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당사자로 반은 손님으로 바라본 집들이 이모저모
다시 한주만에 서울행 비행기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집으로 떠나는 길.
몸은 제주로 이주했는데 반쪽은 아직 서울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미산마을에서 산 9년의 세월이 있기도 하고 어렵게 입주한 새집을 마포에 두고 가족이 있으니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새로 맞은 집의 8 가구가 집들이를 기획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반만 주인 행사하고 반은 손님으로 찾기로 했다. 남들이 다 준비해놓은 상에 숟가락만 얹으러 서울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집만큼 복잡한 단상을 만들어 내는 주제도 없을 터다.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혹은 서울에서 집을 마련해 산다는 의미는? 평생을 집 없이 살면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내가 사는 집이 아이에게 물려줄 재산이 아닌데 의미가 있는 것일까? 등등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드는 주택에 산다. 아니 가끔 들른다.
공동체주택이자 토지임대부주택이라는 매우 낯선 구조의 집에서 첫 번째 집들이를 했다. 땅은 서울시 땅에 건물만 입주자들을 모아 지었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집값을 줄이기 위한 시도다. 물론 땅값에 대한 임대료를 낸다.
일요일을 집들이 날로 착각하고 여유를 부리다가 행사가 토요일인 것을 알게 되자 괜히 미안한 마음에 마음만 바빠졌다. 모든 준비는 다른 가구들이 다 마쳤으므로 사실 나는 할 일이 없다. 나는 이 집의 조합원으로서는 자격미달이다. 그래도 아내 덕에 이 집에 눌러앉아 살고 있다. 아니 내 집처럼 가끔 들른다. 앞으로도 얼마나 자주 들르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울에 거주지가 있다는 것은 불안감을 한결 적게 한다. 더구나 든든한 이웃이 함께 모여서 산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불안감보다는 꿈속의 일처럼 멋진 일이다. 앞으로 다른 문제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그 문제보다는 사람들이 우선인 마음은 가지고 살자.
대한민국에서 집만큼 복잡한 단상을 만들어 내는 주제도 없을 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 집은 5층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 집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이 곧 운동이다. 1층에는 <다. 방>이라는 커뮤니티실이 있다. 필요할 때 공동으로 사용하고 개인적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공용공간이다. 공동체 주택의 상징적인 공간이 아닐까 싶다. 전날부터 준비해놓은 알뜰 판매장터를 위한 물품들이 이것저것 널려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옷가지들. 각 집마다 준비해온 음식들. 집의 담벼락을 치장하기 위한 바람개비. 방문자들을 위한 물건들이다. 행사를 위해 주차장에 있는 차량들을 임시로 이동시켰다. 휑덩그렁하게 주차장이 텅 비어있다. 주차장을 비우고 나니 꽤나 넓은 공간이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비를 들고 주차장을 쓸기 시작했다. 이 집 사람들은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무언가를 한다.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준비하고 일이 진행된다. 물론 총괄 매니저가 지시를 하지 않으니 약간의 두서없음은 있지만 그것이 뭐 그리 대수랴.
1층에는 <다. 방>이라는 커뮤니티실이 있다. 필요할 때 공동으로 사용하고 개인적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공용공간이다. 공동체 주택의 상징적인 공간이 아닐까 싶다
순간 어디선가 몇 개의 의자와 물건들을 실은 앙증맞은 수레가 등장하더니 주섬주섬 자리를 편다. 그 위에 수공예품 몇 가지를 올려놓자 순식간에 매대가 됐다. 이름은 '금요일에 슬그머니'이라는 공연팀이다. 익히 아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도 있다. 마을에서 방관자로 떠도는 나에게 그나마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몇몇 외부 사람들이 손을 도우니 금세 자리가 마련됐다. 이제는 행사만 진행하면 된다.
참고로 이번 행사는 나름 복잡한 면이 있다. 살면서주택의 집들이이기도 하지만 다른 행사가 함께 겹쳐져 있는 셈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금요일에 슬그머니'와 '공간릴라', '살면서 주택'에서 진행한 [복작복작예술로참여프로그램 _ 마을예술 실은 수레, 공간을 발견하다] 첫번째 ‘어쩌다 같이 살면서’ 행사가 공식적인 행사의 이름인 셈이다. 아~ 써놓고도 너무 길어....
각자가 초대한 손님들이 한두 명식 집을 찾아들기 시작한다. 가끔은 나도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설사 몰라도 가벼운 목례만으로도 충분히 아는 체를 할 수 있는지라 큰 부담은 없다.
물건이 준비되고 각자가 자연스럽게 나뉜 역할분담에 나선다. 누구는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부치고 누구는 열심히 포스터를 붙인다. 누군가는 떡을 들고 옆집에 찾아가며 새롭게 집을 지어 이사 왔는데 그동안 저희 집 때문에 소란스러웠을 텐데 미안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는 오늘 조금 놀 테니 시끄러워도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고 온다.
직접 키운 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즉석에서 열심히 감자전을 부쳐 대접하는 마음은 행사내내 기름냄새를 풍겼다. 이유인즉 잔치집은 기름냄새가 나야한다는 전언. 공교롭게도 그날 종일 감자를 강판에 간 당사자는 그집 딸래미인 단비였다.(참고로 후에 감자를 간 당사자는 502호 준이었다는 전언. 그럼 단비는 하루종일 감자전 옆에 붙어있었는데 무엇을 했었지...)
나는 역시 단순노동에 내 에너지를 투입하기로 했다. 담장에 바람개비를 만들어 꽂아놓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바람개비를 조립하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일러주고 담벼락에 꽂아줄 것을 해달라는 요청이다. 그것쯤이야...
자동차가 다 빠지고 행사장이 되어버린 주차장. 갑자기 이 같은 주차장을 문명의 이기라는 자동차가 전부 차지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는 공간이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차를 다 치워놓고 보니 몹시도 넓은 공간이자 유용한 공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뛰어놓수도 있고 조그마한 공연장이 될 수도 있다. 혹은 회의장소로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어느덧 도시 문명은 1층을 자동차에게 모두 빼앗겨버린 채 위층으로 도망치듯 쫓겨나고 만 셈이다.
갑자기 이 같은 주차장을 문명의 이기라는 자동차가 전부 차지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는 공간이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입주자들은 아무리 봐도 성심성의껏 준비했다. 각자의 인맥을 통하거나 가장 잘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을 아주 헐게 내놓기도 하고 집에 있는 안 입는 옷가지들을 사실상 거저 내놓기도 했다. 무엇을 사든 지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집에 찾아준 손님에 대한 다정한 정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마디 안쓰면 서운해 할 우리집사람. 혼자서 밀가루 반죽하고 오븐에 파운드케익 구워 심혈을 기울인 손닙대접. 누구랄 것도 없는 사람들 중 한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다.
4시가 가까워졌다. <금요일에 슬그머니>팀이 준비한 인형극. 다운이의 공연이다. 우리 나이로 고3 나이인 다운이 스스로 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노래하는 모습은 봤지만 이번에는 인형극이다. 사람들이 마을을 열고 소통하기 힘든 부분을 일깨우기 위한 인형극이다. 나름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마임의 형식도 취하고 초대손님을 관중으로부터 불러내어 이끌어 간다. 신선한 진행이다. 격정적인 감동이 아닌 다운이 특유의 잔잔한 울림을 전하고 싶어 한 듯하다.
공식적인 공연행사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에 진을 친다. 그 와중에도 수박을 먹거나 감자전을 먹거나 집에서 만들어 내온 파운드케이크를 먹거나 더치커피를 마시거나 등등. 다양한 옵션을 선택하면서 조용한 공연의 시작을 바라보고 있다.
4층 사는 자소리가 사회자이자 공연자이기도 하다. 또 금요일에 슬그머니 팀 멤버이기도 하다. 그 프로젝트의 첫 마당이 소행주 5호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주변에 낯설고 뻘쭘하게 앉아서 오랫동안 구경하는 사람들이 몇 명 보인다. 보아하니 행정에서 나온 사람이 분명하다. 금방 보고 갈 줄 알았는데 꽤나 오랫동안 공연을 구경하고 돌아간다. 뜻밖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서울문화재단 사람이란다. 자신들이 문화프로젝트에 지원을 했으니 그 첫 번째 공연 과정을 둘러보기 위해 나왔다는 것이다. 지원한 자금이 제대로 쓰일지에 대한 감독인 셈이다. 그러나 후에 그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하며 공연을 즐기고 돌아갔다는 소식에 조금은 어깨가 으쓱한 기분이 드는 것은 기분 나쁜 경험이 아니다.
자소리는 자신의 노래와 함께 살면서주택의 조합장이 된 4층의 '해기'를 불렀다. 본의 아니게 독창을 해야 하는 해기(해바라기의 준말)는 자신의 감정을 소녀처럼 담아서는 잔잔한 노래를 불러댄다. 아직도 소녀다. 중딩 딸내미를 두었으나 감성만은 소녀인 조합장이 주택에 대한 소개와 독창을 하고 들어가니 마음이 동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뒤편의 바람개비가 본의 아니게 데코레이션의 기능을 하게 돼서 그 분위기는 더 정감이 있어진다.
바람개비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적의 없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얼마 전 한밤중 살면서주택에도 도둑이 들었다. 담벼락을 딛고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2층 창문을 열고 진입하려던 도둑을 그 시간까지 자고 있지 않던 입주자 에보시가 소리를 쳐 내쫓았다. 입주자들 입장에서는 늘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대하며 오픈된 마인드로 집을 활용하고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와 달라 당혹해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바람개비를 촘촘히 꽂아두고 뒤쪽 담벼락을 벽화로 칠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후 가장 먼저 취할 조치는 담벼락에 대한 방어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옛날처럼 유리병을 깨뜨려 담장 위에 뾰족뾰족 꽂아놓고 손을 대기 힘들게 만드는 방법, 철사 와이어를 둘러 담장을 넘나들기 힘들게 하는 방법들이 생각됐지만 사람들은 그 자리에 바람개비를 촘촘히 꽂아두고 뒤쪽 담벼락을 벽화로 칠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결과가 이날 공연의 바람개비가 난무하게 된 배경이다. 물론 이쪽 담벼락과 텃밭에 꽂아둘 생각은 없었지만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순간순간 확대되면 해결책과 다른 무언가의 변형을 찾아낸다. 이날 바람개비는 어쩌면 살면서 주택의 마스코트 역할을 해준 셈이 됐다.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실비의 차례가 이어진다. 그는 평소의 기타와 달리 우쿨렐레를 들고 나와 앙증맞게 노래를 불러댄다. 난 그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사실 몸이 오그라 드는 심정을 어쩔 수가 없다. 산만한 덩치에 잘생긴 그의 모습 및 남자다움과 달리 언제나 감성 어린 노래와 말투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에게도 언젠가 버럭 화내며 흥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어 랩을 하는 동네 총각 지킬의 랩 공연이다. 어느덧 음반도 출시했다 하니 당연 축하하고 손뼉 쳐줄 일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착한 랩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착한 랩이란 어떤 랩을 말하는 것일까.
이어 페달의 순서. 딸아이의 엄마인 이 여인은 평상시의 건강한 포스가 어디로 발현될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살면서주택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그렇지만 다정하고 착한 심성만을 보여주는 이들에게서 자신들의 리비도나 격정적인 감정을 어디다 풀어다 놓고 사는지 긍금하다. 그 궁금증이 이 여인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뜻밖의 '사랑가' 독창과 학생 시절의 봉산탈춤을 한껏 신나게 풀어헤쳐놓은 모습에서 딸아이 하나를 둔 아줌마의 감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숨겨진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남편 역시 이를 처음 봤다 하니 더욱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순서가 되어버린 주택 입주민 5인의 연주회. 이들이 몇 번이나 우쿨렐레를 연습하고 무대에 서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모두가 흥겹고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에서 건강한 이웃과 공동체란 스스럼없이 자신들을 보여주고 이를 즐겁게 받아주는 이웃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물론 이들의 슬로 곡조에도 신명 나게 일어나서 춤을 함께 쳐준 마을 주민들에게도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인의 행동에 무언가를 소통하기 위해 자신의 부끄러움 등을 너무나 가볍게 여겨주는 태도는 가히 기립박수 감이다.박수를 받아도 좋은 모습이다.
살면서주택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그렇지만 다정하고 착한 심성만을 보여주는 이들에게서 자신들의 리비도나 격정적인 감정을 어디다 풀어다 놓고 사는지 긍금하다
모든 공연이 끝났다. 사람들은 공연과 상관없이 여전히 흥겹다. 나 역시 그 와중에 서성이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동일감을 느낀다. 반은 관객으로 왔는데 어느덧 주인이 된 느낌이 더 강하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거나 내가 좀 더 세심했더라면 서울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이웃을 하고 살아가고 있겠지만 여전히 내 존재는 서울과 제주에 엇갈려 지내고 있다. 그 한쪽도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니라 둘 다 적응하고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그것이 가능할 것 같다. 소통이 있어서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과 괜히 가끔 들러도 이들은 나를 한 건물에 사는 공동체 주택의 일원으로 받아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입주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아무런 연관관계도 없이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른 이웃이 생겨났음을 알게 된다. 공동체 주택은 그래서 의미 있는 시도이자 현대 도시의 좋은 모범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