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를 타면서 느낀 감상을 이야기 하다.
막연히 도착지가 일본의 히로시마라는 점이 기분이 좋았다. 도쿄나 오사카가 아니라는 사실. 아주 크지 않은 지방도시로 도착한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도시 히로시마. 원폭 도시로 훨씬 잘 알려진 도시이기에 평화도시를 표방하는 도시의 이미지에 대해 한껏 긴장하며 도시를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
이 도시는 나에게 무엇을 품어 내어줄까. 낯선 도시를 방문하는 설렘은 대체로 이 같은 마음이다. 사람에게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도시도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오랫동안 그 도시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기준이 될 터이다.
그동안 안 가본 일본은 나에게 지문날인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전에 지문날인을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암튼 새로운 기분과 함께 불쾌하다.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이 태도는 일본이 가지고 있는 속내에 해당된다. 겉으로는 아무리 친절한 척 해도 유니폼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수많은 권위적 혹은 행정적 사회구조 속에 어쩔 수 없이 편입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전히 일본의 젊은이들은 답답할 것이다.
입국심사를 마친 히로시마 공항의 대합실은 예상보다 한결 소담스럽고 농촌스러웠다. 이렇게 작은 도시였나? 그렇지 않을 텐데... 암튼 첫인상이 주는 틀에 박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정돈되어있고 깔끔하다. 외부인에 대한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느낌이다.
공항에서 히로시마 역으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산과 마을 사이를 뚫고 지나다 보니 도시의 중심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예의 어느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각 도시의 중심은 역이다. 커다란 역과 주변의 호텔, 그리고 다양한 쇼핑센터와 식당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일본에 도착한 것을 실감한다.
암튼 첫인상이 주는 틀에 박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정돈되어있고 깔끔하다
목적지는 어딘지 모르겠지만 함께 간 일행이 끌고 간 곳은 다행히도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 물론 걸을 일도 아니지만 다시 버스로 도시의 방향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는 일은 영 취미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로 인해 짐은 역의 라커에 맡겨놓기로 한다. 여행용 가방이 들어갈 수 있는 라커는 일본만의 아주 중요한 도시 인프라이기도 하다. 역을 중심으로 모든 도심의 기능이 발달하다 보니 역으로 다시 돌아올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편리한 짐 보관소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커다란 짐을 맡길 라커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미 사용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렵게 짐들을 맡기고 오늘의 미팅을 위한 예정지를 찾아 교통편을 수소문한다.
오호~! 전차다. 이곳에 전차 즉, 트램이 있다. 역에서 다른 곳으로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이 전차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일인가. 전차가 살아있는 도시를 만난 곳이라고는 아주 오래전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였다. 그때 도시에 전차가 운행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부러웠던지... 그 전차를 일본에서 다시 타보게 된다. 일반적인 지하철이나 모노레일 같은 교통수단 하고는 멋스러운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홍콩에서 보는 전차의 느낌과는 왠지 모르게 많이 다르다.
도시의 교통을 생각한다. 제주 역시 대중교통 개편이 한창이다. 8월 26일이면 30여 년 만에 새로운 교통체계가 도입되고 버스체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동안의 불편했던 교통시스템과 시간, 노선 등은 물론 급행, 지선 버스 등이 도입되며 서울시의 교통체계를 거의 비슷하게 모방한 시스템으로 바뀌게 된다.
도시가 살아있다고 느끼거나 도시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경우, 혹은 도시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대중교통이다. 전차와 모노레일 혹은 BRT 등 기술의 발전과 도시의 특성에 따라 채택하는 결과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 따라 도시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전차를 선택한 도시의 경우, 근대 교통의 중심이 철도에서 자동차와 지하철 중심의 교통수단이 특화되며 전문화되는 중간쯤으로 생각되지만 단순히 기능적 측면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도시가 주는 이미지는 도시의 색깔이다. 결코 빠르지 않은, 그러나 도시의 중심지 곳곳으로 승객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는 역할로서 전차는 지하철과 같은 기능 중심의 대중교통과 달리 괜한 낭만과 아날로그형 문화에 대한 향수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도시가 살아있다고 느끼거나 도시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경우, 혹은 도시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대중교통이다
히로시마의 전차는 여전히 관광객들과 도심의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는 듯하다. 한국사회에 전차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제주와 같은 한정된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같은 전차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이라도 원도심과 같은 도시의 근대 역사와 함께하는 교통수단으로 전차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다.
이제 와서 올드 버전의 전차를 도시에 도입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일보한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전차가 주는 역할을 도시에 심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오래된 도심의 대중교통을 전차형의 도시교통을 채택하기를 학수고대한다.
히로시마라는 이름만 알고 있는 일본의 도시를 도착하면서 나는 전차를 타는 기쁨에 한동안 들뜨게 됐다. 속도는 꽤나 느리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차장이 있고 운전사가 있고 거스름돈을 바꿔주는 운전자가 안내방송을 하는 도시의 역사가 내가 사는 도시에도 여전히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전차가 계속해서 운영되는 도시인 히로시마를 보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도시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도시는 역시 과거가 있는 미래지향의 도시여야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 최고의 관광지로 일컬어지는 미야시마(바닷가에 세워진 신사)에 가기 위해 히로시마 역에 잔뜩 모여들어 객차 가득 올라타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면서 히로시마라는 도시의 인상을 가슴에 담는다. 도시는 역시 과거가 있는 미래지향의 도시여야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40여분이 넘는 전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무더운 뙤약볕을 걷는 번거로움보다는 이 곳까지 전차를 타고 왔다는 신선한 경험과 뿌듯함이 기분 좋은 도시의 인상을 남긴다. 히로시마에 대한 인상은 그것으로 족했다. 전차를 탔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