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7017에 대한 소회_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는 어디에?
서울역을 다녀온 소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린 시절 지방이든 주변 도시든 서울로 오르는 관문의 역할을 했던 곳에 대해 누구 하나 자신만의 경험이 없을 리 없을 터이다. 나 자신도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다녔던 서울역의 몇몇 장소와 젊은 시절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지났던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단편적이고 편협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서울역 앞의 고가를 철거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고가를 재활용할 것인가의 논의가 불붙었던 시절부터 서울역 앞 고가는 한 시대를 생각나게 하는 구조물이는 점에서 무시하기에는 어딘지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예전 3.1고가도로와 청계고가와 비슷하게 산업화하면서 생긴 수도 서울의 한 단면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제주로 이주한 지 4년. 아직도 너무나 낯선 모양새 중의 하나가 선진지 답사라거나 견학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방문하는 일이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움직이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공항에서부터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는 일에는 여전히 낯설거니와 늘 마음은 '이거 뭐하는 일인가' 싶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곳곳을 관광지나 견학 대상지로 찾아보는 일의 경우에도 여전히 익숙치 않은 일이다.
서울역 앞 고가는 한 시대를 생각나게 하는 구조물이는 점에서 무시하기에는 어딘지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어찌 됐든 지방에서 살면서도 서울에 와서 이름을 알리는 장소를 찾아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뒤적거려 보는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번에 다녀온 서울역 7017도 관심의 논란 한가운데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차들이 다니는 고가를 사람들이 걷게 만든다고? 나 역시 당연히 철거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7017의 개장은 사뭇 관심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혹은 논란을 제기하는 입장을 차분히 가슴속에만 담아두기로 한 것은 섣부른 선입견을 갖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내고 나름 시간을 내서 찾아나섰다.
일단 서울역이 목적지라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서울역이야 다른 곳을 가기 위한 출발점이거나 경유지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지방으로 출발하거나 그곳에 도착해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인데 그곳을 찾아간다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암튼 몇 년간 수도 없이 새벽 KTX를 타기 위해 이곳을 찾았고 일산에서 시내로 출퇴근하기 위해 이용하던 역이었던 서울역에 도착하고 보니 예전의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차들이 다니는 고가를 사람들이 걷게 만든다고? 나 역시 당연히 철거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7017의 개장은 사뭇 관심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올라간 7017은 다양한 명성이 있는 때문인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가 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이곳저곳의 입출구가 있는 때문인지 나에게는 우왕좌왕하는 도시민들이 한 군데 모여 갈피를 못 잡는 듯한 인상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무지 때문이리라. 개념으로 치자면 공중정원을 생각했을 터인데 공중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커다란 시멘트 화분을 고가 위에 설치해 놓은 것일 뿐 그 이상을 느끼기에는 내 감성의 폭이 넓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입출구를 달리할 뿐 뜨내기의 인생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원이 그럴 것이다. 클라이맥스가 없는 것이니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서울역 철로 위를 쳐다보거나 서울역사를 바라보고 혹은 회현동 쪽 상가의 모습을 보는 등 다양한 체스처를 취하고 있다. 물론 모든 일에 절정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그르다는 판단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게 정원이면 되는 것이고 그런 정처 없는 장소가 도심의 한 복판에 있어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를 수가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서울역 주변이 어느 정도 변했다. 아파트도 많이 올라갔다. 대우빌딩으로 불리던 붉은색 빌딩이 금호아시아나 사옥에서 이제는 색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역으로 그 건물 안에서 7017을 쳐다보면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입출구를 달리할 뿐 뜨내기의 인생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화분 모양의 정원이 원래 계획대로라면 더 크고 무거운 형태를 지향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가가 하중을 받치기 어려워 축소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들어진 결과는 둥그러면서도 다소 어정쩡한 모양의 커다란 화분이 놓여있고 그것이 사람들의 진로를 어느 정도 방해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원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면 굳이 그것은 저토록 비효율적인 모양으로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형태로 놔두었어야 할까. 원형의 정원으로 모든 것을 다 마감한다는 생각을 바꾸었으면 어떠했을까. 곳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원형의 화분 정원 이외에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창조적인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서울의 재생 사이트로 새롭게 제시하고자 했던 7017 서울역 고가였다면 곳곳에 예상치 못한 뜻밖의 요소나 공간조형의 모습이 제시됐으면 훨씬 평가에 긍정적인 면이 있었을 것이다.
원형의 화분 정원 이외에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창조적인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하늘의 날씨는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 찌푸등하고 영 좋아지는 느낌이 없다. 7017을 둘러보는 마음만큼이나 서울의 선진지 견학이라는 현상이 내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도시는 회색빛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각오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밝은 하늘이 그리운 시간이다. 벌써 해가지려고 한다.
아들 녀석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녁을 뭘 먹지.... 괜히 따라나서지 않은 아들 녀석에게 짜증이 난다. 참,이놈의 못된 성격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