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끊임없이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는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는 이유는 상대방이 내 의견과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무오류성을 갖는다. 내가 옳고 상대방은 틀리거나 최소한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나는 옳은가. 혹은 믿을 만한가? 사회성 부족 때문이겠지만 제주에 와서 주말에 혼자 숲길을 걷거나 오름을 다니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상사가 되었다.
그런데 유명한 숲길이나 오름을 다니면서 길을 잃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일어난다. 도저히 길을 잃을래야 잃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도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순간 몸의 감각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곳이 길이 아닌 것 같다’
그 경우 메시지는 맞다. 몸이 길이 아니라고 전해주는 순간 나는 이미 길을 잃은 지 꽤나 된 듯하고 그럴 때마다 제자리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최근에 다녀온 교래 곶자왈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도록 만들어 놓은 탐방길이라 길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나는 초록으로 물들어 원시성을 띤 숲 속에 있고 그곳에 취해 바위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한참을 되돌아오고서야 내가 놓쳐버린 길목을 찾게 되었지만 바로 눈앞에서 있을 수 없을 듯한 길의 흔적을 잃어버린 순간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이 스스로 꽤나 당황했었다. 근데 이 경험이 잦다는 것은 다른 함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있는 길잃기 상황에서 내가 알아챈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 나는 결코 옳지 않다. 순간순간 틀린 판단을 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력과 무지몽매함을 함께 지니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결코 나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됐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오류성을 가지고 있다고 은연중에 믿는다.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으며 논리적으로도 문제없고 경험적으로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다른 이야기를 하면 답답함에 큰소리를 내고 가슴을 치며 상대방이 얼마나 답답한 사람인지 고래고래 소리치며 깨닫게 해주고 싶어 한다. 싸움이 나고 관계가 틀어진다. 그런데 내가 옳지 않은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답답함이 많이 수그러든다. 내 마음을 못알아줘 화나는 경우라도 내가 옳지만은 않다. 옳은 경우라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두 번째 스스로 옳지 않은 결정을 내려 상황이 틀어져 버린 경우의 대처법이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다음 취해야 할 행동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일은 어렵다.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서버리고 모든 상황을 되짚어보는 것이 비교적 오류를 수정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까지는 괜찮고 여기서부터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었던 모든 것이 틀렸을 수 있으니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놓고 하나씩 복기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나는 결코 옳지 않다. 내가 그동안 취한 행동이 무의미하거나 헛된 것임을 자주 보고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으로 읽고 논리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20대에도 가능했지만 생활로 깨닫게 되는 것은 우연한 경험의 축적이 있고 나서부터다. 제주의 숲에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믿지 못할 인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끊이지 않고 숲을 걸을 생각이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한라일보에 글을 쓰게 되었다. 타 매체와 주제를 같게 갈 수는 없기에 이번에는 어떤 방향으로 갈까 생각과 고민을 깊게 해봐야겠다. 지식과 지혜 모든 면에서 고갈을 느끼는 이때 좀더 공부를 많이 해두면 좋았을 걸이라는 후회가 드는 시절이다.
<한라일보_201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