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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Sep 08. 2017

갈치는 아름답지만 성질은 지랄 같네

제주 은갈치 낚시의 신선한 경험 

"내가 갈치를 잡는다고? 그것도 배를 타고 나가서 바다낚시를..."


처음 갈치낚시를 가자고 제안을 받았을 때 나로서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낚시를 좋아하기는커녕 평생 한 손가락 안에 꼽을만큼 낚시를 해본 적도 없는 데다 배를 탈 경우 닥칠 뱃멀미의 공포가 더 컸기에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유로든 나는 물귀신 작전의 포로가 된 셈이다. 그렇게 자의와 상관없이 갈치 낚싯배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래도 주최자는 공식적으로 밴드에 갈치낚시에 대한 일정을 올리고 지원자를 찾았다.  난 당연히 응하지 않을 예정이고 주말을 맞아 뭘 할지 고민할 시점이었다. 계속되는 메시지에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김밥집 체인점을 운영하는 후배가 자기와 나는 당연히 참석한다며 우선적으로 지원을 한 답글이 보인다. 


"이건 뭐래?" 이 친구는 왜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혼자 지원할 경우 심심할 것을 예상한 때문인가. 어떤 이유로든 나는 물귀신 작전의 포로가 된 셈이다. 그렇게 자의와 상관없이 갈치 낚싯배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문제는 금요일 저녁에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 상황. 퇴근시간 무렵 슬며시 이야기를 안 하고 나와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나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까운 도두항으로 차를 몰았다. 배에는 우리 일행을 비롯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10여 명이 이미 탑승해서 옹기종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집어등이 달린 낚싯배가 항구에 접안해 있다. 같은 갈치 낚시를 나가려는 배인지 배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가는 하나둘씩 항구를 빠져나간다. 목적지는 어는 배든 바다 한가운데일 터다. 물론 배들마다 자신들이 가는 장소가 있을터 그곳을 다른 배들이 알아서 부딪힐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탄 배는 다른 낚싯배에 비해 사이즈는 큰 배라고 한다. 배의 선장과 선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출항을 위해 이런저런 물건들을 준비 중이다. 생수가 들어오고 수박을 비롯한 일부 과일이 들어온다. 선원 한 명이 갈치를 담을 아이스박스의 위치를 잡고는 내용을 확인 중이다. 어리둥절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일행과 함께 잡담을 나누는 일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더구나 바다에 나가게 되면 나는 더 무용지물이 될 것이 명확하다.

도두항 전경
도두항에서 바라본 도두봉 입구


수없이 많은 추측과 망설임이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고 맴돈다. 그러던 차에 배는 다른 배들이 다 떠나간 뒤에도 항구에 한참을 정박하더니 이윽고 선착장에서 배를 밀어낸다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전례 없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점심 무렵 키미테를 귀밑에 붙이고 뱃멀미에 대비하고자 했다. 멀미약도 미리 먹어두는 센스도 보인다. 그래도 멀미를 한다면 어찌해야 하나. 모른 척하고 배 바닥에 잔뜩 엎드려 있으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혹시라도 구토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텐데. 다른 사람들 수십 마리 잡는데 한두 마리밖에 잡지 못하면 그 창피함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수없이 많은 추측과 망설임이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고 맴돈다. 그러던 차에 배는 다른 배들이 다 떠나간 뒤에도 항구에 한참을 정박하더니 이윽고 선착장에서 배를 밀어낸다.


배가 항구에서 멀어지면서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바다란 유람선이나 쾌속선을 탈 때의 분위기와는 달리 괜히 어딘가 끌려가는 느낌이다. 처음의 설렘과 긴장은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리라. 배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점점 제주의 항구에 대해 아스라함을 던져 준다. 마냥 바다 건너 항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는가. 아니면 버림받고 있는가.

해안에서 멀어지기 전 멀리 나온 지점도 아닌 듯 싶은데 배가 엔진을 멈춘다. 가져온 간식인 김밥과 수박화채 등으로 첫 음식의 포문을 연다. 간식을 마치고 선장은 낚시 나온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아주고는 각자의 자리에 낚싯대를 세팅해준다. 다양한 내용을 알려주고 있지만 낚시 그중에서도 배낚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로서는 멍하니 바라만 볼뿐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해주기를 기다리기만 한다. 이곳에는 내가 낚시를 왔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해주면 나는 여기 뭣하러 왔을까...

갈치 낚시대와 옆에 걸어놓은 것이 낚시바늘이다.

갈치 낚시에 다양한 경험을 지닌 상가리 리장님이 열심히 갈치 먹이인 냉동 꽁치를 새우 모양으로 보이도록 사선 모양으로 썰고 있다. 선장이 방법을 알려주고 이장은 그에 따라 행동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뱃전만 바라본다. 참 무기력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하룻밤 내내 낚시를 하면서 단 한 번도 꽁치 미끼를 내가 직접 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어정쩡함을 보고 안됐는지 계속해서 미끼를 제공해준 덕이다. 못하는 듯 어눌하면 사람들은 도와주려는 본성을 감출 수가 없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번거로움을 멀리하며 깔끔한 낚시의 묘미만을 맛볼 수 있었다. 얄미운 행동일 것이다.


내가 낚시의 경험을 묘사하는 일은 어쩌면 아무런 가치도 없고 흥미도 찾아볼 수 없는 어눌한 묘사에 불과하다. 다만 그때그때 익숙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 낚시에 재미를 느껴가는 심정을 알아채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분주하다. 각자의 낚싯대에 낚싯줄을 엮어야 한다. 낚싯줄 매는 것도 낯설지만 갈치 배의 낚싯대에는 미끼가 6개 정도가 매달린다. 낚싯바늘 사이의 간격이 1m 정도가 된다고 볼 때 낚싯줄이 물에 던져지면 낚싯줄은 6m 정도의 깊이로 갈치들의 위치를 가늠하게 된다. 매 마지막에 달린 무거운 낚시 추는 이 낚시를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도록 스스로를 다짐하는 낚싯줄의 일방통행을 주도한다.

그때그때 익숙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 낚시에 재미를 느껴가는 심정을 알아채고 있을 뿐이다



우선 각각의 낚싯바늘에 먹이로 잘라놓은 고등어 조각을 끼워 넣는다. 차례대로 순서를 기다리다 모든 미끼를 끼우면 낚시추를 바다로 던져 넣기 시작하고 차례로 고등어를 쥔 바늘이 바닷속으로 잠수한다. 낚싯대에는 낚시추의 수심을 확인할 수 있는 수자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전자게시판이 나타난다. 과학이 없으면, 문명이 없으면 갈치낚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손으로 릴을 돌릴 일이라고는 마지막 순간의 잠깐 뿐이다. 간단한 전동 버튼 만으로 낚싯줄은 수심을 따라 아래로 위로 쉽게 움직인다.


옆에서 낚싯대를 내려뜨리는 여자분이 한마디를 거든다. 

"수심 40m요."


낚싯대 계기판의 수심을 40m쯤으로 맞추라는 요구다. 그쯤에 갈치 때가 모여있다는 어군탐지기의 표시란다. 

얇은  낚싯줄을 올리는 사이 반짝이는 하얀 녀석이 푸드득 거리면서 올라온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갈치의 살아있는 모습이다

나야 시키는 대로 할 밖에 없다. 뭘 알아야 판단을 하지 할 수 있는 일이 단순한 행동의 반복뿐이다. 어색하기 그지없고 어정쩡한 순간의 연속이다. 얼떨결에 낚싯줄을 바다에 던져놓고 집어등이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그냥 봐도 무언가 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어등이 수면 위를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한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낚싯줄을 올려 결과를 보고 싶다. 주변에서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직은 시작도 한 것이 아니니 서두를 필요 없이 30~40분에 한 번씩 체크해 보면 된단다. 그래도 궁금함을 떨쳐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순간 또다시 집어등의 움직임이 보인다. 한 번은 올려서 확인해볼까 싶다. 그때 옆자리의 여성 사무장의 낚시가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엇을 잡는지 보고자 지켜본다. 얇은  낚싯줄을 올리는 사이 반짝이는 하얀 녀석이 푸드득 거리면서 올라온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갈치의 살아있는 모습이다.


여 사무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늘에 걸린 갈치를 툭툭 흔들자 갈치가 뱃전으로 떨어진다. 2마리다. 반짝반짝 은색의 묘한 반짝임을 몸으로 담은 갈치 녀석이 바닥에서 퍼득댄다. 갈치는 성질이 난폭해 얼마 되지 않아 뭍으로 나오면 바로 죽는다는 설명이다. 

신기하고 안됐고 무섭기도 하다. 갈치는 생긴 것이 무섭게 생겼다. 무서워 벌벌 떨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허공에서 반짝이는 갈치의 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일부러 색을 칠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색이 몸에서 번뜩인단 말인가.


나도 전동 스위치를 올린다. 수심 1m에 다다르자 손을 멈춘다. 이제는 멀리 뻗어있는 낚싯대를 힘껏 들어 올려 뱃전으로 이동시키면 된다. 따라온 낚싯줄을 어렵게 손으로 잡았다. 줄이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고정시키고는 얇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낚싯줄을 잡아 올린다. 바늘에 걸어놓았던 고등어 미끼가 아직 남아있는 놈과 이미 바닷속에서 사라져 버린 놈들이 번갈아 나온다.


순간 묵직한 느낌이 손에 전해온다. 옆에 있던 지인들이 잡혔네 하며 내게 힘을 북돋아 주고 있다. 줄을 잘 올리니 한 녀석이 미끼를 물고 버둥거리고 있다. 

옆 사무장의 행동을 따라 나도 낚시 바늘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대니 신기하게도 녀석이 바닥으로 툭하니 떨어진다. 일일이 낚싯바늘을 뽑지 않아도 된다. 편한 낚시다. 기계 문명의 혜택이다.


그런데 무거움이 계속된다. 그다음 바늘에도 또 한 마리가 걸려있다. 또다시 퍼덕이는 놈을 바닥에 떨군다.  이제 끝 난나 싶은데 다른 한놈이 더 따라 올라온다. 처음 던진 낚시에 세 마리의 갈치를 잡아 올리다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지인들이 여기저기서 찾아와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사진을 찍어준다.

옆 사무장의 행동을 따라 나도 낚시 바늘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대니 신기하게도 녀석이 바닥으로 툭하니 떨어진다

이 뿌듯함은 뭐지? 내가 한 일이라고는 전동 스위치를 누르고 줄을 대충 잡아 올린 것뿐이었는데 3마리나 걸리다니 괜한 희열이 함께 다가온다. 오늘 처음 올린 낚시 덕에 부러움을 산 것도 얼마 안돼 이번에는 보통의 갈치와는 격이 다른 넓고 굵은 놈이 올라온다. 지인이 한마디 건넨다.


"10만 원짜리 잡았네"

갈치는 크기가 조금씩 커짐에 따라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다고 한다.  갈치가 비싸기는 비싼 생선인 모양이다. 어린 시절 나는 갈치야 말로 아주 흔한 생선이라고 생각하며 어시장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바다로 나와 갈치를 직접 잡아보리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수가 떠 빨라진다. 낚싯대를 체크해서 걸린 놈을 확인하는 과정과 너무 오래 놔두면 미끼가 이미 사라져 버리는 경우, 심심할 때쯤 두 마리씩 잡히는 희열 등이 시간에 따라 계속된다. 그렇게 안 갈 줄 알았던 시간은 지나간다. 피곤함도 함께 온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저녁식사의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사람들은 전투하듯 낚시에 몰두한다. 옆에서 한꺼번에 다섯 마리나 잡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뭐 하고 있는지 질투와 시기심이 함께 올라온다. 한편으로는 난 놀러 왔어라고 편안한 척 하지만 또 한편은 나도 남들처럼 한꺼번에 많이 잡고 싶다던가, 큰 놈을 잡고 싶다 건가. 가장 많은 갈치를 잡고 싶다는 생각 등 다양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와중에 힘 좋은 고등어가 갈치의 먹이를 가로채면서 낚시에 걸린다. 고등어가 걸리는 낚시는 바늘의 움직임이 사뭇 다르다. 녀석은 성격이 급한지 낚싯줄을 어김없이 잡아당기며 참복 역시 갈치의 위치를 바꿔가면 인간에게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려준다.


나도 모르게 내 아이스박스에는 한두 마리씩 갈치가 쌓이기 시작한다. 갈치 잡은 사진을 페이스북 등에 올려놓으니 리플들이 난리가 난다. 같이 가야 한다는 등. 아침에 꼭 전달을 부탁한다는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낚시를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옆에서 한꺼번에 다섯 마리나 잡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뭐 하고 있는지 질투와 시기심이 함께 올라온다

시간이 지나니 모든 일에서처럼 이 낚시도 한계에 다다른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더 이상 많이 잡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보니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면서 졸고 있다. 피곤하고 누워서 자고 싶다. 주변에서 이제 곧 피크타임이므로 정신 바짝 차리고 낚시를 해야 한단다. '항구에 물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속담이 어울리는 멘트다.


그러나 나의 아이스박스에는 어느 순간부터 갈치의 숫자가 정체되어있다. 농담처럼 애초의 목표를 몇 마리 안 삼았으니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심정을 아이스박스에 담기로 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어느 순간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갈치 떼가 있을 수심의 깊이를 놓쳤기 때문이다.


경험자가 하는 대로 따라 하던 깊이를 어느 순간 내가 결정해야 한다. 낚시 떼가 있는 곳을 놓치면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갈치들은 입질을 하지 않는 법. 갈치 떼가 수심을 오르락내리락한다 하니 그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급기야 잘 낚는 사람 옆을 지나며 그 사람이 드려놓은 낚시의 수심을 커닝이라도 할 요량으로 슬쩍 옆을 지나가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결국 세상일은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던가.


온몸에 피곤이 파고든다. 남들처럼 일찌감치 안으로 들어가 누워버리면 세상 편할듯한데 그놈의 자존심은 계속해서 나를 뱃전에 붙잡아 둔다. 새벽 2시경이 낚시의 피크가 될 거라는 지인의 주장과는 달리 그 시간대부터는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게 된다. 모든 것이 관성처럼 행동하니 갈치도 잡힐 리가 없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자니 온각 것들이 바다에 떠다닌다. 양옆을 살짝 포뜨고 몸통은 버리게 되는 냉동꽁치의 잔해가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니다 서서히 가라앉는다. 어떤 다른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리라.


다들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재주가 있구나. 인간만이 그 재주를 버리고 포식자로서의 본성만 극도로 발달시킨 느낌이다

오늘따라 파도가 전혀 없다. 마치 호수에 나 앉아있는 느낌이다. 바다 한복판에 이처럼 아무런 요동도 없고 바람도 없이 더위만 물 위를 가득 채운다. 땀이 온몸에 찌들고 있다. 샤워를 하고 싶다. 피곤하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다.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한밤중에도 밝혀둔 집어등이 이토록 밝을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하긴 해안에서 바라봐도 낚싯배의 불빛이 그토록 밝은데 집어등 바로 아래 앉아있으니 얼마나 밝겠는가. 그래서 집어등에 피부가 타니 선크림을 발라두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되고 이해가 갔다. 약간의 그늘 사이에 몸을 숨길 곳을 찾느라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뜨겁다.


그 사이 해수면 위를 무언가 희끄무레한 게 막 옆으로 지나간다. 고등어 무리는 바다에서 던져놓은 먹이 때문인지 배 옆을 떼를 지어 맴돈다. 물 반 고기반이라는 게 연못에서만 가능한 말이 아니었다. 녀석들은 먹이가 풍부한 때문인지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제 동료들이 얼마나 희생되는지도 모른 채...  그 사이를 헤매는 허여 물체를 잘 보니 게가 뒤집어진 채 헤엄을 치고 있다. 게가 그렇게 바닷속을 빨리 움직이며 헤엄을 치는 모습은 상상도 못 하던 것이었다. 다들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재주가 있구나. 인간만이 그 재주를 버리고 포식자로서의 본성만 극도로 발달시킨 느낌이다.


잠시 잠깐 사이에 갈치를 대신해 고등어가 올라오거나 참복이 잡히는 등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발생되기도 하지만 일행들은 끊임없이 갈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오늘의 날씨가 갈치 철 최악의 수확을 거두는 날이라고 하니 갈치 풍년이 들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졸면서 보낸 시간 새벽녘이 다가온다. 벌써 아침해가 바다 저 멀리서 올라오고 있는데 사람들의 낚시에 대한 집념은 끊이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졸음을 떨치며 시도해보다 갑자기 '아. 하!' 하고 깨달은 바가 있다. 그동안 너무나 수동적으로 낚시를 했다는 느낌... 갈치 떼들의 이동을 내가 너무 무심히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심을 계속 변화시켜야 하는데 나는 그냥 비슷한 깊이에서 갈치가 걸려주기를 기다리는 상태였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수심을 10m 높이까지로 높여본다. 30~40m 높이에서 한참을 높여보니 다시 갈치가 미끼를 물기 시작한다. 


그 사이 바닷속 곳곳이 흰색 물길이 반짝인다. 옆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아저씨 한분이 내게 말을 건다.

'저기 보여요. 물속에 반짝 거리는 거?'

'그러게요. 흰색 반짝임이 s모양을 그리며 여기저기서 반짝이네요'

'저게 갈치 유치예요. 새끼 갈치들이 수면 위쪽으로 올라온 거지요'


별걸 다 본다. 낚시보다 그런 장면들을 바라보는 게 더 신기하고 재미있다. 유치가 수면 근처에 있으니 갈치 떼도 수면 근처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10m 근방에서 갈치가 잡히는 모양이다.


긴 밤 하루를 바다에서 보내며 갈치를 잡았다는 기쁨보다 이 같은 경험의 소중함을 느끼며 졸음을 참는다. 집에 가서 맘껏 자야겠다

그 사이 선장의 한마디가 이미 시간이 지나버렸음을 알려준다.

"오늘 그만합니다."

이미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 말에 바쁘게 움직인다. 배 앞쪽에 쌓여있는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붓고 갈치를 차곡차곡 쌓고는 테이핑을 하고 비닐로 감싼다. 매직을 들어 주소와 이름을 쓴다. 빠른 손놀림이다. 주로 서울서 내려온 사람들은 이를 선장에게 배송을 맡기고는 자신들의 일정을 따라 유유히 출발한다. 아침을 시작한다.


아... 나도 다음에는 아는 사람들에게 혹은 육지의 지인들에게 갈치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이 힘이다.


이미 중천에 떠오른 아침 해를 바라보며 어떻게 집에까지 사고 안 나고 차를 몰고 가야 할지 고민이다. 조심해야 한다. 졸음이 쏟아진다. 긴 밤 하루를 바다에서 보내며 갈치를 잡았다는 기쁨보다 이 같은 경험의 소중함을 느끼며 졸음을 참는다. 집에 가서 맘껏 자야겠다. <끝>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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