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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13. 2017

제주 3년_ 나는 어디에 있는가

제주 3년 나는 어디에 있는가.


제주에 내려간 지 3년이 되는 날.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른다. 가벼운 여행용 캐리어 하나를 끌고 마치 출장이라도 떠나듯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벌써 그렇게 오래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뭐 인생의 긴 여정에서 3년을 새롭게 사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마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새롭게 내 삶을 내 던지듯 믿지 못하던 삶을 시작하던 시계는 그렇게 째깍째깍 흘러간듯하다. 무슨 군대 다녀온 이야기도 아닌데 3년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말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지인들과 이야기해보면 벌써 그리됐냐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아직 그거밖에 안됐냐고 말하는 이들이 한결 더 많은 데에 더 큰 방점을 둔다. 몇몇은 내가 길게는 10년이 된 듯하다는 이들부터 최소한 5년 이상의 제주를 살아온 이주민이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나름 성공한 제주의 삶이라는 말이 되는데 사실일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새롭게 내 삶을 내 던지듯 믿지 못하던 삶을 시작하던 시계는 그렇게 째깍째깍 흘러간듯하다


내 삶의 성공 여부를 3년여에 평가한다는 것부터 우스운 일이 거니와 그에 앞서 내 삶의 3년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와 내가 바라본 제주라는 동네가 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를 알아야 하기에 나는 감히 3년의 시간을 한 포인트로 잡고 제주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일담을 이야기할 경우에는 아마도 다른 시각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제주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전 혹은 제주가 내가 차마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을 시절이 오기 전에 내 기억을 담아놓고 싶어 졌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펜시브'라는 기억을 덜어내는 공간처럼 나는 이 곳을 나의 제주 기억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삼으려 할 뿐이다. 


총평에 가까운 이야기부터 해보자. 아직은 제주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기도 하지만 문뜩 오늘은 외롭고 사람들이 그립고 혹은 그냥 저녁을 혼자서 보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때 나는 내가 제주를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생활 속에서 깨알 같은 감정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인위적으로 부여되기도 전에 스스로의 감성이 빈 여백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3년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와 내가 바라본 제주라는 동네가 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를 알아야 하기에 나는 감히 3년의 시간을 한 포인트로 잡고 제주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3년 중 구좌읍의 평대리로 이사 온 것이 1년이 되었고 나머지 기간은 시내에서 살았다. 혼자서 살았고 룸메이트를 구해서 살았으며 아는 지인의 방에 기대어 몇 달을 지내기도 했고 사무실에서 월세를 아끼기 위해 혹은 다음 수순을 생각하기 위해 6개월은 소파에서 생활도 했다. 그렇게 지내면서 살아온 나날이지 않던가... 그런데 겉으로야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고 혹은 국가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에 대해 언급을 하기도 했다.  난 뭘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위해 이 곳에 그토록 제2의 고향인 듯 집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주 일요일 하도의 리사무소를 바꿔서 만들어 놓은 문화 복합공간의 지지부진한 이사회 아닌 회의를 마치는 시간. 이제는 구좌생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전날부터 오늘 저녁을 위해 꼭 참석을 해야 하는 모임이라는 언질을 받았던 터라 으레 참석을 예정하고 있던 모임이 있었다. 자신의 동생 집으로 민박을 운영하는 집에서 벌어지는 초촐한 가을 저녁 파티다. 회의를 마치고 슬그머니 저녁을 해결할 겸 찾아 나선 모임의 구성은 이래저래 묘한 모습이다. 


그 모임이 내게 준 메시지는 내가 이들에게는 이주민으로서 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구성인즉은 평대 토박이인 친구와 3년 제주살이를 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듯 거침없이 제주를 이야기하고 있는 나, 제주가 좋아 직장을 지방인 제주 kbs로 옮긴이  평대 토박이를 여러 이유로 알게 된 여행객이지만 제주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평론가, 그리고 제주에서 오랜 작업을 하며 이미 스스로도 제주인임을 느끼고 싶어 하는 꽤나 유명한 그럼에도 어느덧 동년배처럼 늙어가고 있는 가수, 그날 처음으로  묵은 숙소 덕에 제주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여행객 가족. 이들은 함께 모여 가을밤  벌레도 거의 없는 날씨 속에서 모깃불을 피우며 인생과 제주와 다양한 음악과 책, 그리고 서로가 얼마나 귀중한 인연으로 이곳에 모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로가 한쪽만 걸치고 있는 인연이 계속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에서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 상황의 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면 될 것이고 나는 그 같은 상황에 내가 어느덧 제주의 이야기를 낯선이들에게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 신기했다. 더군다나 그 신기함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곳곳에서 '너희들이 제주를 알아'라는 메시지라도 전할 요량으로 거만함이 묻어 있음을 간파하며 스스로 화들짝 놀라 자중하려는 자세를 가지려 애쓰고 있었다. 내가 이토록 거만해서는 옳지 않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되뇌며 말이다.

서로가 한쪽만 걸치고 있는 인연이 계속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에서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한 가지 사건이나 상황으로 나의 제주 3년을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 다만 제주가 준 3년을 되돌아보며 다시 서울에서 마주친 성미산 마을의 사람들과 가족들을 보며 내가 그들에게 주었을 상처를 생각한다. 내가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던졌을 날카롭고 예민한 칼날들이 그들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을 텐데 나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그들 사이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문뜩 제주에 언제 내려가야 하지 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어색함을 음미한다.

구좌 복합문화공간 와들랑 개소식 모습

제주에 뭘 두고 왔을까. 사람일까... 아님 자연인가, 아니면 나의 새로운 인생일까. 그 무엇이 그곳에 남아있어도 아직 아내와 자식은 육지에 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그 섬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어쩌면 아직도 나는 서울이라는 돌아올 곳이 있기에 더더욱 제주를 탐닉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배수의 진을 치듯 제주를 이야기하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릴 듯 생활하고 있는 모습에서 어쩌면 서울이라는 둥지와 아내가 이곳에 있기에 더욱더 제주를 편안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3년이 지난 지금 10여 일에 달하는 휴가를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그 휴가의 중간중간 제주의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픈 욕구 아닌 갈증을 자꾸 되돌아볼 것이다. 그 갈증의 심장부에서 쿵쾅이는 요동이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상황과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인지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 무엇이 그곳에 남아있어도 아직 아내와 자식은 육지에 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그 섬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좋으나 미우나 제주는 내 생의 후반부를 장악할 것이고 그곳에 압도되는 삶을 결코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제주에서 무엇인가. 혹은 나의 인생에 무엇을 위해 제주에서 살려하는가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물으며 가고자 한다. 


시작은 참으로 창졸지간에 농담처럼 내린 결론이었지만 그 과정은 처절했으니 그냥 묻어두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불안의 칼날 위에서 서성이고 있다 해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대로 도망치듯 상황을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않기로 한 이상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 일이 필요할 지다. 3년이 지났으니 그러할 만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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