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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Sep 14. 2017

교래 곶자왈_초록 공기를 듬뿍 담은 숲

교래 자연휴양림을 통해 둘러본 제주의 허파

숲을 찾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서면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제주의 곶자왈이 주는 싱그러움과 원시성을 익히 경험한 바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는 자연을 만끽할 준비가 된다. 나 스스로 풍선이 된다. 온몸에 초록 공기를 듬뿍 담아오는 호사를 부린다.


이번에는 그동안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자꾸 미뤄두기만 한 교래 곶자왈이다. 교래휴양림 안에 위치한 이유 때문으로 자꾸 방문이 늦어지는 것은 인공적인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과 돌문화공원에서 보는 듯한 인위성이 숲에도 가해졌을 듯한 안타까움이 함께 자리한 연유다. 그래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교래휴양림 입구
오름탐색로 입구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숯가마터

오늘의 코스는 교래 곶자왈의 오름탐색로를 지나 큰지그리 오름을 한 바퀴 도는 코스. 거기까지가 교래 곶자왈 코스다. 더불어 옆으로 살짝 빠지면 족은지그리오름이 있을 것이고 그 옆에 돌문화공원을 뒤로한 바농오름이 있을 터이기에 조금 무리해서라도 그곳까지 가보자고 다짐한다.


아침에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밀린 잔일을 하다 보니 오전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도착해서 주차를 마치니 벌서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다. 숲 사이로 난 매표소를 지나 고민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바로 곶자왈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만에 다시 걷는 곶자왈이던가. 숲이야 여럿 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는다. 그 기대는 동백동산이나 화순곶자왈에서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두었던 느낌을 만나지 않을까 희원이 있어서이다. 들어가는 길은 돌길로 잘 둘러놓았다. 경계를 돌로 쌓아놓은 나지막한 길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숲이 깊어짐을 느낀다.

교래 곶자왈의 산책로는 오름길이라고 되어있지만 너무나 정비가 잘 되어있는 터라 걷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저 자연을 느끼고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

오랜 기다림도 없이 갑자기 초록이 온 숲을 뒤덮는 느낌을 준다. 낙엽활엽수가 메인 수종이어서 그런가 푸르름의 깊이가 다른 숲의 느낌보다 좀 더 진하고 강하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돌무더기가 내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는 돌에 이끼가 잔뜩 끼어져 있는 모습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습기가 가득 차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원초성을 담보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원시적인 생명력이 뭐가 그리 좋다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숯가마터가 보이고 연이어 다양한 돌과 곶자왈의 생명체들이 곳곳에 뒤덮여있다. 덩달아 발걸음이 신나진다. 여기서 돌무더기를 잠시 감상하면서 즐거움으로 걷는다. 교래 곶자왈의 산책로는 오름길이라고 되어있지만 너무나 정비가 잘 되어있는 터라 걷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저 자연을 느끼고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

숲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이끼 낀 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

저것들이 '숲의 알'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수없이 많은 돌 위에 덮인 푸르른 생명체가 자라고 그것이 다시 다른 풀과 나무로 자란다는 가정을 한다면 저들이야 말로 숲의 수많은 생명을 잉태한 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는 이들을 '숲의 알'이라고 불러야겠다.


걸으면서 수많은 돌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또다시 욕심이 생긴다. 이 돌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숲을 걸으면서 침잠하거나 명상에 가까워져야 하건만 욕심이 먼저 생기는 이유는 무얼까. 그 욕심을 실현 해보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걷게 되니 '숲의 알'의 모습이 더욱 다기하고 생명력 있게 다가온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표면에 붙은 이끼는 물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잎새와 덩굴처럼 얽혀있는 다양한 식물들도 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생각하고 느끼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맞다.

수없이 많은 돌 위에 덮인 푸르른 생명체가 자라고 그것이 다시 다른 풀과 나무로 자란다는 가정을 한다면 저들이야 말로 숲의 수많은 생명을 잉태한 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교래에 비가 많이 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때문인지 숲의 생장이 몹시 좋은 느낌이다.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많이 다닌다. 다른 곶자왈에 비하면 만나는 사람들의 빈도수가 높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그리오름을 다녀오는지 모르겠으나 숲의 정기는 많이 받아서인지 발걸음에 경쾌함이 배어있다.


혹시 사람들이 안보는 사이 돌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며 자리를 뒤바꾸는 일을 하지 않을까. 저녁이 되면 나무와 풀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회합이 있을지도 모른다.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이 곳곳에서 숯 가마터와 움막터가 보인다. 이곳은 예부터 다양한 용도로 사람들이 활용했던 지역인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시내에서 멀지도 않은 지역인 데다 표고도 높지 않아 접근이 어렵지 않을 터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원두막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30m 거리에 있단다. 지나는 길에서 옆으로 빠져들어가는데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지만 왠지 모르게 잠시 쉴 겸 방향을 튼다. 한 팀이 마루에 앉아 쉬고 있다. 그보다는 주변 풀밭에서 유유자적하는 소들이 눈에 띈다. 평화로운 모습이다. 높게 자라난 풀들과 그 주변을 맴돌며 풀을 씹어 드시는 우리의 소님들에게 시선을 주다 보니 참 팔자 좋은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쉬면서 세월을 낚는 기분으로 주변의 경치에 취해본다. 하늘은 적절히 파랗고 구름도 끼어있어서 많이 덥지 않다. 찌뿌둥하리라는 생각과는 조금 멀다. 그래도 아직 여름의 뜨거운 여운이 남아있는 기분이다.


숲은 길이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운을 주지 않는다. 곶자왈의 생명력이 주는 힘이다. 곶자왈 지대를 지나 큰지그리오름쪽으로 가까워지니 나무의 생김이 점점 일반 숲처럼 바뀐다. 진초록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돌과 양치식물은 점점 사라지고 나무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오름의 식생을 보는 듯하다. 깊은 느낌의 곶자왈과 비교하니 조금 드라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할 일은 아니다. 뭐가 좋고 나쁘고도 아닌데 인생 초반기의 교육 때문인지 비교가 익숙해져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스스로를 말린다.

숲은 길이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운을 주지 않는다. 곶자왈의 생명력이 주는 힘이다

이윽고 구릉을 몇 개 넘으니 쓱 하고 일정한 장소에 다다른다. 삼나무 숲이 한가득 펼쳐져 있다. 제주의 식생은 종종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조림을 한 때문이겠지만 어는 장소부터 완전히 다른 식물의 구성과 숲이 마치 칼로 무 자르듯 다르게 펼쳐져 있어 신선함과 함께 때로는 생경함을 준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숲 속을 헤매듯 걸었는데 바로 단일 수종의 숲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 차례라네"

아마 이 숲은 그리 말하고 있으리라.큰지그리오름 밑이고 한 바퀴 돌아서 나오면 되는 위치다.


몇몇 사람들이 나무테크에 눕거나 걸터앉아 쉬면서 다음 일정을 따져보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니 이곳에 오래 머물 의미가 없어졌다. 파인애플 매트가 잘 깔려있어 가는 길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제자리로 나오는 모양으로 길이 짜여 있다.

꺾기고 구부러지고 다시 비틀어지면서 다양하고 다기한 형태의 줄기를 상하좌우로 멋지게 뻗어낸다

나보다 앞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뭐 그리 급하게 추월하며 발길을 옮긴다. 왠지 나는 혼자 걷는 버릇이 남아서인지 오름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그다지 반갑지 않다. 매트는 나무 사이로 오름의 둘레를 천천히 오르듯 옆으로 옆으로 이어져 있다. 조금씩 위쪽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삼나무 조림숲이 딱 멎었다. 그때부터는 다시 오름 오르는 길이다. 아주 급하지는 않은 오름인지라 조금만 힘을 쓰면 정상에 오르는데 별로 어렵지 않다.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 한 나무가 눈앞에서 시선을 잡는다.


삶의 이력을 표시하려나 인생의 굴곡을 말하려나. 꺾기고 구부러지고 다시 비틀어지면서 다양하고 다기한 형태의 줄기를 상하좌우로 멋지게 뻗어낸다. 그야말로 나뭇가지가 할 수 있는 모든 기개를 다 뽐내는 분위기다. 단 곧장 뻗어 자라는 것만 제외하고... 이 나무를 한참 돌아보다 보니 정상이다. 다행히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한참을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동쪽의 오름 군락과 옆에 보이는 오늘의 목적지 바농오름. 절물 쪽 방향에 서있는 민오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름들이 나도 있어 하면 자신들의 존재감을 뽐낸다. 그야말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많다. 


그렇지만 오늘은 교래고 이제부터는 오름이다. 족은지그리는 숲에 가려서 보이질 않는다. 바농오름도 나무로 온 오름이 가득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좋아 보이지 않은 듯싶다. 암튼 모드를 오름 탐방 모드로 전환 중이다. 일단 방향을 잡기 위해 내려가야 한다. 

일단 초록 공기는 풍선처럼 온몸에 듬뿍 담았다. 교래곶자왈은 이로써 족하다.

멀리 돌문화 공원의 커다란 공사현장이 눈에 보인다. 돌문화공원은 명성대비 나에게 주는 인상이 별로였던 곳이라 그런가 저 심한 공사는 또 무언가를 터무니없이 인공적으로 만들려는니 아쉬움만 남는다. 좋은 숲들이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그곳은 그냥 초원이었나?


암튼 삼나무 숲의 쉼터 부분으로 내려가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내려가는 길은 급한데 옆으로 뺑돌아 나올 줄 알았는데 아까 한참 돌아간 길의 중간으로 쑥 나오게 되어있다. 이렇게 짧은 거리를 돌아서 올라왔다는 게 조금은 아쉽고 어이가 없다. 그래도 지형지물의 위치를 파악했다. 다시  발걸음을 돌리기로 한다.


일단 초록 공기는 풍선처럼 온몸에 듬뿍 담았다. 교래곶자왈은 이로써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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