 돌아왔다. 나는 수영장 옆 테라스에 앉아 노트에 글을 썼고, 가끔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 발을 담갔다. 곧 우리는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어제 내렸던 정류장으로 가는 택시에 탑승했다. 덜 덜 거리는 차 안에서 멀어지는 캐러멜 색 모래 언덕들을 보았다. 언젠가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올 때 나는 어떻게 달라졌고, 누구와 있을까. 앞선 만남을 회고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자, 사막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시 장시간의 야간버스다. 긴 여정 전에 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정류장 근처 식당을 찾았다. 근처에는 열어 있는 식당이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동양인들을 거리의 아이들은 신기하듯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어떤 모로코 아저씨가 식당을 찾냐고 서툰 영어로 말했고, 잔뜩 경계하는 우리들에게 자기 친구가 하는 식당이 바로 이 근처인데 외국인들도 많이 온다고, 한번 가보라고 우리를 안내했다. 반신반의하며 멀찍이 그를 따라 걸었고, 얼마 안 가 식당이 나왔다. 들어가니, 백인 커플이 밥을 먹고 있었고, 식당 주인은 우리에게 영어 메뉴판을 건넸다. 가격이 확실히 외국인 물가였다. 그래도 선택지가 없으니 우리는 파스타 하나와 원주민식 피자를 시켰다. 한참 지나 음식이 나왔다. 독특한 형태의 피자였는데, 토핑이 차가웠다. 뭔가 이상했지만 배고팠던 우리는 그대로 먹었다. 그리고 아마 이 음식이 파리에 돌아가서까지 나를 지독하게 힘들게 했던 식중독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아프고 서러워서 한국으로 진지하게 돌아가고 싶었으나 편도 비행기 가격을 보고 다시 얌전하게 누워서 식중독을 이겨냈다. 물론 이 때는 상상도 못 할 미래의 일.
찝찝한 마음으로 배를 채우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러 갔다. 역시 약속시간보다 몇 분 늦게 버스가 왔고, 돌아가는 길의 긴 버스 여행이 또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