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시마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다.
마을의 좁은 그렇지만 가장 메인 도로를 걸으며 만난 너른 광장에서 우리 일행은 다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사실상 일방통행도 어려운 길이지만 교행을 하는 길이라는 게 신기했다. 더군다나 이 길이 가장 중요한 메인 도로라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상황이었다.
이제 겉으로 보이는 항구의 화려하지만 쇠락하는 듯한 분위기와 위압적인 사방공사의 길을 지나고 가정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의 한 복판으로 들어섰다
평일에는 이 길에 많은 사람들이 왕복을 한다고 하니 상상이 쉽지 않앗다. 휴일 때문인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간간히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경트럭 정도가 간간히 걷고 있는 일행들의 앞뒤를 지나치고 있었다. 이제 겉으로 보이는 항구의 화려하지만 쇠락하는 듯한 분위기와 위압적인 사방공사의 길을 지나고 가정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의 한 복판으로 들어섰다.
중간에서 오래된 수산물 가게를 만났다. 마을 안내자는 집주인 아주머니와 반갑게 이야기하며 우리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자 견학을 온 사람들임을 알려준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이 분은 이미 많을 방문객을 상대한 듯 전혀 불편하지 않게 친절히 마을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주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바다가 있는 동네의 수산물시장에서 보는 생선류들을 보면서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서 걸었다. 오래된 집들과 집 뒤편으로 보이는 골목길들이 양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구조를 보면서 순간순간 발길을 멈춘다.
카주야 상이 갑자기 안내를 하던 중 방향을 왼쪽으로 튼다. 아주 좁다란 겨우 사람 한 명이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담장 뒤편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는 이곳도 중요한 길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길목이지요라고 설명한다.
일행들은 호기심으로 그 골목을 따라 들어선다. 조금 덩치가 큰 사람이라면 앞뒤가 걸리거나 매우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좁은 길이다. 단지 집들 사이의 공간을 띠워 놓기 위해 골간으로 여겨지는 곳이 길이라는 사실은 일본인들의 축소지향형 성향을 잘 보여주는 듯싶었다.
오래된 집들과 집 뒤편으로 보이는 골목길들이 양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구조를 보면서 순간순간 발길을 멈춘다
골목을 빠져나가자 갑자기 그 골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넓은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는 크게 두 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나는 마을 묘지였다. 일본이야 화장을 한 후 묘비를 세우고 그 묘지를 마을 안에 함께 설치하기에 이상할 것도 없지만 좁은 골목을 지나 새롭게 만나는 곳이 묘지였다는 사실은 좁은 길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기분이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에서 다양하고 좁은 길을 지나고 나니 고양이들의 나라고 나타나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 세상으로 가는 입구에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펌프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으니 무언가 새로운 마법이 작동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에 사용했던 펌프였고 마중물을 부어야 물이 쏟아져 나오는 그 펌프를 거의 보기가 어렵지만 이 마을에서는 아직도 이 펌프가 사용되고 있었다. 빨래를 한다던가 화분에 물을 주던가 하는 데 사용되는 물의 공급처인 셈이다. 진짜로 그 펌프와 위의 묘지들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좁은 골목을 지나 새롭게 만나는 곳이 묘지였다는 사실은 좁은 길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기분이었다
지나다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관광객들인 우리를 보고는 반갑게 맞이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소식에 신기해하면서도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겉으로만 보면 아무런 법도 필요 없는 사람들인데 일본이라는 나라가 보여주는 기괴함과 특이함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암튼 마을 분들은 어느 모로 보나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다.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사이 신기한 사당을 하나 발견했다. 공동주택의 입구 옆 벽면에 조그마한 부처상이 들어있는 사당이 위치에 있었다. 벽면 전체를 사당으로 만든 것도 아니라 벽면의 일부를 파고 그 안에다 부처상과 향을 피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보여주는 기괴함과 특이함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안내자에게 연원을 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세하지는 않지만 개괄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전에는 이곳에 자그마한 진짜 사당이 있었어요. 그런데 땅 주인이 집을 지어서 여러 명이 살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사당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지요.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집을 지으면서 벽면을 뚫어 아예 사당을 없애지 않고 모셔두자고 해서 이렇게 된 것이에요"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 옛것에 대한 보존을 택한 마을 주민들의 지혜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가 마을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하찮고 별 볼 일 없다고 느껴지기보다는 많은 면에서 구력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다시 메인도로로 나와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마을 한 중간에 문희당이라는 문구점이 나온다. 범상치 않은 느낌을 감지한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둘씩 문구점 안으로 들어간다. 말이 문구점이지 이곳은 지역의 커다란 마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마을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하찮고 별 볼 일 없다고 느껴지기보다는 많은 면에서 구력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을 위한 문방구를 비롯해 간단한 생활필수품들, 다양한 만화와 잡지들을 비롯해 일본만의 중요한 특징처럼 여겨지는 다양한 성인용 잡지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구색이란 구색은 다 갖춘 미니 백화점인 셈이다. 장사한지 90년이 되어가는가게란다. 3대째의 며느리가 이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문구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이 문구점이 나온 책을 발견했다. 기쁜 마음으로 한권 구매. 책 제목은 '낙도의 서점'. 22개의 일본 낙도의 다양한 형태의 서점들을 발로 취재해서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작가의 이름이 순간 한국인인줄 알고 깜짝 놀랐다. 박순리. 자세한 약력이야 알 수 없는 노릇이라 그러려니 해본다. 일본인들은 다양한 형태로 책을 낸다. 난 그것이 늘 마음에 든다. 주제의 한정이 없으니 말이다. 나도 낙도의 서점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이나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와사키라는 이름이 붙은 일본의 식당이자 마을활동가들의 중심지로 찾아들었다.
그들에게 들은 설명은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과 진정 마을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거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다양한 형태로 책을 낸다. 난 그것이 늘 마음에 든다. 주제의 한정이 없으니 말이다
채석장 산업의 쇠락으로 고민하던 마을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섬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외부 산업에 의존해서 방법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필요한 것과 장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2006년부터 생선요리를 만들어 대도시나 오사카에 판매를 시작했으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제품인 '노리코'라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 이 제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지금도 전국적으로 팔려나간다. 덕분에 돌아오는 길에 나 역시 이 제품을 하나 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입맛이 조금 달랐다. 제품 덕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상품을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 점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마을활동과 마을 기업의 목표다. 통상적으로 이런 제품이 히트를 하면 그로 인한 집착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들은 그 점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다.
그들은 마을기업의 목표로 연말에 결산을 해서 마을 주민들이 주변에 좋은 곳에 함께 여행을 다녀올 정도만 되면 된다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 그 이상의 인위적인 노력들이 얼마나 섬과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의존적으로 만들었는지 채석산업에서 잘 봐왔기 때문이다. 깊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었다.
이후 고향만들기청년대라는 이름으로 외부 청년들과 이에시 마 청년들의 조직이 구성되고 이들은 섬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주요 관심사는 인구감소 등으로 인해 섬에서 뭔가 할 수 없는가라는 주제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들은 마을기업의 목표로 연말에 결산을 해서 마을 주민들이 주변에 좋은 곳에 함께 여행을 다녀올 정도만 되면 된다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들이 이야기한 내용 중에 기억해야 할 만한 이야기 한두 가지가 생각난다.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기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와 "관광섬으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한 섬과 마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지는 삶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뱃시간에 쫓기며 항구까지 나오는 시간.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일본의 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산업화가 만들어낸 결과물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경제구조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한 섬과 마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지는 삶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배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배웅을 해주는 관계자들과 그 와중에서도 "또 만나고 싶어요"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꺼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저들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에시마라는 섬은 쇠락해가는 지역이 마을로 살아나는 과정의 예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