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姬路)_역사자원과 별도로 도시의 감성을 생각한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언제나 감성이 오래 남는다. 히메지(姬路)를 방문했을 때도 일본 역사에 대한 이해보다는 흰색으로 보이는 천수각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히메지라니... 도시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나에게 히메지는 마치 꿈속에서나마 가봐야 하는 선경의 어떤 장소와 비슷한 감성을 간직한 도시다.
뭔 일본 도시가 그다지 좋냐고... 이 도시에 대한 기억은 앞에서 말했듯이 아무런 기억이 없다. 다만 어린 시절 혼자서 하루 종일 헤매며 쏘다녔던 이곳 히메지 성의 여운만 있다. 사진이라도 남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내가 이곳에 다녀갔다는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너무나 다시 보고픈 장소이기도 하다. (姬(姬路)路)(감姬路)(姬路)
오전의 방문지인 이에시마를 다녀오고 히메지항에서 나의 강한 어필로 일행의 일정은 히메지 성으로 급히 변경됐다. 변경의 이유인 즉 내가 히메지 성을 보는 것이 26년 만이라는 이유를 들어 잠깐이나마 히메지 성의 천수각을 보고 가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택시가 세워준 히메지 성 앞에서 나는 내 기억 속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그러나 카메라 하나를 들고는 하염없이 감탄을 하며 새하얀 색 천수각을 찍어대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성에 대한 기억 대신 머릿속에 남아있던 것은 성을 향해 연신 셧터를 누르던 자신의 모습이 기억난다는 사실이다. 의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카메라는 당시 새롭게 구입한 펜탁스였던가...
결국 그 사진은 한 장도 인화되지 못한 채 허공을 가르는 헛발질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히메지 성은 내 기억 속의 아련한 장소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 기억의 장소가 다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성 앞 이쯤에서 사진을 찍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배가 몹시도 고팠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일본을 헤매던 여행객은 시간과 돈을 쪼개며 하루 종일 성과 주변 도시를 헤매었었다. 당시 일본의 물가는 그 당시 한국의 원화로는 감당하기에는 결코 싸지 않은 물가였다.
소비자가 혹은 관광객들의 눈높이를 익히 알고 있다는 자만심 넘어 초연함이 느껴진다
히메지 성을 헤매며 기운이 다 빠져버린 나는 관광지 건너편에 자리 잡은 식당과 기념품점 사이에서 검은색의 초라한 식당에 찾아들었다. 일인용 야끼소바를 시켜놓고는 허겁지겁 여행객의 허기를 속였었다. 그곳이 히메지였다. 그리고 내가 보낸 하룻밤의 장소조차 기억에 없다. 다음날 시고쿠에 들어가기 위해 오카야마를 거쳐 세토내해 대교를 건너는 지방 열차를 타고 다시 두량짜리 기차를 타고 시고쿠 섬을 돌아다녔다는 일정만 기억하고 있다. 그 한복판에서 지금은 관광상품을 파는 건너편의 매장들 중 하나겠지만 그 당시의 그 식당은 마치 아무도 찾지 않는 허름한 장소에 가게 매상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이 찾아와 400엔에 불과한 돈을 조심조심 지출한 이웃 한국 젊은이의 꿈을 이끄는 장소였다.
뭐 대단한 기억 하나 없지만 그런 장소를 다시 찾아본다는 것은 참 묘한 설렘을 준다. 마치 이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젊은 처자가 이미 중년이 되어 자신의 기억 속 한 조각을 되뇔 듯 한 느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상상도 마다하지 않는 순간이다.
히메지 성은 백색의 회벽을 발라두었기에 하쿠로 성(白鷺城: 백로성)이라고도 부른다는데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를 시라사기 성으로 잘못 읽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여 주의하라는 친절한 경고까지 보인다. 성 전체는 세계 자연유산이다.
성을 둘러싼 역사적 주인의 변화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이야기와 히데요시의 이야기도 들리기는 하나 일본 역사의 한 복판에서는 사이드로 남아있는 성인 모양이다. 그래도 전란으로 불타거나 하지 않은 일은 다행이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도시가 이쁘고 아름답다. 그리고 정감 어린 모습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근데 이곳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질문이 늘 같이 따라붙는다
천수각에 대한 생각은 한 가지... '보기에 좋았더라'
천수각을 겉핥기로 쳐다보기만 하고 가방을 맡겨놓았던 호텔로 돌아가는 길목. 26년의 설렘은 사실 아무런 감흥도 많이 남기지 않는다. 다만 일본 도시에 대해 또 다른 단상 하나를 추가해 줬을 뿐이다. 그래도 참 좋은 장소라는 점에는 이의를 달 일이 아니다. 일본의 성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그거 말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돌아가는 길 내내 이미 선진국의 안정된 도시를 가진 일본 지방도시의 세련됨을 다시 한번 몸으로 느끼며 걷는다. 적절한 넓이의 인도 깔끔하고 정리된 도시 풍경. 그 사이의 나무도 그렇거니와 순간순간 이 거리의 의미를 되새기는 표지판 그리고 예술 조각상으로 무미건조할 뻔한 인도를 순간 멈추게 하는 예술적 안목에 이르기까지 거리는 이미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깨알 같은 탄성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비자가 혹은 관광객들의 눈높이를 익히 알고 있다는 자만심 넘어 초연함이 느껴진다.
모든 도시가 이쁘고 아름답다. 그리고 정감 어린 모습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근데 이곳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질문이 늘 같이 따라붙는다
도대체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디까지 자신들의 전체 사회를 구조화시켜놓은 것일까. 어느 속까지 일본인과 그 사회를 전체라는 틀 속에 자리매김시켜놓은 것일까. 별거 아닌 거리를 걸으면서도 이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모든 도시가 이쁘고 아름답다. 그리고 정감 어린 모습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근데 이곳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질문이 늘 같이 따라붙는다.
격정의 변화상황이 당연한 세상을 살아왔고 아직도 살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늘 안정적인 모습을 갈구해 왔지만 그 안정을 찾는 순간 스스로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텐데 여전히 변화와 생기가 부정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불어넣으려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감히 침이라도 뱉아야 하나...
지역을 알려주는 표지판의 세세함과 공공디자인적인 요소는 세련됨 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마저 적절하게 사용하는 센스. 나무 주변에 벤치를 고목으로 만든다거나 거리의 이름을 오래된 나무나 돌에 새겨 무심한 듯 입구에 떡하니 박아놓고는 거리의 이미지를 처음부터 바꾸어 놓는 선택은 도시디자인의 요소가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소소한 완성품이다.
나는 갑자기 안내센터로 들어가 히메지에 대한 다양한 안내 팸플릿을 챙기기 시작했다
지나다가 시간에 쫓겨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 도시 순환버스가 눈에 밟힌다. 무슨 샌프란시스코스러운 순환번스다. 서구사회에 대한 밑바닥부터 퍼져있는 동질감이 느껴진다.
더불어 공원의 숲 속에 홀로이 자태를 뽐내는 조각상들에게도 눈길을 주기로 한다. 도시를 예술로 만들어가는 모습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우리보다 앞서있다는 당연한 명제에 체크하게 된다. 앞서있다. 지방도시도...
오사카로 떠나기 전 찬찬히 둘러보던 신칸센의 열차에서 그리고 늘 불빛에 번뜩이는 일본의 기차역을 보면서 역으로 이루어진 사회 일본의 마지막 남은 생기는 어쩌면 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차역은 일본의 보루가 아닐까. 기차역을 보면 일본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을 잘 봐야 한다. 그곳에 일본의 과거와 미래가 있는 것이다. 히메지는 나에게 20여 년이 지난 자신의 모습을 잔잔히 그리고 많은 생각과 함께 자그마한 생각 선물을 제공했다.
나는 갑자기 안내센터로 들어가 히메지에 대한 다양한 안내 팸플릿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 대해 기억해야만 한다. 또다시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