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속의 화려한 출정식을 마친 선수와 같이 부석사는 힘찬 행군을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부석사를 찾은 느낌을 설명해보자는 생각에 이 같은 느낌이 떠오른다.
부석사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있다는 교과서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불확실한 정보만을 가지고 찾은 터였다. 나는 어느 산골에 처박힌 조그마한 암자쯤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곳을 언제 찾은들 잠깐의 만남만으로 끝나버릴 것이라는 점에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아들을 행정구역상 봉화군에 위치한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는 이유로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 년에 몇 차례 봉화군을 찾게 된다.
남한에서 가장 오지에 가까운 봉화에 대해서는 대학생 시절부터 첩첩산중이라는 기억만 남아있는 곳이다. 30여 년 전 봉화에서 산길을 걷다가 반달곰을 만났다거나 아무런 길도 없는 산속을 헤매며 등산을 해볼 무모한 도전을 꿈꾸던 곳도 봉화라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부석사가 있다는 것은 첩첩산중에 대한 상상만큼이나 심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절이었고 소담스러울 만큼 호젓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산사여야 했던 곳이다.
아이가 있는 학교의 행사를 마친 일요일 오후. 아내와 나는 부리나케 상경길을 무시한 채 네비에 부석사를 입력했다. 아내는 몇 년 전에 찾은 바 있지만 다시 한번 꼭 다녀오고 싶노라고 나에게 길을 재촉했다. 같은 봉화군인데 네비 상 시간만으로 1시간이 걸린다.
산속은 산속인 모양이다. 같은 봉화 내에서도 이처럼 오래 걸리다니. 길은 구비구비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보다는 호젓한 지방도로를 하염없이 거치며 애매한 행보를 계속했다. 절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스스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히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가진 상상력이 얼마나 빈약한 1차원적인 것이었는지를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 이처럼 커다란 절이 있다는 게 말이나 될법한 것인가. 입구에 진을 친 다양한 식당가와 지역산물을 판매하는 매대는 아주 유명한 절을 가진 동네에는 어김없이 존재하는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 기억만으로도 유명한 사찰의 입구는 거의 비슷한 풍경이다. 신흥사를 가진 설악동, 충남의 수덕사, 구례 화엄사, 합천 해인사, 통도사, 선운사, 내장사, 백운사, 송광사 등 지금 바로 이름을 대도 줄줄이 나올 만큼 커다란 사찰로 인해 크게 상가를 형성한 전형적인 사찰 생활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곳에 부석사가 있다는 것은 첩첩산중에 대한 상상만큼이나 심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절이었고 소담스러울 만큼 호젓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산사여야 했던 곳이다
그 이야기는 역으로는 지역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문화 중심지의 역할을 하던 곳이라는 의미를 뜻한다. 경북 봉화지역, 서울 가는 길인 죽령을 넘기 전 소백산맥 남쪽 지역에서는 꽤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사찰이자 지역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곳을 나는 자그마한 암자쯤으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무지몽매함이여! 포털사이트라도 찾아봤으면 이리 허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경내로 들어서면 설수록 절은 스스로 가진 구력을 색칠하지 않은 목조건물의 화려함과 채색되지 않음으로 인해 전해주는 담백함을 함께 내뿜으며 방문객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저 정도의 화려한 건물이라면 유려한 단청이 곁들여 있을 것이 맞을 텐데 단청이 없는 목조건물이 주는 색채가 오히려 더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색이 아닌 건축물 자체의 힘을 뽐내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한 사찰 뽐내기다.
일주문을 지나고 사천왕상을 지나면서 봉황산 부석사라는 이름과 함께 다시 부석사라는 이름이 적힌 안양문을 지나고 나니 제대로 된 경내에 들어선 기분이다. 2층 목조건물 아래쪽을 지나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자 드디어 이름으로만 듣던 무량수전이라는 4글자 간판이 낡았지만 역사와 시간을 함께 한 채 자신만의 위용을 드러낸다. '나는 다른 현판과 달리 4자를 모아서 쓰리라...' 누군가 이 현판을 쓴 사람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앞으로는 무량수전의 고풍스러운 현판을 내보이고 뒤로는 유려한 소백산맥의 봉우리들을 첩첩히 널어놓은 풍광이다. 산중은 거의 기분과 세상을 굽어보는 마음, 속세에 대한 묘한 미련을 함께 보여준다. 부석사는 사람들의 어떤 마음을 통해 이곳에 머물게 했으려나...
색이 아닌 건축물 자체의 힘을 뽐내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한 사찰 뽐내기다
무량수전의 문은 위로 열리는 형식이다. 여닫이 문에 익숙한 나무 문들이 위로 들려서 열려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창문이라고 할까. 그러기에는 너무나 큰 문들이 아니던가... 저리 (창) 문을 열어놓으면 활짝 문을 열어젖힌다는 기분을 낼 수는 없을 텐데... 조금은 아쉬움이 세월만큼이나 쌓인다.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곳의 주지로 있던 분이 단청을 칠하려 했다면 지금은 어떠했을까. 계속해서 새로운 단청을 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게 되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그런데 근거는 없단다. 의상대사는 동해안의 의상대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다양한 장소에 그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도력이 높은 노승이었던 모양이다. 근데 왜 이 절이 부석사지? 본론이다. 땅에 닿지 않고 허공 중에 떠 있는 듯한 커다란 돌이 있다는 부석사. 어딘가에 아랫돌과 닿아있기는 하겠지만 그곳이 굳이 어딘지 알아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무량수전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중간이 굵고 밑이나 위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배흘림기둥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물인 공포를 기둥 위에만 서리한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고대 사찰 건축의 구조와 형식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장식적인 요서가 적은 간결한 형태이나 건물 규모나 완성도 면에 있어서 장엄하고 깊이 있는 법당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부석사에 오기 전 도대체 '떠있는 돌'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사뭇 궁금했었다. 다녀온 사람들이 막상 가보면 안다는 이야기를 한다. 와서 직접 보니 이해가 간다. 이를 말로 어떻게 설명하리오.
슬며시 무량수전 안으로 들어갔다. 중년의 여인 한분이 부처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있다. 저분은 부처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려나. 나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자리에 앉기 전 가볍게 삼배를 하고는 마루에 앉아 정면으로 놓인 부처상을 쳐다본다.
마음을 가다듬고 견디려는 인내는 불심의 부족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탁 트인 풍경과 부석사의 디테일을 찾아 나서보려는 마음만 앞선다
다른 절의 대웅전과 달리 부처상이 옆으로 놓여있다. 문을 활짝 열면 그 앞에 3명의 부처상이 있기 마련인데 한분밖에 없는 데다가 정면이 아닌 좌측을 바라보고 있다. 연유가 뭘까. 내부 구성이 특이하다. 옆으로 놓음으로써 공간 구성에서 한쪽이 소외되는 느낌이다.
한참을 앉아서 부처를 바라보니 무언가 나 자신을 찾아야 할텐데 두리번 거리며 건물에 관심을 둔다. 물건보다는 마음이 우선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견디려는 인내는 불심의 부족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탁 트인 풍경과 부석사의 디테일을 찾아 나서보려는 마음만 앞선다. 초조함이 언제나 명경지수를 앞선다.
무량수전을 나와 눈을 두리번거린다.
도량의 터로서는 역시 좋은 곳이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