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의 숨겨진 명승을 찾아낸 기분 좋은 탐방
섬진강은 이름만으로도 뭔가 낭만적이거나 아스라하다.
그 섬진강이 맞닿아 흐르는 지리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리산을 종주한다거나 산수유, 벚꽃 등의 수많은 자연 풍광에 매료되는 곳이지만 굽이치는 물결과 겹겹히 둘러쌓인 능선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느 관광지도 갖지 못한 강한 매력을 갖는다.
노고단과 화엄사를 수차례 다녔지만 이번에 그 시발점인 구례에 발을 들인 이유는 관광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생뚱맞게도 광양에서 치러진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렵게 찾은 구례행이었다. 제주에서 광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광주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한 후 다시 광양행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와 김포를 왕복하던 비행기에 익숙해진 동선에서 광주와 광양이라는 목적지는 어쩐지 낯설기만 한 것은 사실이었다.
구례에 귀농한 지인이 있다는 것은 이럴 때 매우 편리한 일이다. 물론 광양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구례로 바로 찾아들었다. 토요일 저녁 무렵 일사병이 걸릴 만큼 폭염이 무서운 5월의 후반부. 어이없이 예년보다 훨씬 일찍 찾아든 무더위로 숨을 헐떡이며 지인의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를 타고 구례로 들어오는 길 멀리 보이는 지리산 능선들과 달리 코앞에 삐죽하니 솟은 봉우리가 있다. 그것도 삼각형 모양으로 혼자만 솟아있는 낯설면서도 피노키오 코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 산은 뭔 봉우리래?"
"오산이야"
"뭐가 오산이야?"
"저 봉우리 이름이 오산이야"
봉우리의 생김새만큼이나 낯선 이름이다. 오산이라니.
"저기 산 꼭대기에 사성암이라고 있어. 괜찮으니까 집에 들렀다가 갈데없으면 저기 다녀와."
오산은 그렇게 가게 됐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이른 무더위로 숨이 막히는 5월의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지인이 데려다준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게 됐다.
"저 산을 셔틀을 타고 오른다고?"
"응... 너무 위험해서 다른 차들은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셔틀버스만 다녀"
쳐다보기만 해도 높은 봉우리를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황당했지만 셔틀버스가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된다. 옛적 대관령 목장에 아무런 차나 다 오르게 하다가 길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 출입을 금하고 셔틀버스만 타고 다니도록 한 일이 생각났다.
버스비는 싸지 않았다. 왕복 3000원이라니. 한 번씩 타고 내리는데 3000원이면 비싸다. 암튼 막 움직이려는 셔틀버스 기사분이 시간을 보더니 아슬아슬하다며 우리더러 빨리 다녀와야 한단다. 일단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버스를 탄 시간이 5시가 넘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버스가 6시 20분이 막차다. 말 그대로 시간이 없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이른 무더위로 숨이 막히는 5월의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지인이 데려다준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게 됐다
버스는 산 정상을 향해 고바위 길을 구비구비 돌면서 힘겹게 올랐다. 이렇게 비탈진 길에서 왕복 차량이 서로 마주치면 참으로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할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는 셈이다.
뜻밖에 정상 부근에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모여있다. 이 산꼭대기를 차를 타고 암자 하나를 보러 올라오는 무리들이 많은 걸 보니 놀랍다. 잠시 후에야 이 지방의 관광명소를 지역 사람들이 왜 많이 찾는지 알았다. 이런 곳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기도 하다.
지리산의 겹겹히 둘러쌓인 능선과 봉우리를 감상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성삼재다. 노고단까지 걸어서 한 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고 노고단 운해와 멀리 이어지는 산과 산들의 연이은 장막들이 늘어져 보이는 곳. 지리산을 명산이라 일컬을 수 있는 가장 많은 단초를 제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섬진강의 굽이치는 물길과 마을의 풍경이다. 첩첩산중의 능선들과 섬진강의 물길, 마을과 논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었던 곳이 지리산 자락에 있었나 생각해 본다. 기억이 없다.
갑자기 성산일출봉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해돋이의 명소인 일출봉을 자주 찾는다. 그러나 일출봉에 오르면 바다와 우도를 함께 보지 못한다. 섭지코지에 가서 일출봉을 바라보거나 다랑쉬오름 혹은 식산봉쯤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은 오히려 일출봉의 의미를 더 강하게 전해준다. 무엇보다 바로 옆 종달리에 있는 지미봉의 일출봉은 압권이다. 우도와 일출봉 그리고 종달 바당이 코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을 바라봐야 비로서 일출봉이 멋진 장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성암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노고단과 같은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산들의 병풍을 첩첩히 느낄 수 있을 뿐더러 아래로 구비구비 흐르는 섬진강과 넓은 평야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오산이 있어서 가능한 모습니다.
별거 아닌 작은 봉우리라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앗,,, 누군가 썰렁한 이야기에 몸서리 치리라.
버스에서 내리자 길은 고바위로 정상을 향해 있었다. 시멘트 바닥으로 포장된 길은 이 정도 고바위의 높이에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 구부려져 있다. 일단의 사람들,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려온다. 나와 아내는 오르느라 힘이 들어 식식이는데 흥에 겨워 막걸리 한잔 걸친 나이 드신 분들이 신명이 나 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귀에 바로 와 닿는다.
잠깐을 올라가면서 깜짝 놀랐다. 이런 곳에 이런 암자가 있다는 것도 놀랍다. 옛적에 어떻게 이곳에 암자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경치 좋고 산세가 좋아도 이곳에 암자를 세우는 것은 반칙이다. 그런데 그곳에 버젓이 암자가 높이 서있다. 암자만 달랑 하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양간과 또 다른 암자가 그 위에 다시 또 서있다.
말 그대로 허걱이다. 중국의 화산에 올라온 줄 알았다.
"나쁜 인간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으면서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구례를 방문했것만 이제야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다니"
푸념과 원망이 절로 나왔다. 그런 푸념을 내뱉기에 충분하도록 이곳은 멋지다. 경치가 멋지다는 사실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한 것인가.
아내와 나는 계속되는 감탄과 예기치 않은 경험에 맞닥뜨리며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성암 꼭대기에 오르니 마애불이 있는 곳을 막아 유리가 보이도록 하고 그곳에 기도도량을 세웠다.
멋진 풍광도 풍광이지만 이곳에 마애불을 새겨 넣을 정도라면 어제오늘에 만들어진 암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암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곳이 발달되고 확장되어 오늘이 됐으리라.
돌로 쌓은 담과 그곳에 세워진 암자를 보기 위해, 그곳에 배어 있을 영험한 기운에 무언가 기복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불당에 절을 하고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그 소원들이 어느 것은 이루어졌을 것이고 어느 것은 언제 그랬냐 싶게 무시될 것이지만 그 마음은 어디선가 곱게곱게 켜켜이 쌓이리라.
안타까운 시간을 남겨두고 못 보는 곳이 없도록 혼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아내가 뒤따라오는 것을 멈추고는 사라졌다. 법당에 들어가 3배를 하고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날만큼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가 얼마나 불안케 했으면 아이와 가족을 위해 가는 곳마다 마음을 모으고 있을까...
엄마이자 아내의 마음이란 저런 것이구나 싶다.
재촉하는 시간이 너무나 아쉽게 해는 중천에서 여전히 식을 줄 모른채 뜨거운 볕을 내리쬐고 있다. 그래도 막차를 위한 시간은 가기 마련. 셔틀 봉고차 2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도착하기 무섭게 한대는 아래로 사람들을 가득 싣고 내달음 친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암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곳이 발달되고 확장되어 오늘이 됐으리라
마지막 차에 탄 사람들은 이미 술에 취에 있다 못해 거의 절어 있는 분위기다. 그 안에 유일한 다른 손님이 나와 아내 둘 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분들은 그 자그마한 차에서 노래를 부르며 연신 남아있는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럽지만 한편으로 저 분들은 무슨 즐거움이 저리도 넘칠까 싶다. 유쾌한 인생들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저리 비칠 때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셔틀버스가 애초에 우리를 태웠던 곳에 도착한 후 아내는 나에게 십수 년 전에 있었던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게는 아직도 틀어박힌 결혼식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 결혼식이 나는 아주 단편적으로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란 남자와 다르다. 다시 한번 느낀다.
그 시간의 강물이 아무리 흘러도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쉬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 한가운데 있으며 나는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이 만든 역사지만 자연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산과 강과 논과 밭과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 생뚱맞게 우뚝 솟은 한 봉우리로 인해 주말의 한켠을 마음 깊이 내어주고 말았다. 다시 와봐야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