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춘천 시내를 벗어나 한적하면서도 오랜 상혼으로 둘러싸인 도로를 지나서야 내 마음은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버스가 오래된 포장도로를 오를 때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옛 흔적의 형체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소양강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된 여행지이다. 아직도 수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쌓아주려고 온 힘을 다해 계곡마다 흘러내리는 물을 가득 안고 버티고 있다.
"소양강 처녀는 여전히 노를 젓고 있을까"
치기 어린 말도 안 되는 말장난으로 말문을 텄다. 그 소양강 처녀가 노를 어디서 저었는지 혹은 그 처녀가 실제 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그 처녀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목놓아 불러보던 '소양강 처녀'는 술에 취하거나 맨 정신이거나 습관처럼 불러보곤 했다. 마치 모든 청년들의 애인을 소양강에 몽땅 풀어놓은 듯 만인의 연인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었다. 그 처녀가 있는 곳이다.
그리운 마음을 하나씩 풀어헤치면서 버스는 댐을 향해 올랐다. 누군가 물었다.
소양강댐의 건설방식은?
갑자기 어린 시절 배웠던 단어가 생각났다.
'사력댐'
그것이 맞는지 혹은 맞더라도 무슨 의미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습관처럼 기억하는 것들이 많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면서도 머릿속에는 묘한 기억의 저장고가 가끔씩 소리 없이 덜컥 열리곤 한다.
마치 모든 청년들의 애인을 소양강에 몽땅 풀어놓은 듯 만인의 연인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었다
주차장에 내린다. 댐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물길이 보인다. 저 물길은 내려가 팔당호에 닿을 것이고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과 다시 서해 바다로 내려가는 물길이 될 것이다. 수려한 산과 계곡을 구불구불 이어가는 모습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반대쪽은 댐으로 가둬놓은 소양호다. 멀찍이 소양강댐과 소양호를 알리는 글씨가 보이고 아직 선착장은 멀다. 선착장으로 이동하기 전 마음이 괜실히 설렌다. 사람들이 어디가 청평 사냐며 묻는다. 나도 잘 모르지만 여기서 안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바다처럼 보이는 넓은 호수 저편은 어는 산골의 이름 모를 계곡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궁금증이 마구마구 일어난다. 이름 모를 계곡들과 맞닿는 그곳을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양구로 갔던 기억이 난다. 이곳이 맞는가? 아주 젊을 적이었던 것 같다. 설악산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양구까지 가서 인제를 지나 설악산 등산을 갔던 기억이 난다. 언제였는지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이동하는 것만 하루 종일이 걸렸던 시절이었다.
이제 부터는 관광 모드로 변신이다. 배를 타러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하던 중 소양강 처녀상을 만났다. 관광객들을 위한 동상 이리라. 실지로 그 소녀가 어디서 어떤 배를 저었는지 관심을 가질 일도 아니거니와 노래 가사에서 너무나 유명한 일이라 일반화된 대표인물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강에서 소녀의 이미지를 연결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스라함과 함께 혹시나 하는 그리움을 연결시킨다. 그 소녀가 누구든 혹은 이미 나처럼 중년이 되었든 그런 사람과 만나 과거를 이야기하거나 시간을 이야기하고픈 느낌이다. 그래서 소양강은 막연한 아스라함을 듬뿍 선사한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 소양강 처녀의 동상을 살며시 매만져본다. 혹시나 하는 가슴속의 그리움을 전해주고 싶었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면서도 머릿속에는 묘한 기억의 저장고가 가끔씩 소리 없이 덜컥 열리곤 한다
그 기분을 오래 느끼기도 전에 청평사로 가는 배는 사람들로 곧 가득 찼다. 대부분 단체 관광객이거나 연인, 혹은 가족 관광객이지만 여기저기서 북적대는 소란한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빈자리에 앉았다. 바로 옆에서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혹시나 내가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한다.
물론 특정의 누군가가 아닌 시간이다. 오늘은 마냥 슬픈 과거보다는 그냥 즐거운 관광에 집중하려고 한다.
낮으막히 물가에 붙어서 계곡들을 헤치며 달리던 배는 10여 분 만에 청평사에 닿았다. 청평사는 선착장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리며 나아간다. 완전히 방향을 잘못짚었다. 아무렴 어떠하리. 이 안으로도 계곡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물길이 닿을 구석구석의 계곡 끝이 궁금할 뿐이다.
함께한 지인이 카약을 타고 아무도 모르는 계곡가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나오면 최고의 야영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근데 난 카약을 타본 적이 없다.
이제 부터는 청평사 유람 모드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청평사를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이 길 외에는 대안이 없이 입구로 난 시멘트 길에 줄지어 걷는다. 이윽고 어느 관광지나 마찬가지인 먹거리 식당가가 나온다. 손님들을 잡으려는 가게 직원들은 사투 어린 듯한 목청과 감언이설이 곳곳에 난무한다.
함께 간 무리가 청평사행을 포기하고 오전 댓바람부터 식당에 자리를 튼다. 왕복 1시간이면 되는 거리를 벌써부터 허덕이더니 도저히 못 올라가겠다며 4명이나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머지 일행이 내려오는 대로 기다릴 테니 다녀오란다.
어이가 없다. 위로 올라가면 얼마나 좋은 곳이 많은데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먹기부터 하자니. 그래도 그것도 그들의 선택. 오랜만에 오르는 청평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면서 나무숲이 시원한 계곡이야 웬만한 산에 가면 다 만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느덧 이런 계곡이 그리운 환경에서 살다 보면 계곡 물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졸졸졸 하는 물소리와 바위를 넘어 골짜기를 찾아 나서는 물길이 내가 지내는 제주에는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소규모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계곡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는 계곡 피서를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 그런 장소는 없으므로.
그래서인지 청평사를 오르는 내내 계곡의 물소리가 너무나 정겹다. 자그마한 폭포까지 보여주니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시원하다. 비껴갈 수가 없다. 들러보는 수밖에.
구성폭포에는 청평사의 상사뱀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상사병으로 죽은 젊은이가 뱀으로 변해 공주의 몸에 붙어살다가 구성폭포가 있는 계곡에서 공주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벼락을 맞고 죽었다는 짝사랑의 슬픈 이야기가 담긴 곳. 그래서인지 상사뱀 이야기를 동상으로 만들어 계곡에 세워놨다. 오늘날로 치면 스토커가 된 것이고 죽어서도 10년간 계속됐으니 지독한 놈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청평사 가는 길은 상사뱀과 중국 공주의 이야기를 구성폭포와 절이 갖는 불심을 한데 묶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가는 길이 심심치 않다. 이야기는 언제나 자연과 덧붙여 있으면 새로운 문화자원이 된다.
제주에도 유명한 폭포가 많지만 절에 가면서 중간에 가볍게 맞이하는 폭포의 기분은 의외로 반갑다. 크기야 어떻든 이런 계곡에 폭포가 있다는 것이 새롭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와봤는데 왜 폭포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는 걸까. 난 청평사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지? 솔직히 절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다.
폭포 옆에는 공주가 지냈다는 공주 굴이 표지판과 함께 보인다. 그런데 과연 공주가 저런 옹색한 굴에서 지냈을까. 그래도 명색이 원나라 공주라는데...
암튼 이런저런 연유로 이야기가 나왔을 터니 그대로 믿기로 하고 발걸음을 청평사로 바쁘게 향했다.
길의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는 않아 다행이다. 초반의 약간의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걸을만한 길이다. 멀지도 않다.
다리를 건너자 약수가 보이고 눈앞에 절이 성큼 다가왔다. 이제부터 경내다. 앞부분을 돌계단으로 쌓아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절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 새롭다. 안보이던 곳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는 느낌.
절은 경사가 심한 곳에 자리를 잡아 계단들이 많은 편이다. 뒤편의 수려한 산세가 대웅저 뒤편으로 눈에 들어온다. 멋진 계곡과 수려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으니 그야말로 배산임수가 아닐 수 없다. 하긴 예적에 산 깊숙이 절을 지으며 식수가 해결되지 않는 곳에 지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계곡이 좋은 터의 뒤편은 수려한 경관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도 참 깊으면서도 아늑한 장소다.
경내는 넓은 대지가 없는 때문인지 많은 건물이 조밀한 간격으로 붙어있다. 가파른 경사로 인해 위의 건물이 본의 아니게 이층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 보인다. 색다른 분위기를 전해준다. 천정에 걸려있는 연등과 가운데로 열린 문이 있는 이층의 모습이 마치 옛 궁궐터의 어디쯤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긴 예적에 산 깊숙이 절을 지으며 식수가 해결되지 않는 곳에 지을 리도 만무하거니와 계곡이 좋은 터의 뒤편은 수려한 경관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웅전에 들어서려는 순간. 독송 소리가 크게 들린다. 무슨 날인지 한 무더기의 군인들이 대웅전에서 예불을 들이고 있다. 3~40명은 족히 됨직한 숫자가 넓지 않은 대웅전에 다 들어가 있으니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아쉽지만 대웅전은 패스. 다른 미륵전이나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 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한전 등을 들러보면서 이 절만의 아늑한 기분을 만끽한다.
역시 안타까움은 시간으로만 남는다. 일행이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 11시 배를 타기로 약속해놓은 터라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더 거닐다 가고픈 머뭇거림으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다른 일행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메라와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그때 멀찍이 오래된 수령의 나무가 시선을 붙잡는다. 여기에 왔으면 기본적으로 나 정도는 보고 가줘야지 하듯 발길을 이끈다. 오래된 나무이기는 한듯한데 아직도 저렇게 생생한 것을 보니 3~400년은 되지 않았을까.
나무 앞의 설명서를 살펴보니 830년 된 나무란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나무 치고는 너무나 생생하고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 대단한 나무다.
멀리 아래로 굽어 보이는 능선들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가슴에 담고 발길을 옮긴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빠듯한 시간으로 인해 청평사의 경치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추억이 내리는 소양강호의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청평사를 걷는 마음이 옛적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심정이다. 추억여행이라도 오는 듯하다.
인걸은 간데없어도 산천은 여전하구나. 옛 시인의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강물은 계속해서 흐른다. 내 마음의 추억도 함께 흐를 뿐이다. 그 아름답던 청춘의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