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뿐 아니라 많은 절들이 그 절에 남아있는 옛적 이야기들 때문에 관심을 끈다. 현실 가능성이야 별로 없지만 어느 장소에 다양한 설정의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기 마련이다. 찾아올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통해 위안을 삼게 해준다.
부석사도 이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왜 돌이 공중에 떠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필시 연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 연유가 이곳에는 의상대사와 아름다운 여인 선묘와 관련이 있었다. 사랑이야기가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지사다.
무량수전의 뒤편을 돌아 오르니 선묘각이라는 자그마한 건물이 나온다. 다른 각들과 마찬가지이긴 한데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다. 그 연유는 부석과 관련이 있었다.
현실 가능성이야 별로 없지만 어느 장소에 다양한 설정의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기 마련이다
부석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읽으면서 드는 느낌. 옛적의 스님들은 잘생기기도 했고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자들도 우습다. 대사가 배 타고 떠났다고 바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쫒아가거나 기다리면 될 일이지... 암튼 절과 스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여자들은 곧잘 자살하곤 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상이 반영된 것이리라.
신라 문무와 1년 (661)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 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쳐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 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나타나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래서 이 돌을 '부석(부석)'이라 불렀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선묘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보기 드문 바위 하나가 그다지 연관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야기를 꿰맞추는 역할을 한다니 스토리 텔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선묘각을 나와 바라보는 경치가 더 애틋하다. 옛적에 저 산들을 넘기 위해 멈춰 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부석사의 앞마당에서 자신들이 넘어야 할 저 산 너머를 그리며 자연의 위대함에 경탄하거나 스스로에게 새로운 다짐을 했으리라.
선묘각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3층 석탑이 눈에 띈다. 절이 오래된 만큼 불탑도 오래되지 않았을까. 탑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로 이 역시 설명을 읽어보는 밖에... 설명에 따르면 법당 앞에 세워지기 마련인 탑이 동쪽에 세워져 있다는 특이함을 제시한다. 그 이외의 탑의 특성은 무얼까... 에라 모르겠다.
석탑을 둘러싸고 머뭇거리는 사이 사람들이 산 쪽을 향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위에 다른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산책 삼아 그곳을 찾기로 하고 발걸음을 산 중턱으로 향한다.
옛적에 저 산들을 넘기 위해 멈춰 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부석사의 앞마당에서 자신들이 넘어야 할 저 산 너머를 그리며 자연의 위대함에 경탄하거나 스스로에게 새로운 다짐을 했으리라
보물 249호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너비가 매우 넓고, 탑신 1층의 몸돌 또한 높이에 비해 너비가 넓어서 장중해 보인다.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아래층 기단은 가운데에 2개씩의 조각을 두고, 위층 기단에는 하나씩을 두었다.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으로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1960년 해체하여 복원할 때 철제 탑, 불상의 파편, 구슬 등이 발견되었고 이때 일부 파손된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보충하였다. 탑은 원래 법당 앞에 건립되는 것이 통례이나 이 석탑은 법당의 동쪽에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사람들이 오르는 길을 따라 호젓한 산길을 오르니 조사당이라는 아담한 건물이 나온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모신 곳이다. 설명에 의하면 고려 조사당은 고려 신종 4년인 1201년 단청을 하였다는 기록도 확인된 바 있다 한다. 조사당이 세워진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80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 일이다.
조사당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 하나.
출입문 좌우 안쪽 벽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제석천과 범천 그리고 사천왕상이 있었는데 1916년에 건물을 수리하면서 떼어 내어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지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원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벽화이다. 현재의 조사당 내부에 있는 벽화는 새로 그린 것이다.
건물 앞에 유리로 막힌 채 나무 하나가 앙상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자태를 뽐낸다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 상태지만 유리 울타리를 쳐가면서 보관할 정도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무의 이름은 선비화. 의상대사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꼽으니 그 지팡이가 자라 선비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때 살아남은 나무라면 여태 저 정도로 앙상할 리가 없다. 손자에 손자를 거듭한 나무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충분한 추론이 가능하지만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에 대한 사실 여부가 아니다. 의상대사라는 의미 있는 인물과 관련된 신비로운 옛이야기가 전해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으리라.
늘 관점의 차이는 의미가 있으리라. 천년 이상을 견뎌왔다는 설명인데 결국 남아있는 것은 왕성한 번성이 아니라 생명만을 유지해온 대물림인가. 아니면 쇠락해가는 존재에 대한 생존본능인가. 전자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나무다.
암튼 관심거리가 있고 사람들이 이를 보기 위해 올라온다는 것은 절의 입장에서 보면 놓칠 필요가 없는 좋은 유인책 이리라.
내려오는 길 길은 다른 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사당에서 의자에 앉아 방문객들을 감시하는 듯한 나이 든 아저씨 한분이 갑자기 일어나 조사당의 문을 잠근다. 저분이 이곳의 관리인인가? 아니면 다른 역할이 있는 것일까. 갸우뚱하는 마음을 안고 나한들이 보셔져 있다는 자인당과 단하각이라는 낯선 이름의 각을 찾아 발길을 돌아본다.
나한이 모셔져 있는 자인당은 불을 켜놓지도 않아 분위기가 어둡고 음산한 느낌이다. 실제로 나한들이 저 같은 어두운 포스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정겨운 친구나 친인척을 만나는 듯한 기분으로 삼성각 내부를 쓱 훑어보고는 살짝 그림 속에 남아있는 산신령에게 미소를 보내며 인사한다
자인당을 벗어나 옆길로 내려오다 보니 의외의 장소에 전통의 명소라면 의례 있을 삼성각이 놓여있다. 다른 건물보다 꽤나 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의 산세와 재래신앙의 전통이 꽤나 오래 지속됐음을 방증하는 모습이다. 산신각이나 삼성각으로 대표되는 재래 종교의 영향은 참으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어 나도 모르게 내 몸속에 숨겨져 있다. 뿌리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게 해준다.
마치 정겨운 친구나 친인척을 만나는 듯한 기분으로 삼성각 내부를 쓱 훑어보고는 살짝 그림 속에 남아있는 산신령에게 미소를 보내며 인사한다. 그곳에 들어가서 절까지 할 일은 아니지만 이곳에 다녀갔다는 가벼운 인사 정도는 나누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 일반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관음전 앞마당에서 소백산맥의 다기한 봉우리들을 다시 한번 눈에 담는다. 아니 가슴에 담는다. 이곳에서 나는 대지의 기운을 품고 마음의 힐링을 얻을 수 있으리라.
내려오는 내내 예기치 않은 지역의 커다란 사찰을 낱낱이 훑어보며 느끼는 감정을 가슴에 소복이 담고 내려온다. 꽤나 괜찮은 소풍을 다녀온 느낌. 어릴 적 사이다와 김밥을 먹는 기쁨으로 채워졌던 소풍의 기분이 먹을 것 없이도 고스란히 채워진 뿌듯함을 안고 걷는다. 터벅터벅 피곤한 발길이 불쾌하기보다는 유쾌한 순간들이다. 날씨는 여전히 찌뿌둥하다 못해 해가질 기미가 조금씩 비치고 있다. 서울로 향하는 발길을 서둘러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