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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28. 2017

오래된 것의 쓸모

제주일보 2017년 10월 23일

오래된 것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재생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됐고 도시재생 뉴딜이라는 말이 화두가 됐다. 오래됐다고 다 가치있는 것은 아닐텐데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이 유행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를 지닐까.


전통문화나 유적과 달리 30~40년전 우리의 과거의 기억과 흔적들이 많은 관심을 받는다. 삶의 기록은 물론 생활의 흔적까지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보존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닐테니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는 초가집과 전통주택이 시멘트 주택과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당연한 듯 목격했다. 어느새 공동주택 거주비율이 70%에 육박한다는 통계도 나온다. 산업화의 실상을 실감케 하는 내용이다. 


그 와중에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거나 필요성을 인식한 때문인지 과거의 건물과 기억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존과 재생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것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아카이빙이라는 낯선 용어와 자주 만난다. 아카이빙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카이빙(archiving)이란 역사적, 문화적, 혹은 실용적인 보존 가치가 있는 데이터나 기록물을 다시 사용·관람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하는 것이란다.


아마도 하드웨어적인 보전에 맞춰 소프트웨어에 대한 보존에 방점이 주어진 듯 하다. 어떤 형식이든 아카이빙 사업에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중요해 보인다. 


대신 단순히 보존하는 것 말고 기존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것을 덧붙여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다양하게 논의되지 않는 느낌이다. 

최근 원도심에서 '부전자전'으로 잘 알려진  고영일-고경대 부자의 40여년에 걸친 제주의 풍경을 대비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추룩 변헌  거 보염수과?'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보면서 수십년 전 제주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간 유사성과 쌍전벽해 같은 변화를 실감한다. 적지 않은 분들이 변화에 대한 아쉬움과 놀라움의 감회를 내비친다. 잊었던 과거의 가치의 소중함에 대해 보여주는 관심이리라. 


산업화 과정에서 잊었던 기억과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과거의 기억들을 기록하는 일이 우선이지만 보관된 기록들과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남는다. 보존만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10월초 황금연휴 기간을 맞아 서울의 몇 군데 도시재생 사이트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중 재생지역의 사례로 소개되는 성수동의 대림창고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빨간 벽돌의 창고와 천정이 휑뎅그레한 창고공간은 고풍스럽게 산업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거기에 갤러리 역할과 카페와 식당이 함께 하는 장소로의 변신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재생을 통한 명소로 자리잡았다.

창고가 주는 산업화의 흔적과 새로운 문화 코드의 결합이 만들어낸 탈바꿈인 셈이다. 물론 제주에도 다양한 창고의 변신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새롭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창고만이 아니라 제주의 유무형 자산을 의미있게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과거의 장소에서 제주의 새로운 가치를 찾는 현대적 작업에 주목해야 한다. 카페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장소성을 되살릴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을 생각해 볼 일이다. 중요한 자산이자 활성화의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향수가 사진전이 반향을 일으키도록 했듯 지역의 하드웨어와 아카이빙이 함께 자원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진전과 대림창고가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는 이유가 있다. 제주의 가치에 대한 보존과 더불어 이의 적극적 활용을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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