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펫을 연주한 아들의 무대를 보면서 느끼는 감회들.
2월 20일. 벌써 오후 시간이다. 시간을 화살로 쏘았는지 눈을 뜨면 오후로 재빨리도 넘어간다. 그게 하루가 가는 시간의 속도다. 당연하다. 전날 늦게 잠들고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있는 날은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은 그 목표가 명확해 다행이기도 하면서 기대되는 날이다. 기대에 찬 목표 시간이 있기에 그 전까지는 목표를 향해 스쳐가는 시간이라는 게 아쉽다. 그래도 온통 하루의 목표시간에 몰입해 있다.
성미산마을 오케스트라가 3회째 정기공연을 하는 날. 공연 당사자들은 더욱 힘이 들 테지만 기다리는 사람조차 초조하게 기다려진다. 공연이란 그냥 돈 주고 가서 보는 인스턴트 식품 정도로 여겨질 테지만 실제로 관계된 사람들의 경험치는 그것과 사뭇 다르다.
뒤늦게 일어난 아들놈이 부스럭부스럭 거리며 옷을 입는다. 아이들과 공연장에 어찌 가는가를 묻고는 서로 만나서 가는 방법을 타진한다. 그 과정에서 게으름은 한 번 더 나를 시험대에 오르게 한다.
“아빠! 공연장까지 태워주면 안 돼?”
“너희들끼리 알아서 가. 다른 아이들도 지하철 타고 간다잖아”
녀석에게 일침을 놓은 후 가는 방법이 전해졌다.
벌써 3회째다. 성미산 마을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서서 정기공연 이름을 단지도. 만 2년의 시간 동안 악기를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호기가 3회에 걸친 정기공연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참으로 뜻박이다. 매년 규모도 커지고 음악의 수준도 높아지는 것을 보면 더 놀랍기 그지없다.
1년 반전에 나 역시 오케스트라 공연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장소 역시 오늘과 같은 마포아트홀이다. 트럼펫을 배운지 3개월 만에 불수 있는 부분만 하기로 하고 용감하게 무대에 올랐다. 그때 불었던 곡들이 ‘포레스트 검프’‘카라비안의 해적’‘라데츠키 행진곡’ 뭐 그런 노래들이었다. 그중 일부분만 트렘펫으로 소리를 내며 용감하게 오케스트라 공연 무대에 올랐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연습실에서 ‘뿌뿌‘거리며 제대로 나지도 않는 음들을 기어이 해보겠다고 용을 쓰던 순간들. 어려운 부분은 차마 소리를 못 내고 마우스피스를 입술에 대고만 있었던 기억, 시작부터 너무 어려워 아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악기를 꺼내 들지도 못했던 곡. 아마 그건 베토벤 1번과 주페의 ’시인과 농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리허설을 하거나 무대 뒤에서 등장 전에 괜스레 긴장되고 설레던 순간들은 참으로 잊기 힘든 순간이다. 특히 무대에 등장했을 때 객석에 가득 메운 채 공연팀을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 대부분이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라 반 이상은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내가 내는 소리를 예의상 들어주겠노라고 찾아와 준 그들에게 몹시도 고마웠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 찍혀있던 사진을 SNS의 내 캐릭터 사진으로 사용한다. 그만큼 소중한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며 가장 놀라웠던 경험들 중 하나는 연주하는 음악이 전체적으로 하나가 아니라 부분 부분 악기별로 들리던 경험이다. 각 파트에서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모른 채 전체적인 음악의 결과물만 들었던 것에 비해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면 어떤 악기들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좀 더 섬세하게 들린다. 더구나 소위 삑사리를 내며 틀린 음을 낼 때의 그 부끄러움이란 좀처럼 잊히기 어렵다.
여기서는 바이올린이 직접 소리를 내는데 첼로가 들어가면 이렇게 다르구나. 관악기 중에 트럼펫이 들어가면 소리가 이렇게 풍성해지고 커지는구나. 금관악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풍성해지는 소리의 느낌까지 살면서 일반인들에게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연주한다는 경험은 아무리 말로 해도 설명이 안 되는 엄청나게 중요한 경험치다.
특히 개인의 소리 하나하나가 합쳐져서 이토록 오묘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체와 부분이라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몸과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좋았던 기억의 산물이 올해로 벌써 3번째에 달하고 그것도 첫 공연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는 무대라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르다.
주차장에서 대기실을 들러 아들 녀석에게 공연을 위한 검은 옷을 전해주고는 함께 하던 단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오케를 맡아 주도적으로 진행 중인 제비꽃이 보인다. 반갑다. 격려의 허그를 하면서 힘을 북돋아 준다. 열심인 사람이라 언제라도 보기 좋다.사람이 열심인 것은 늘 아름답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장난치고 뛰어다닌다. 저 순수함이 있으니 아이들은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오늘 연주곡은 뭐야?”
“베토벤 5번 운명 전 악장이야. 결코 졸지마 중간에 졸린 부분이 있더라도.”
자신들이 대가의 심포니 전악장을 연주한다는 사실, 그것도 그 유명한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한다는 사실이 스스로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웬만하면 아마추어 팀에서는 잘 안 하는 거 아닌가?”
“그야 그렇지. 아마 단원들에게 전 악장을 다 끝냈다는 성취감을 주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몇몇 노래를 악기로 연주할 경험은 가지고 있겠지만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전 곡을 함께 연주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말이다. 더구나 이를 무대에 올라 공연까지 하는 일들은 흔치는 않은 일이다. 전문적인 공연자나 전공자들도 아니고.
계속되는 짧은 곡들의 연주가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됐다. 무대가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전 무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뒤편 자리로 옮겼다. 전체 무대가 보인다. 뒤편의 구석지에 아들 녀석이 트럼펫을 만지작 거린다.
얼핏 보아도 백 명은 되는 숫자다. 아주 앳되어 보이는 아이부터 늙수그레한 어른, 키가 190은 족히 넘는 청년이 제1바이올린 자리에 앉아있다. 저렇게 큰 녀석이 섬세하게도 악기를 열심히 연주하는 게 신기하기만 할 다름이다.
아들인 기백이는 한때 오케스트라에서 주목받는 아이였다. 짧은 시간에 어려운 부분을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에 비해 혼자서 트럼펫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며 3회째 공연을 전부 참석했다. 그것도 트럼펫 연주자는 혼자밖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트럼펫 선생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말이다.
그런 그 녀석에게 오늘 연주는 여전히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인다. 물론 속으로는 자부심이나 뿌듯함이 있겠지만 전혀 표현을 않는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더구나 자신의 역할이 묻힌다. 다만 소리로 이야기할 뿐이다.
더 아쉬운 것은 오케스트라가 끝나고 남은 사진 중에는 아들을 찾아보기 너무 힘들다는 점이다. 아무리 훑어봐도 보면대 밑으로 숙이며 장난치는 그 모습이 다른 촬영자의 눈에는 뜨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눈 씻고 찾아봐도 연주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부모 마음을 결코 모를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더구나 자신의 역할이 묻힌다. 다만 소리로 이야기할 뿐이다
운명에는 앞부분과 뒷부분에 쉬지 않고 트럼펫을 불어 댄다. 중간에도 쉬는 구석이 별로 없지만 화려한 역할보다는 풍성한 소리를 내는데 충실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앞과 끝부분은 쉬지 않고 달리는 느낌을 금새 받는다. 이에 비해 트롬본은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던 시절에는 있지 않던 악기인지라 들어가서 연주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것도 뒤 부분에서 트롬본 파트를 편곡에 넣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안 그러면 30여 분간 무대에 앉아 쉴 뻔했다.
전체적으로 음악이 부드러워졌다. 많이 늘었음을 실감한다. 설사 부드럽지 않아도 100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풀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함이 먼저 생긴다. 소음을 낸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자식과 부모가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경험을 간직할 수 있는 기회란 현실적으로 이상적이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현장에 아들이 그곳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어서 흐뭇하다. 그리고 그 공식적인 연주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아쉬움에 눈물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연습하고 키워온 2년간의 트럼펫인데... 그토록 연습을 안 하면서도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힘겹고 드문 경험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수많은 지인과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주면서 3회의 정기공연은 막을 내렸다. 매주 매주 연습을 하면서 무대의 경험을 쌓았던 어린 학생들이 대견해 보인다. 참여해준 연주자들은 물론 기획하고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준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알아서들 열심이다. 그게 마을과 자발적인 사람들의 힘이다. 그런점에서 그들이 매 순간순간 만들어내는 노력의 결과물은 자랑스러워할만하다.
지휘자 선생과 아이들을 가르쳐 준 선생님들. 그들이 전문적인 제자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이토록 열심인 이유를 사람들은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리라. 특히나 전문적인 연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케스트라의 학생들이 실력 여부를 떠나 가족처럼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는 그 공동체성을 이해하기는 웬만해서는 쉽지 않을 것이리라.
하나둘씩 사진을 찍으며 혹은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며 자리를 빠져나간다. 내가 살면서 내 아들이 다시 무대에 서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날이 오려나. 더 나아가 나도 언젠가는 무대에 서고픈 희망이 실현될 순간들이 올 수 있을까.
그 무엇하나 불확실성에 가득한 채 공연이 막을 내리고 나니 공연에 참석하지도 않은 사람인데도 아쉬움이 넘치는 기분이다.
뒤풀이에 참석한 후 지난 여름 정기공연에 이어 올여름이나 봄이 아닌 한 겨울에 3회 공연을 하게 된 연유를 듣게 됐다. 우리 아이인 기백이를 비롯해 몇몇 아이들이 이번 공연을 끝으로 작별해야만 하는 시간들이다.
기백이는 고등학교를 지방으로 가게 되니 연습할 시간이 없어질 것이고 다른 아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고 일부는 농장학교를 가게 된다. 2월이 지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처음부터 함께 했던 아이들이 모여 함께 연주할 시간을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터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정기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준비팀들이 지휘자 선생님과 함께 노력한 결과 빠른 시간 안에 공연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나 있을까.
공연 후 뒤풀이 장소에 가서 한참동안 이야기하면서 누군가의 청춘이 끝나듯 세월이 가면 누군가에겐 그날의 모습들이 바로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는 순간들이었지만 잊힐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 잡은 성미산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자꾸자꾸 생각하게 된다.
오늘 저녁에는 트럼펫을 꺼내 불어보련다.
* 성미산오케스트라
성미산오케스트라는 마을오케스트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순수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입니다. 2014년 6월 1회 정기공연을 시작으로 어느덧 창단 3년이 되어갑니다. 정기공연을 3번이나 열었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캠프를 열어 곡을 집중적인 연습을 하고 매주 합주 연습을 진행합니다. 문턱이 없는 순수한 오케스트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