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 지방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아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쿨하게 차에 탄 아내가 자신을 보는 나를 보며 쳐다보지 말라며 빨리 가자고 한다.
아들이 손을 휘휘 저으며 학교 쪽으로 걸어간다. 늘 구부정한 자세에 힘없는 걸음걸이의 뒷모습이 괜히 이 상황을 힘들어하는 듯하다. 내 느낌일 뿐 사실은 전혀 다를 것이다.
예상치 못했는데 아내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을 것을 예상한 내가 더 이상하다. 그제서야 나의 무심함을 깨닫는다. 학교 마당을 나서며 백미러로 아들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말은 출발하자고 해 놓고 차를 쉬 움직이지 않는다. 지도를 찾아 갈길을 찍어야 한다는 핑계로 한동안 학교 앞에 서 있다. 그렇게라도 아이와의 지근거리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다.
올 때와 달리 차가 텅 비어있다. 사람이 하나 줄었을 뿐 아니라 뒷자리와 트렁크에 가득 차 있던 짐을 부려놓았으니 차 안이 마음만큼이나 텅 비어있다. 별로 넓어 보이지도 않은 작은 차에 이렇게 큰 공간이 있었던가.
나는 언제 스스로 어른이라고 느꼈던가. 중학교 때였을까.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내 스스로 어른이라고 느꼈던 기억과 아이라고 느끼는 감정이 오랫동안 교차했었다. 상황마다 달랐던 거다.
아이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꺼려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에 그 누구보다도 충실했다. 겉에서 보면 누구보다 게으르다. 그러나 자신도 어느 순간에는 지금과 다른 생활을 해야 하고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 같은 상황을 최대한 늦추며 버티고 싶어 했다. 중학교라는 시절을 그렇게 의미 없이 보내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까지 계속 자신을 몰아 부쳤다. 그럼에도 자신이 몰아부친 환경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피폐한 영향을 주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지금과 다른 생활을 해야 하고 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대안학교를 보낸다고 하면 주변에서 2가지 시각을 갖는다.
학습에 장애가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기존의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결과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시각이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대부분은 이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 시각은 맞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를 다 보내고 중등을 보내고 나서 일반학교에 가서 적응할 수 있는 대안학교 아이들은 많지않다. 대안학교가 일반학교보다 훨씬 자유롭고 편한데 굳이 일반학교에 가서 적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이들도 의구심이 들 것이다. 물론 어느 날 정신이 퍼뜩 들어 일반학교 가서 입시 공부에 몰두해 대학을 가는 학생들이 있지만 그것은 암튼 가물에 콩나기와 비슷하다.
다른 한 가지 시각은 정서적으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일반 아이들과 교우관계가 잘 형성이 되지 않으니 왕따를 당한다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해 결국 학교를 떠나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대안학교의 아이들에 대한 시각은 전적으로 틀렸다. 상당히 많은 대안학교 아이들은 학습 장애라는 말보다는 일반학교 스타일의 학습이 아닌 다른 학습을 할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귀는 스킬에 있어서는 일반학교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된 경우가 많다.
모든 점에서 우리 아이가 어디에 해당되느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학습에 관해 자신이 넘어야 할 산을 스스로 넘기를 거부했다. 흔한 청소년기의 삐닥선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방치하는 선택을 했고 그 당시에 찾아온 중2의 사춘기는 아이의 생활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게 했다.
1년 반 이상을 쉼 없이 게으르게 지냈던 것 같다. 시간이 날 때마다 게임을 했고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다. 중3이 되면서 내부적으로 조금씩 자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거부해도 자신이 선택하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외적으로 자신의 진로와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경우 대단히 꺼려하고 거부했지만 내부적으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부담감과 걱정까지 스스로 억제하며 생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약간의 자극으로 아이는 자신의 생활에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를 금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뛰어넘는 환경의 유해요소였다. 아니 그렇게 판단했고 그렇게 결론지었다. 어느 날 지방에 있는 학교에 캠프를 갔다. 제주도에서 인연을 맺었던 봉화의 어느 학교 여름캠프였다. 그 여름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내부적인 영감을 얻었는지 혹은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는 선뜻 그 학교를 가겠노라고 선택했다.
잘 믿어지지 않았지만 시간을 내서 면접을 보고서도 아이는 결심에 변화가 없는 듯했다. 오히려 초조한 것은 부모였다. 이런저런 학교를 알아보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를 그냥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NO'라고 대답했다. 아이 엄마가 이 결심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한 테스트 아닌 테스트를 종종했다.
"우리 가족은 네가 성미산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원하고 있다. 네가 원한다면 여기에 남아서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다. 여기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어때?"
아이는 신경 쓰지 말라며 자기가 가겠다고 결심했으니 그리 가겠노라고 결심을 번복하지 않았다. 대신 그때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게임과 게으른 생활을 택했다. 이곳에 데려다 주기 전날 밤까지 그는 게임과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아이가 산속에 있는 학교를 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캠프 때 지냈던 형들의 소위 '포스'가 장난 아니라는 사실에 감명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서울에 남아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게임과 주변 환경의 유혹에서 자신을 차단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끊겨있는 기숙학교를 선택하겠노라고 했다. 고마운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면 아이는 불빛을 따라 갈 것이고 오두막을 찾을 것이다
비록 고등 시절에 아이와 떨어져 지내게 되면 그 이후로 아이가 독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부모 자식 관계는 남아도 이제 아들은 품안에서 내보내야 한다는점은 기정사실인 것이었다.
아이를 숲 속에 던져놓고 오는 일은 기쁘면서도 슬픈 일이다. 단지 물리적으로 떨어뜨리고 지내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일이라면 중1 때 농장학교라는 이름으로 약 8개월간 떨어져 산 적도 있다. 지금은 그것과 다르다. 아이는 스스로 어른이 되기 위한 길을 택했고 부모 된 입장에서는 이를 축하해주고 격려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16년을 키웠던 아이를 품안에서 내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오는 차 안에서 보이는 봉화의 겨울 산세는 높은 것과 달리 황량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황량한 벌판이 아닌 숲 한복판에 아이를 내팽개치고 온 느낌. 밤이 되면 아이는 불빛을 따라 갈 것이고 오두막을 잧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들이 아이의 선택처럼 마술사라도 되어 아이의 삶을 바꿔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마술사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성년이 되어버린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고맙다고 하고픈 기대를 하면서 행여나 아이가 부모 몰래 떨어뜨리고 간 빵부스러기라도 있으려나 힘차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올 때보다 속력이 나지 않는다. 멀리 도망가면 아이가 못 오려나.
어느덧 덤덤해지는 날씨를 따라 해가 넘어가고 마음도 저녁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밥 먹고 갈까?"
새로 생긴 휴게소로 차의 방향을 틀었다. 이 낯선 휴게소가 앞으로 몇 년간 낯선 곳이 아닌 익숙한 곳으로 바뀔 것이다. 그 사이 아이는 숲 속에서 버려두고 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해가며 자신이 제대로된 한 개체로 거듭나 있기를 바랄뿐이다.
낯선 고장이 살면서 새로운 익숙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숲으로 난 길에 자주 올 것 같다. 숲으로 가는 길을 알고있다. 그때마다 아이가 변한 모습을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할 테지. 그때까지는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