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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22. 2017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2017/02/10

지난 글입니다. 보관용입니다.

양해바랍니다.



달은 차면 기운다. 달이 차든 기울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광이 아닌 반사의 결과다. 빛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다. 많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빛을 낸다고 착각한다. 스스로 반사체라는 것을 잊는다.


탄핵정국의 모든 목표가 사실상 후보자들의 인물평을 하는 대선정국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나 진실에 대한 관심이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혹시나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쌓이는 것인가 자문해 본다. 더불어 이 상황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촛불이 되기를 권해보고자 한다.

명예가 없는 시대다. 치욕만 남았는데 그 치욕조차 아랑곳 않고 국면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 애쓴다. 존재의 시작을 잘못 판단한 때문이다. 이미 초승달이 된 지 오래됐는데 아직도 빛을 내는 줄 안다. 만월로 착각하는 것도 우스운데 스스로 후광을 가진 줄 착각한다. 아버지의 후광조차 스스로 낸 빛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조선 말기 강화도에 침입해 수많은 보물을 탈취해 간 사건인 병인양요의 당사국인 프랑스의 통치자는 황제칭호를 달고 있던 나폴레옹 3세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 1851년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 황제즉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그는 놀랍게도 9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황제에 즉위한다. 그에 대한 열렬한 지지 이유는 단순했다. ‘나폴레옹 시절의 프랑스를 재현해 주리라는 향수’. 사상 최초로 프랑스가 세계를 호령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후광효과로 시작한 재위기간 20년을 보낸 시점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종말을 맞았다. 1870년 비스마르크의 프러시아(프로이센)와 벌인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군 8만명과 함께 포로로 잡히며 자신의 인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전쟁의 패배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프로이센 빌헬름1세의 황제 즉위식을 허용하는 등 국가적인 치욕을 맞봐야 했다. 물론 상황이 단 몇 줄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다만 프랑스 역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 지도자를 택한 후광효과의 댓가를 톡톡히 치뤘다는 점이다.


나폴레옹 3세는 제위 기간 프랑스의 영광을 노래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언론과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프랑스 역사를 언급한 이유 중 하나는 전대의 후광을 업고 선출된 무능한 지도자가 국가를 살리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대와 비교해 무능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딸이 무능의 극치를 보인 것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하물며 기본적인 명예조차 없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면 명예라도 지켰으면 좋겠다. 화려한 불빛에 속아 눈부심 뒤에 숨겨둔 어둠을 들켰으면 미안해하고 수치심을 느껴야 하지 않은가. 고마운 일이다. 빛을 반사하는 달에 집착할 이유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벚꽃 대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람이 불면 한 순간에 모든 꽃잎들이 휘날릴 것이다. 또다시 여기 저기서 스스로 빛을 발하고자 수많은 정치인들이 등장하고는 사라질 것이다. 하물며 이제는 후광이 사그라진 인물의 그늘에 있던 무리들조차 자신들이 빛을 내고 있다고 외쳐대기 시작한다.


달빛에 반짝이는 벚꽃잎 역시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순간 화려한 꽃잎의 반짝임은 보이지만 짧은 한순간 빛을 반사할 뿐이다.


스스로 빛을 낸다고 착각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이여 다시 한번 촛불을 보기 바란다. 촛불이 빛을 내는 이유는 스스로 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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