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서 이루어진 '사토야마 교류회2017'
이미 시작되어버린 한여름의 뙤약볕은 도로 위를 달리는 전차라는 특이한 경험을 가슴에 묻고 즉각 더위에 정신을 뺏기게 만든다.
덥다 더워... 아쯔이 아쯔이.
장소조차 정확히 모른 채 길을 건너고 있다. 함께 간 일행이 점심때 먹은 해산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일단 약국으로 향했다. 병원에 진료를 받기에는 선약이 있기에 진단서 없이 먹을 수 있는 약만을 사서 응급조치를 하고 약속 장소를 찾아 나섰다.
혹시나 싶어 약국에서 위치를 물어보니 일행이 택한 방향이 맞다고 한다.
도착한 목적지는 번듯한 건물이다.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한쪽에는 자동차 광고물과 홍보 동영상이 흐르고 한쪽에 번듯한 실내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이벤트는 분명 박람회라는 이름인데 소풍 온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싸가지 온 음식을 먹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즉석 팥빙수를 만들어 계속해서 나눠주는 부스도 마련되어 있다. 그 어떤 행동을 하든 그동안 보아온 정해진 줄과 정돈이 되어있는 일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거야 어딘 한국의 마을모임이나 야유회 분위기지 결코 박람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벤트는 분명 박람회라는 이름인데 소풍 온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싸가지 온 음식을 먹기도 한다
'사토야마 박람회 2017'. 이미 작년에 한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일본 마을 만들기 전문기업인 '스튜디오-L'의 야마자키 료 교수가 열심히 팥빙수를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그도 나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한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지난해 한국에서 만났던 리 입니다."
"물론 기억합니다. 진짜 일본에 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단체에서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당신이 직접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반가우면서도 이 행사를 주관하는 대표로서의 나름 권위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그냥 대장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랄까...
안내자와 인사를 나누고 회사의 안내자는 이번 행사의 취지와 내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지역 내의 공존을 확대하고 지역 내외의 인재들의 교류를 위한 상호교류의 모임과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기 위한 각 마을의 관심 있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박람회라는 것.
사토야마(里山)는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숲, 일본의 중산간 지역을 가리킨다. 한국에는 없는 개념으로 일본식 공동 마을 뒷산인 셈이다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 2017’는 공교롭게도 지역의 도요타 자동차 전시장에서 열렸다. 자동차들은 전시장 밖으로 빼내고 지역주민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토야마(里山)는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숲, 일본의 중산간 지역을 가리킨다. 한국에는 없는 개념으로 일본식 공동 마을 뒷산인 셈이다. 뒷날 사토야마를 설명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암튼 이 날은 히로시마 지역의 중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이 진행 중이거나 했으면 하는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자리다.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일들과 아이디어이겠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한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그러한 모임들을 관이 아닌 민간 기구가 주도적으로 조직하고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네트워크 모임을 구성한다는 사실은 마을 만들기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일본 사회의 색다른 힘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그동안 일본의 겉모습만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실제로 일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이것도 사실 대외적이거나 아주 일부의 내용일 테지만 거대한 자본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의 주류에 맞서 소소한 일상에서 자연을 지키고 마을을 지키며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려 하는 일본의 모습을 본다.
함께 동참할 참가자를 모으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하니 말 그대로 네트워킹 자리인 셈이다
야마자키 료 교수는 두 번째 보는 모습이지만 꽤나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리더의 한 단면을 자연스럽게 연출하고 있다.
발표자들이 나와 자신의 아이디어와 추진 중인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다행히 일행 중에 영어를 하는 관계자가 있어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행사의 면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발표자의 내용이 나름 유명한 프로젝트인가 했지만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조차 발표자의 프로젝트를 처음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함께 동참할 참가자를 모으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하니 말 그대로 네트워킹 자리인 셈이다.
이곳에서 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을 뿐이다
함께 간 일행 중 한 명이 해산물을 먹고 두드러기가 심하게 불거져 긴급하게 지역 병원과 큰 병원을 앰뷸런스를 타고 다녀와야 하는 사태를 겪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뜻밖의 장소에서 이루어진 이날의 회합은 예상치 못한 박람회였다.
박람회를 마치는 시간이 되기 전 자연스럽게 자리를 먼저 파하고 앞뜰에 펼쳐진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한가로운 시간. 먼저 출발한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한 시간 여가 남았다. 돌아왔던 길을 역으로 되짚어가며 전차를 타고 히로시마 역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그때까지 이름 모를 그리고 다시 돌아올 일이 거의 없어 보이는 낯선 장소의 일본을 음미한다.
이놈들은 공원에도 구력이 붙어있지만 이곳에서 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을 뿐이다. 아이는 아이다. 다만 도시가 오랜 구력에 맞춰 여유를 담고 있을 뿐이다. 뙤약볕이 채 가시지 않은 늦은 오후의 시간을 오래되고 낡은 벤치에 앉아 보내며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나름 여유로움의 시간 보내기가 가능한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경쟁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먼저 자리 잡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