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네 민박과 제주시 원도심의 가치
제주시 원도심의 도시재생지원센터 근처에는 나름 아기자기한 장소가 몇 군데 있다. 옛 제주대병원이 변신을 시도한 종합문화예술센터 '이아'를 필두로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 줄지어 매장 겸 작업공간을 열어 놓고 있다. 그 옆에 부끄럽듯이 숨죽인 주택인 도시재생지원센터의 담쟁이넝쿨은 많은 이들이 멈춰서 고풍스러운 담장의 운치를 감상하곤 한다. 다시 옆을 지나면 뜻밖의 공원스러운 공터와 300여 년 가까이 제주 초가의 모습을 간직한 채 아직도 90이 넘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박씨 초가가 있다. 이를 지나면 한 때 제주 원도심의 중심거리 역할을 했다는 한짓골이 자리한다. 한짓골 한 복판에는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옷가게와 커피숍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적 아니 젊은 감각의 패션과 커피음료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장소이다.
이 거리들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거리가 아니다. 큰길에서 벗어나 있기에 지역 주민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해가 질 녘이면 인적이 뚝 끊어지는 거리라 쓸쓸함마저 감도는 거리이기도 하다. 혹은 가끔씩 담배 필 장소를 찾아 헤매는 청소년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거리에 최근 들어 다양한 모습의 방문객들이 셀카를 찍는 모습이 눈에 띄고 일단의 젊은 아가씨들이 지나는 빈도수가 늘었다. 깔깔거리면서 몇몇은 “여기가 맞아”하며 지나곤 한다. 재생센터의 담쟁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 초가집이 신기해 담장 너머로 기웃거리는 사람들, 옷가게와 카페 앞에서 셀카를 찍는 젊은 아가씨들. 어찌 보면 이상한 현상이기도 한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이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가를 확인해보니 얼마 전 ‘효리네 민박’에서 이 거리와 옷가게가 나왔단다. 사람들이 효리와 아이유가 걸었던 거리와 옷가게를 찾아 소가 되새김질하듯 실제 장소를 확인하고 인증숏을 찍고 가는 것이다. 방송미디어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급격하게는 아니지만 원도심을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불어 쌀집의 간판을 그대로 유지한 카페, 식당의 간판을 그대로 남겨둔 책방, 저 크기에서 장사가 가능할 가 싶은 옷가게 등 다소 생소한 장소가 이제는 사람들을 안내할 때 자주 소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지역의 일부 매장들은 호황 아닌 호황을 누리기도 하고 인적이 뜸하던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빈번하니 생동감이 넘쳐나기도 한다. 평소에 한산하던 카페와 옷가게는 물론 길거리에서 방문객들이 늘어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미난 곳이 여기뿐이겠는가. 원도심의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장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방송미디어의 힘을 절감한다. 나름 의미를 부여하던 장소가 방송 한 번에 유명세를 타니 더욱 그렇다. 제주도를 알리는데 일조했던 연예인이 자신의 집을 열어 민박을 하는 모습과 그 부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그 대리만족의 기대가 인증숏으로 남는 시대다.
그들은 아직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문화를 듣고 가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몰라도 사람들이 찾는 걸 보며 기대되는 구석이 늘었다.
방송의 기억이 희미해질 시점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묻어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찾기를 바란다. 300여 년 된 초가집의 내부를 보고 재생센터의 폐가가 어떻게 생동감 있는 건물로 다시 자리 잡았으며 뒤편의 야반도주한 노동자의 슬프면서도 안타까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장소가 주민들의 공방과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되살아났는지를 보러 오기를 바란다.
조금 이르겠지만 사람들이 연예인의 흔적과 더불어 거리 곳곳에 밴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골목을 서성이고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를 듣는 반전을 기대한다.
“여기가 맞아. 그 이야기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