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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1. 2017

제주살이 단상_과거를 찾는 사람들

2014년 11월 15일 제주 한 달 반

제주에 내려온 지 한 달 반.

제주에 대한 섣부른 일반화를 한다면 주변으로부터 온갖 질타를 받을 것이 뻔하다. 독설을 내뿜는 우를 범하는 섣부른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숨 가쁘게 달려온 6주가 6개월처럼 느껴진다. 매일같이 지역의 뉴스를 찾아내고 기사 쓰고 편집 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제주 사람들의 상이해되는 구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무 혹은 주변 인물들 자신들의 오랜 경험을 이야기해줌과 동시에 간간히 통계와 역사적 정치적 상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니 나로서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거의 매일 술자리가 계속된다. 그에 비해 의 반향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내 몸이 좋아질리는 만무하고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공기가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가끔 저녁 약속이 없을 때는 집에서 한마디도 없이 외롭게 보낸다. 내가 이 고장누굴 알겠으며 누군들 50 먹은 인간을 맘 편히 받아줄 수 있을까 싶다. 그냥 저녁 술자리에서 나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다름이다.


섬으로 내려와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고향이 어디인가와 어디 이씨인가이다. 고향이야 육지 것(?)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지면 어김없이 묻게 되는 게 정상이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성씨에 대한 질문은 다소 의아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내 성씨가 경주 이씨라는 게 그들에게 뭐 그리 궁금한 사항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것이 제주의 관례이고 습관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양씨를 만나본적이 별로 없다. 낯설고 양념처럼 간간히 섞여있는 성씨이기만 했던 양씨가 이 곳에서는 지천이다. 한데 그 흔하다는 고씨는 비교적 만나본 횟수가 적다. 부씨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최근에 '카트'영화를 개봉한 부지영이라는 여감독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현씨와 오씨 등은 많이 만났다.

 제주 사람들에게 성씨와 고향은 아직도 너무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듯하다

 이리 성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까. 제주 사람들은 같은 성씨면 고향이 어디냐고 꼭 묻는다. 나는 한림의 어느 마을이고, 나는 애월의 어느 마을이고... 기타 등등. 나로서는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마을인지라 그러려니 하지만 이들은 모두 그 지역의 특색에 대해 상세하고 소상히 설명해주고 서로 잘 아는 듯 동조하고 이해한다. 같은 성씨라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제주 사람들에게 성씨와 고향은 아직도 너무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듯하다. 그리고 같은 성씨라면 무슨 파며 항렬이 어떠냐 하는 소리를 거의 예외 없이 서로 묻고 서로 확인하는 친절함을 지녔다.


평생 살면서 들었던 것보다 성씨에 대한 질문을 많이 으며 희귀 씨는 아니었어도 간간히 만났던 소수의 성씨를 다수로 보는 일도 여기 제주가 주는 나름의 재미다. 다른 하나 항렬을 따지고 고향을 따지고 집안의 제사에 대한 이야기며 가족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모든 술자리에서 듣는다. '괸당'이라는 용어를 개념적으로 이해해도 실감하지 못하지만 제주민들에게는 엄연한 생활속의 현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10대 후반 내 뿌리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약 3-4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 이후로는 사실 성씨와 고향, 문파, 지역 등의 이슈가 번거로운 개념이었지 나의 관심과 생활과의 밀첩함을 가졌던 적은 결코 없었다.

평생 살면서 들었던 것보다 성씨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으며 희귀 성씨는 아니었어도 간간히 만났던 소수의 성씨를 다수로 보는 일도 여기 제주가 주는 나름의 재미다

내가 반평생을 살아온 서울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을 확인해서인가 신기하기만 하다.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 제주 토박이나 유턴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대한 뿌리의식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강하다는데 희망을 건다. 그 점과 더불어 예전 같으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육지와 떨어진 변방의 개념보다 제주 자체가 동북아 지역의 보석 같은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자부심이 싹트고 있는 느낌을 받아 새롭다.

<삼성혈 건시대제>

아마도 분권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증가로 이미 중앙과 지방 혹은 위와 아래의 개념을 상당히 희석시킨 탓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고향이 어디일까. 그것을 떠나 나의 고향이 어디든 그곳과 연계되어 있는 나의 그리움이나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불행하다는 우울감이 든다.


갑자기 인천에 계시는 아버지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 나의 고향과 살아온 역정을 멀리서 찾을 일이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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