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9일
[편집자 주] 제주에 내려온 지 3년이 됐다. 3년이 지나도록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스스로 제주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힘은 역시 제주의 자연일 수밖에 없다. 처음 내려오면서부터 지내온 제주의 자연 이야기와 생활을 다시 들춰본다. 처음에는 어찌 기록해야 할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다녀온 이야기를 적었다. 그 3년 전부터 지내온 이야기를 이제 다시 꺼낸다.
드디어 아무런 준비 없이 제주도에 내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나는 마냥 불안하기만 하다. 내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혹시 누군가 가이드가 있다면 이 가이드에 따라 그냥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많은 두려움이 내 앞으로 가로막고 있지만 그저 시간이 되어 쫓기듯 비행기에 올랐다.
비가 내린다. 서울도 내리고 제주도에도 내린단다. 우울하고 불안하다. 차라리 맑은 날씨가 계속되면 기분이나마 한결 나을 텐데. 그 기분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드물게 추적거리는 비가 내린다.
공항에서의 기분은 늘 비슷하다. 출장 시의 비행기 타기는 마음을 설레게 하고 또다시 불안감을 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을 간다는 설렘은 있게 마련이다. 그 설렘과는 사뭇 다르다. 설렘 대신 두려움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혹은 불안감이 그 자리를 더 채우고 있다. 나는 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내 삶의 편린들을 맞추어 볼 생각이다.
하늘은 찌푸려있다. 그 찌푸린 하늘조차 볼 수 없도록 창문이 없는 자리에 앉아있다. 자리를 잡아도 하필이면 이런 자리람. 그러나 어쩌랴. 아직까지는 내 운발이 이 정도에서 계속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여행으로 제주를 향하고 혹은 일로,생활로 이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을 것이고 50만에서 60만 곧 7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제주도 인구가 늘어날수록 그에 맞는 사연들이 더 쌓여가는 것을.
제주 공항의 도착은 생각만큼 블루하지 않다. 비가 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비가 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해가 질만큼 비는 약간 멀리 있어 보인다. 대신 안개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안개, 나의 자욱한 뒷걸음과 앞일을 모르는 생활을 의미하듯 내 앞에 가로막혀 있다. 이 안개가 걷히면 조금은 명확해 질지 모른다. 다만 희망할 뿐이다. 안개가 오면 그 모호한 느낌을 즐기고 불명확함 속에 배어 나올 야릇한 기대감이 남아있듯 안개 후의 명확한 미래를 기대해 본다. 그리 될 것이다. 아니면 되도록 해 봐야지.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느 방향인지…
제주는 연태와 같은 느낌을 준다. 혹은 중국 내 변방도시의 발전하는 모습처럼 묘한 낯섦과 심리적 안도감이 함께 온다. 발전은 하고 있으되 결코 중심이 아닌 도시. 그러나 중심에 얽매여 있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발전과 미래를 추구하는 도시. 그 막연한 중간자의 위치가 제주시에서는 보인다. 그래서 참 묘한 느낌이다. 중심지이되 진짜 중심을 모방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 도시를 언젠가는 한마디로 규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비가 오는 날씨를 뒤로 하고 곽지해변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름만 알뿐 이미 해가 뉘엿뉘엿하기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리란 걸 알지만 그래도 도심을 벗어난다는 사실은 또 다른 기대감을 제공한다.
지인과의 조우 그래도 제주에 지인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낯선 땅의 막연한 방황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제주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저녁시간을 보냈고 제주에서의 생활과 또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시간들.
출장을 왔는지 살러왔는지 혹은 들르러 왔는지. 나의 지인들은 내가 이곳에 내려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을 그들에게 숨겨야 하는 것이 맞는지조차 모르겠다. 섣부른 도발 일수도 있고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첫날의 두려움은 그 무엇이든 여전히 불확실성에 얽매이고 힘들어하는 마음을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진정 이곳에 살러 왔는가 아니면 그 무엇이 남아있는지.
거나한 술자리를 마치고 나의 제주행을 발맞추러 함께 내려온 와이프의 모습을 보며 서글픔이 다가온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할 말이 없을 만큼 미안하기만 하다.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 그 자리를 보살펴주러 오는 마음은 어떠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착잡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잘 참고 있어 고맙다. 내가 그녀에게 읊조렸던 3년만 기다리라는 약속을 지키는 날이 오기는 할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나를 믿고 있는 그녀의 태도와 현실의 황폐함이 주는 안타까움으로 괴로워하는 그녀의 생활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어쩌지 못하며 미안함과 두고 보자는 마음을 갖는다.
편안히 자고 내일을 힘차게 맞이하기를 바란다. 제주의 좋은 풍경만으로 그녀의 방문이 약간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무엇으로 위로를 받을지 내일부터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기나긴 하루이며 슬픈 하루이기도 하다.
아들 녀석은 여전히 아빠가 자신을 멀리 떠나 있다는 사실에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조만간 느끼게 되면 나의 존재가 그에게 자리 잡을 날이 올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아빠가 된 자는 언제나 자신이 아들의 마음속에 큰 덩어리로 남아있기는 바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그 녀석의 아빠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벌써 보고 싶은 구석들이 여럿이다. 사람들과 장소 그리고 삶의 터전까지. 여전히 아들은 그 일순위이다. 언젠가는 내가 제주의 식구가 되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밤이지만 비는 내리고 파도소리는 아주 가까이 들리는 게 서울이 아님은 분명하다. 파도는 제주를 비롯한 해안가의 특징이고 그 안에 실려온 바닷가의 파도조차 아직은 정다움이 남아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가?
17년 전 미국 버지니아를 떠나며 대서양 바다를 대상으로 읊조리던 그 젊은 날의 나 자신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조차 어쩌면 이런 식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예정되어 있던 나의 모습.
피부에 부딪히는 바람의 느낌이 시원하다. 아직은 비관할 만한 느낌이 아니다. 시원함이 먼저 느껴진다. 그다음은 그다음의 처절함으로 감내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