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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Feb 13. 2017

스스로 돌아보는 길_관음사

속세를 넘어선 정토는 이곳에 있는가.

관음사를 애초의 목적지로 정해놓고 찾아가진 않았다.


하루 종일 한라산속의 오름과 숲길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가는 1100도로, 갑자기 차의 방향을 산천단 쪽으로 틀고는 관음사에 차를 댔던 기억이 난다. 


바람이 짜증 나리만큼 불고 비가 내리는 건지 정확히 알지도 못할 만큼 하늘은 제 색깔의 정체를 의심하듯 짙은 회색으로 뒤덮었다. 주말만 되면 이런 날씨가 계속이다. 제주의 주말을 화, 수요일쯤으로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그래야 맑은 날 어딘가를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제주의 주말을 화, 수요일쯤으로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관음사 주차장은 널찍한 공간에 비해 언제나 여유가 있어 기분이 좋다.  일주문이 주차장 바로 코앞에서부터 연결되어 있어 다른 절들과 다르다. 통상 육지의 절들은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일주문에 닿는다. 그곳에서부터도 도 또 먼거리를 걸어야 사찰의 앞마당을 탐방객에게 내어주는 구조다. 그런 점에서 관음사는 속세와 가깝다. 다행히 그 속세 바깥에 식당이나 유흥가스러운 장사치가 없어서 그다지 속세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가는 길 양쪽에 늘어선 돌부처상은 관음사가 탐방객에 주는 강한 메시지다. 이곳부터 속세가 아닌 정토의 세계라는 의미가 명확하다. 괜히 이전의 자신을 그만 접고 새로운 모습을 찾고 싶어진다. 양쪽에 늘어선 불상은 사천왕문에 와서 잠시 끊기지만 문을 지나면 또 다른 부처가 흩어진 마음을 정토로 다시 이끈다. 개별적인 돌탑에 부처상들이 올라가 있다. 길의 안내자가 바뀌어 있다. 그러나 의미는 여전하다.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메시지다. 나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런지... 


어쩌면 이 두 곳의 길이 관음사를 각인시키는 전부인 셈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첫 인상에 비해 비교적 세속적인 모습이다. 황금색 지붕은 첫 인상을 더 유지하려 하나 갑자기 정토세계가 현실로 돌아와버린 느낌으로 별로 달갑지는 않다. 더불어 절에 와서 세속적이라니 말이 이상하지만 첫인상에 비해 기대만큼 강인하지는 못하다는 말이다.

발걸음은 토굴을 파고 기도를 드렸다는 해월당 스님의 기도처에 눈길이 머문다. 조그마한 입구 안에 잔뜩 부처님을 모셔놨으니 그 안이 궁금하다. 바람은 겨울임을 채 놓치기 싫은지 순간순간 쌀쌀함을 포기하지 않을 모양이다.


초를 십 수개를 켜놓은 덕인지 따뜻하기 이를 때 없다. 바깥이라고 추운 공기를 예상했는데 나의 예상은 벗어나고 말았다. 아무리 따뜻하다 한들 토굴 속에서 기도하면서 지내는 일은 여전히 멀리하고 싶은 자아성찰의 길이다. 


여전히 관광객인 나는 이곳저곳을 끼웃거릴 뿐이다. 절의 건물들은 이름에서 결국 다 비슷한 것이 아니겠는가. 대웅전과 관음전, 극락전, 명부전 등 사찰에 가면 흔히 갖추어져 있는 건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함께 언덕 위에 있는 건물 두 채가 전부인 듯싶다.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비슷한 기와건물이 두세채 놓여있다. 종무소와 템플스테이를 하는 건물이고 자그마한 것은 화장실이다. 나머지 건물들은 다 어디에 있는고...


대웅전 옆의 건물은 뜻밖에 산신각이다. 다른 각은 야외에 나와있는 셈이다. 대형 미륵불상이 언덕 위에 커다랗게 놓여있다. 미륵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크기로 압도하는 미륵불이 이곳의 상징으로 자리 잡도록 하고픈 모양이다. 그 뒤로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 등 다양한 형태의 보살들이 줄을 지어 촘촘히 서있다. 수십 개의 돌로 된 보살들을 모셔놓는 것이 참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그 주변을 둘러본다.  비바람을 맞으며 오랜 석불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꽤나 운치 있어 보인다.


잠시 걸음을 멈추는 사이 주변 까마귀들이 마당과 나무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내 인기척이 강해지면 그들은 어김 없이 앉아있는 장소를 바꾼다. 그러나 결코 멀리 가지 않은 채 주변에 머물고 있다. 내가 객이고 그들이 주인인데 그들이 갈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경내로 발길을 옮기는 사이 함께간 아내가 안내하는 보살과 함께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손에 커다란 초를 하나 들고 나온다. 이름과 소원명을 적는 종이가 초를 쌓아놓은 케이스 여백에 적혀 있다. 가장 흔한 건강과 재복에 관한 이야기를 끄적이면서 아내는 촛불을 켜고 대웅전 안에 섰다.

 어느덧 숫자와 상관없이 수많은 그때그때의 생각을 지우고 하나씩 미련과 미움과 욕심이 줄어드는 나 자신을 본다

석가여래를 쳐다보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 중 하나는 관음사 구경과 함께 가능하면 거르지 않으려는 108배를 하고자 함이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처지이지만 건강을 위해 매일 저녁 108배를총해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고자 하는 의지를 절에 와서도 해보려는 의도다.


마음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없다. 하나 둘 셋... 108개를 향한 숫자 세기가 시작됐다. 참으로 묘하게도 매번 108배를 하면서 내가 세던 숫자가 늘 헷갈린다. 조금 전 세던 것이 50대인지 60대인지 혹은 다섯 번째인지 여섯 번째 인지. 어디선가 꼭 헷갈리는 부분이 생긴다. 그럴 때일수록 역으로 스스로 숫자 세는 것은 잊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다른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무아의 상태로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숫자를 세고 있는 과정조차 불필요한 일인데 억지로나마 세다가 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순간만큼은 순수한 상태에 가까우려나. 어느덧 숫자와 상관없이 수많은 그때그때의 생각을 지우고 하나씩 미련과 미움과 욕심이 줄어드는 나 자신을 본다. 절에 와서 그정도의 자기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성공한 방문이리라. 그것도 잠시 사라진다고 말할 만큼은 아니지만 참 다양한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과거의 후회와 안타까움이 생각날때면 괴로움도 함께 온다. 

수백 개의 보살들이 줄지어 서있는 미륵대불 뒤편을 걷기 시작했다. 풍상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 때문인지 싫지 않다. 그것이 관음사의 구력이기도 하거니와 자연 속에서 느끼는 사찰의 묘미이기도 하다.


보살의 옆자리에 날짜가 적혀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다가 누군가 보시를 하면 적어주는 모양이다. 석상에 자신의 날짜와 이름을 적어둔 것이  갑자기 눈에 거슬린다. 절도 절나름대로 불자들로부터 많은 보시를 얻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재화와 연결된 듯 싶어 아쉬움이 남는다. 자세히 읽기가 싫어 고개를 돌린다.

나한전이 150m 위쪽에 있는데 발길을 옮기려는 나를 잡아채는 아내에 이끌려 원위치로 온다. 관음사에서 난 무엇인가를 찾기를 바랬지만 이미 늙었는지 볼필요 없는 것만 눈에 먼저 보인다. 


왜일까. 다양한 석상들이 깨끗하게 서있고 건물들도 너무 반듯한 것이 왠지 마음을 담았다는 느낌보다 더 속세를 담았다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길게 늘어선 부처상들을 보면서 봉안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나를 찾겠다는 야심찬 발걸음은 주말 낮은 산책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산책한 것만으로도 나를 찾는데 일조한 것일테니 말이다. 눈이 오면 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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