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는 사회적 혼란기에 아주 유용한 도구다. ‘~카더라’ 통신은 전쟁터에서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 사용되는 등 정치적·사회적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다. 극적으로 막을 내린 탄핵정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유언비어 유포와는 급이 달라졌다. ‘가짜 뉴스’라는 한 장르로 자리잡으며 미디어의 역할과 의미에 정면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뉴스가 SNS로 유통돼 공유와 댓글만 96만 건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수사와 관련된 FBI요원도 아내를 죽인 뒤 자살한 채 발견됐다는 뉴스도 떠돌았다.
물론 사실이 아닌 가짜 뉴스였다. 국내에서도 가짜 뉴스는 온 미디어를 도배 중이다. ‘민주당 후보가 금괴 1000t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시장의 며느리가 김재규의 딸이다’는 등 얼른 들어도 황당한 내용도 있지만 많은 경우 기존의 유언비어와는 급이 다르다. 가짜뉴스는 형식과 출처도 뉴스처럼 보인다. 하물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이대며 사실인 듯 제시한다.
가짜 뉴스는 긴가민가의 의구심을 넘어 하나의 뉴스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모를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한때 언론은 진실을 말하는 공기였으나 어느덧 개별 단체나 진영의 입장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고 혼돈의 미디어 시대에 살게 됐다.
SF 애니메이션의 교과서적인 작품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조만간 실사 영화로 제작된다 하니 이 작품의 선진적 담론에 열광하던 세대들은 영화 상영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상황 한 가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영상장치의 기록들이 공식적인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각 개인들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뇌에 통신장치를 연결하고 서로는 물론 서버와 연결시킬 수 있다. 편리한 일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각 개인들의 뇌에 저장되는 이미지나 동영상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실이 전부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개인의 기억과 동영상이이 증거능력을 상실하다. 슬픈시대다.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그 슬픈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듯하다. 가짜 뉴스가 본격적으로 진짜 뉴스와 섞이면서 미디어가 진실 혹은 사실을 전한다는 등식이 붕괴됐다.
이제 어쩌면 언론이나 SNS에 떠도는 모든 소식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실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입장이 발표돼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가짜 뉴스의 출처는 물론 진위를 파악하는 일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애니메이션에서처럼 기록된 동영상도 조작해서 사실인 것처럼 만들어 배포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뉴스가 과잉 노출되고 있는 현실에서 가짜 뉴스는 미디어의 신뢰를 부서뜨리고 있다. 미디어가 신뢰를 잃어가는 세상, 보편성과 상식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어렵게 자신만 옳고 남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던 지도자를 끌어내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디어가 결코 증거능력이나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씁쓸한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 파란지붕 집에서 내려와 잘됐다는 기분보다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도구인 진실과 미디어의 상관관계가 끝났다는 씁쓸함이 더 크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