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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23. 2017

문화재생, 생활문화의 시대가 필요하다

몇 해 전까지 함께 해왔던 음악동아리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공연소식을 듣고는 부러움과 아쉬움의 감정이 교차했다. 그 음악동아리가 의미 있었던 이유는 오케스트라라는 쉽지 않은 분야에 도전한 것도 놀랍지만 마을의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참여해서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이었다.


재생을 이야기하면서 문화는 사용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 중 하나다. 개념도 불분명하고 범주도 광범위하지만 그로 인해 적용될 수 있는 영역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문화행사나 예술활동이야 장소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열리고 있는 터라 재생에 특화된 문화예술이 따로 없을 터이다.


문화예술재단도 있고 민예총도 있다. 수없이 많은 문화단체들이 원도심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연다. 삼도동에는 작가들이 모인 문화예술의 거리도 조성돼 있다. 현재 원도심 곳곳에는 4·3미술제가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지원센터가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 향사당, 고씨주택, 전 유성식품, 전 황지식당 등에서도 전시가 진행 중이니 문화를 재생에 활용하는 셈이기도 하다. 많은 문화센터가 수시로 문화강좌를 열고 문예재단은 일반인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의 예술활동도 부지기수라 새삼스럽지도 않다. 수많은 문화센터가 있고 개별적인 동아리들도 있다.

모두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생을 생각하면 여전히 부족함이 남는다.


지난해 제주도체육회와 제주도생활체육회가 통합을 통해 새로운 제주도체육회를 발족시켰다. 내부 사정이야 차치하고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구분하는 장벽이 없어졌다는 상징적인 의미에 박수를 쳤다.


문화와 예술분야에서도 이 같은 통합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전문예술가들의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생활문화의 영역에서 강사와 예술가 중심으로 문화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중심이 되는 문화창작활동의 장이 활발하게 만들어지면 좋겠다. 재생사업의 근간인 주민참여 입장에서 더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들이 직접 모여 동아리를 만들고, 공방을 만들어 연주와 전시를 하고 필요한 제품들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적인 모습이다.


기존의 문화시설들이 공공 주도의 생활문화와 예술을 제공하는 방식이었다면 재생사업에서는 이 역시 주민들이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이뤄져야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주민들의 참여하에 스스로 관심 있는 문화예술 분야를 정하고 배우면서 작품을 만들어 간다면 생활문화의 영역은 확대될 것이다.


주민중심의 문화예술 활동이 늘어난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대적인 장소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각 동아리들이 연습을 해야 하는 연습실도 필요할 것이며 소품을 만드는 공간, 즉 공방도 필요하다.


자유롭게 만나서 대화하는 쉼터로서 까페와 사랑방이 필요하고 워크숍 형태로 문화활동 결과를 발표하는 발표공간도 필요해진다. 이뿐이랴! 마을에 다양한 장비들을 보관하는 창고와 문화예술 활동을 발표하는 열린 공간인 광장도 필요해진다. 주민들의 예술활동 영역이 넓어질수록 예술가들의 관여 영역도 동시에 넓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가와 주민들을 구분하기보다 상호 소통하는 영역이 넓어지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민이 예술과 문화활동을 하는 주체이자 관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들의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재생에서는 예술가들의 활동과 더불어 주민들의 예술활동에 대한 자발적 참여가 훨씬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내가 말해놓고도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할 일이 한 가지 더 늘어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괜찮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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