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동피랑을 방문했던 짧은 경험이 머릿속에 되살아난 것은 그때의 기록을 담은 사진이 온전히 남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빗속에서 별다른 기대도 없이 일정을 소화하기에 분주한 주민들과 함께 쭈뼛쭈뼛 벽화마을을 방문하는 도중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마을을 동경하지만 정작 자신들 보고 이런 곳에 살라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부류들이 나뉘겠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벽화라는 것이 한 마을을 새롭게 단장하는 좋은 도구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관리 수요가 생긴다는 점은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또 다른 판단의 변수가 남는다.
빗줄기가 잦아들지 않는다. 차라리 거세게 내리쳤더라면 마냥 포기하고 말겠지만 그렇게까지 심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차분히 마을길을 걸어 오른다.
충무 앞바다를 바라다보며 바닷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생활을 해가면 하나씩 하나씩 산 쪽으로 올라섰을 것이다. 그 마을의 미래는 사실 언젠가 좀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임시거처이거나 잠시 잠깐 들러서 가야 할 나그넷길의 정류소였을 것이다. 그 시간이 늘어나고 그 세월이 한 해 두 해 쌓이다 보니 세상을 모두 이곳에 놔두고 세월을 낚은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런 시간의 흐름을 안은 수많은 항구도시의 흔적들이 이야기한다. 그 시간의 흔적에 생존을 위한 붓칠을 해댄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부산의 감천마을이 그 규모가 남달이 컸지만 어디 양양은 안 그랬을 것이며 목포와 인천은 안 그랬겠는가. 동피랑에서 바라보는 항구는 이미 아담하고 이쁜 항구와는 거리가 멀어진 느낌이다. 생존과 생활이 켜켜이 쌓이면서 포근하고 안전한 항구를 이루었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어시장과 관련 상가들이 그득그득하다.
그 시간의 흔적에 생존을 위한 붓칠을 해댄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나마 이곳에 벽화로 생활이 찌든 흔적을 조금이라도 감싸지 않았더라면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힘들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기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벽화라는 것은 차라리 동화 속의 감성과 따스함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감추려 하는 의도처럼 보인다. 동피랑의 벽화가 나쁘다거나 옳지 않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 벽화 너머의 생활이 한 꺼풀 뒤덮어 버렸다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일려나...
마을 꼭대기에 올라서니 비가 부슬부슬 끊이지 않는다. 가이드는 그 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 유치환 시인과 이영도 시인과의 15년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쉴 틈 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 시인들이 얼마나 낭만적이며 깊은 사랑을 나누었는지 멀리 보이는 우체통에 매일같이 편지를 주고받던 이야기를 건네준다. 그럼으로써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으로서 유치환 시인을 동피랑과 동일시시키고 있었다.
참으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 명의 시인이 그 고장에 살았다는 사실이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삶을 넘어서고 있다. 어찌 그들만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일까 마는 나머지 수많은 삶의 애환과 슬픈 혹은 다정한 이야기를 일일이 들을 수 없기에 가장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를 골랐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그림을 더 더욱 풍성하게 하기도 하려니와.
어릴 적 유치환을 읽었으되 그 장소를 알지 못하고 막연히 지방의 어느 고장 한 구석 이리라 생각했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의 현실 장소를 어릴 적 알았더라면 더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을까. 여전히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어찌 그들만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일까 마는 나머지 수많은 삶의 애환과 슬픈 혹은 다정한 이야기를 일일이 들을 수 없기에 가장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를 골랐을 것이다
동피랑이 전국에서 알아줄만한 벽화마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벽화로 선택된 마을 중 하나라는 점은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어찌 이 산꼭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