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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09. 2016

제주 오름과 전형성_안돌 오름 밧돌 오름

오름, 숲에서 만난 형제 오름의 친근함

공식적으로 제주도에 인정된 오름이 368개로 기록된다. 그중 올라가 볼만한 오름이 100여 개라고 치고 나머지는 이름은 있으나 개발이 됐거나 동네 언덕 수준으로 구분조차 불명확한 것 등 다양한 모양과 현재를 보여준다.


그중 가장 제주다운, 뭐 제주답다는 게 제주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겠으니 오름다운 것을 고르라고 하면 이 오름을 고른단다. 뜻밖이다. 그 대답의 대표성은 물론 없다. 지인 몇 명의 평가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는 오름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다소 낯설지만 전형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궁금해졌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대표적이지만 티가 나지 않는 것이리라

제주를 몇 번 정도와 본 사람들에게는 다랑쉬오름, 용눈이 오름, 백약이오름, 아부오름, 노꼬메오름 등 자주 찾는 몇몇 오름들이 잘 알려져 있다. 나 역시 이런 오름들부터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올레길을 걸으며 길안에 포함돼 있던 낯선 오름들을 오른 것을 제외하고 오름이라고 찾아 나선 첫 오름이 아마 다랑쉬오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송당을 향해 달리던 쭉 뻗은 삼나무 숲 도로를 지나다 보면 언뜻언뜻 나란히 두 개의 오름이 보인다. 사실 누군가 보라고 해서 알 수 있었지만 삼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것을 헤집어가며 찾아볼 만큼 특히 한 산세나 지형도 아니고  높이나 위치도 압도적이지 않다.


이름이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이다. 비슷하게 생기고 비슷한 높이의 오름이다.


제주도에서 안쪽이라면 어디를 기준으로 안이고 밖이 될까. 어렵지 않게 산 쪽에 가까우면 안이고 바다에 가까우면 바깥쪽이 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싶다. 이름은 공교롭게도 밧돌이라고 쓰여있긴 하다. 


송당의 마을 길인 '소원 비는 길'에도 입구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도 송당이구나. 사람들이 안팎을 구분할 때 고민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송당에서 보면 마을에 가까워야 안쪽일 텐데 그곳은 밧돌이다. 조금은 넓게 생각했으려나. 

전형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대표적이지만 티가 나지 않는 것이리라. 대체적인 요소는 다 포함되어 있으나 딱히 이거다 싶은 그 무엇은 없는 것. 그것이 오름의 어떤 부분일까. 여기서 적절하다는 표현을 무시로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적절한 높이의 오르는 길, 완만한 높낮이가 있는 능선, 주위의 탁 트인 조망, 주변 환경과의 조화 무엇하나 내가 전형적인 것의 의미를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생각나는 수준들이 이 정도다. 이를 믿고 오르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되는 높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제주도 오름 길들이 대체로 그렇듯 여유와 사색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길을 내기 전 마을 사람들이 뒷동산 오르 듯 늘 오르내리던 길에 공식적으로 오름 길을 정했다. 이곳도 직선이긴 매한가지다. 옆으로 휘거나 살짝 높이를 조절하거나 하는 여유를 줄 이유가 없다. 조금 숨이 차더라도 한걸음에 달려 올라가 버리면 그만이다. 늘 오르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머뭇거릴 여유도 이유도 없다. 위쪽에 다소 어슬렁거리며 걸을 수 있는 능선이 기다리고 있다. 여유는 그곳이면 충분하다. 


약간의 굴곡진 능선길을 걸으며 이 오름은 마무리다. 분화구가 한쪽으로 터졌다. 원형의 분화구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곳은 용암이 낮은 쪽으로 흘러 내려간 때문인지 분화구는 말발굽 모양이다. 


오름 정상을 넘어 다시 급격한 내리막이다. 바로 옆에 붙은 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 시야를 이끈다. 옆 봉우리가 밧돌 오름이다. 두 곳이 형제라도 되는 듯하다.

오름 맞은편에 보이는 삼나무로 가득 찬 오름. 거슨새미 오름이라고 했다. 나무가 너무 우거져 재미가 없다고 하지만 고사리가 풍부해 봄철 되면 고사리 채취를 하기에 딱 좋다는 곳이다


거슨새미와 반대쪽에 보이는 저 오름은 체오름이다. 가는 길이 영... 철탑 밑을 통해서 가야 하는 등 쉽지 않다는 곳.
앞의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서있는 오름. 설명해준 사람의 표현에 따르면 여자 브래지어를 닮은 오름이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갈 생각을 하니 괜히 이 길을 택했나 싶지만 그래도 왔으니 가보겠노라.

능선을 접고 나면 다시 내리막길과 오르막이 보인다. 이곳도 역시  직설적이다. 특별히 다른 군더더기 없이 길이 나있다. 물론 길이 S자로 구부려져 있지만 높이를 천천히 내력 가고자 하는 이유는 아니다. 약간의 걷기 편한 길을 찾다 보니 살짝씩 휘어있다. 내려갈 때는 쉬우나 올라갈 때는 숨이 다시 헐떡인다. 에구구...


밧돌 오름 정상에서는 북쪽이 보인다. 송당마을과 그 너머 바닷가로 시야가 향하지만 구름 낀 하늘은 멋진 풍경보다는 스산한 저녁의 하루를 보이며 이제 그만 하루를 보낼 준비를 하라 한다. 


올라갔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전 오늘 해넘이는 이쁠 것 같다는 판단에 한참 동안 동산에 섰다. 얼마만인가. 시간을 정지한 듯 서서 아무 말 없이 자연을 기다리는 일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주위에 일체의 소리도 없다. 주위의 방해를 받지 않아야 존재감은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난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주위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노을을 보기 위해 한참을 서 있었던 관계로 해가 저버리고 말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세상 모든 3차원의 모양을 가진 것들이 마찬가지겠으나 한쪽면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진실에 가깝지 않다.

주위의 방해를 받지 않아야 존재감은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올라오는 입구에서는 안돌 오름의 초입밖에 보이지 않아 둥그런 오름이 야트막하게 있겠구나 싶지만 이 야트막한 오름이 제주의 전형적 오름의 특성을 이야기할 만큼 다양하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된다. 힘겨움도 있지만 여유로운 능선, 경치가 주는 아름다움과 낙조의 은은함. 지리산에서나 보일 것 같은 첩첩산중의 봉우리 대신 오름 군락, 그리고 나름 오름 중에서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다랑쉬, 높은 오름, 백약이 등등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는 조망. 


자신도 오름이면서 서로를 살펴볼 수 있는 닮은꼴과 제주의 대표적인 오름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와 군락을 느끼고 해변을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신들만의 아기자기한 길과 느낌을 전해줄 수 있어서 전형성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오름을 오른다는 것이 갖는 제주에서의 의미는 약간은 다른 의미가 있음을 조금씩 알겠다. 그 느낌이 뭉쳐지면 오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하다.  

<2016.03.09.>

밧돌 오름에서 쳐다볼 안돌 오름.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의 경계선에서 묏자리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동자석이 보인다. 가운데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설마 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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