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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2. 2017

김녕 지질트레일과 월정리 해변

2014년 12월 6일 구좌를 향한 첫 관문 김녕을 지나...

아무리 제주가 멀리 떨어져도 날씨가 육지와 완전히 다를  수는 없는 법.  눈과 한파로 전국의 사람들이 떨고 있는 동안 제주는  혹은 진눈깨비와 우박, 그리고 바람으로 육지 날씨에 최소한의 예의를 표시한다. 화창하면 안 되려나... 일주일 내내 비가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렸다 목요일 저녁에는 우박을 선보이며 마치 스티로폼이 하늘에서 내리는 느낌이 든다.


저녁부터 밥을 먹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2-3일 전부터 계속되는 감기 기운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힘겨운 눈을 겨우 떠 보니 오전 10시 30분이다. 젠장 어디를 갈까? 얼마 전부터 어딘가를 가게 되면 김녕지역의 지질트레일 길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가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잠을 청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리됐다.


창문을 열어 바깥 날씨를 살폈다. 일주일 내내 내리던 비는 오전 중에 그친다더니 그 칠 모양이다. 서둘러 김녕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버스 편의 연결이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문제는 김녕 성세기 해변에 가까워 오는데 도무지 하늘은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가 비가 더 거세게 내리고 있다. 이크 큰일이다. 우산을 안 가져왔다.

눈과 한파로 전국의 사람들이 떨고 있는 동안 제주는 비 혹은 진눈깨비와 우박, 그리고 바람으로 육지 날씨에 최소한의 예의를 표시한다

얼떨결에 성세기 해변 앞에 내렸다. 아무도 없다. 해변에서 나를 맞고 있는 것은 예상대로 비와 바람이다. 바람의 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상시에도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한 이 김녕지역에 바람의 강도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 와중에 지질 트레인 팻말을 보고 출발지를 찾아갔다.


안내센터에는 아무리 사람들이 오지 않기로서니 주말에 닫혀있다니 어이가 없다. 사람들이 평일에 오기보다는 주말에 오는 것이 정상 일터 공무원 마인드가 아닌가 싶다. 주말에 열어야 사람들에게 안내를 해 줄 수 있지...


허걱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 거친 날씨에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명이 아니다. 서너 명은 된다. 저자들의 정체는 뭐지? 뭔 생각으로 이런 날씨에 윈드서핑을 하는것까. 하긴 바람으로 치면야 이런 날씨가 최고일 것이다. 그래도 중무장을 해도 이리 추운데 바닷물에 들어가서 이 바람을 맞으면 춥지 않으려나. 혹시 바다가 따뜻한가...

김녕의 옛 등대인 도대불

마을 한쪽의 이곳저곳을 걷는 지질 트레일 길은 산이나 숲길과 달리 동네 사이와 아스팔트 그리고 밭길 사이를 걷는 향토문화 순례와 같은 느낌이 든다. 단순히 올레길을 향해 쭉 걸어가는 것과는 달리 자연이 어우러진 역사와 민속의 길을 걷는 느낌이다. 해변의 길은 올레길과 겹쳐있어 이 동네의 일부를 걷다 나머지는 올레길을 간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처음 만난 성세기 해변과 옆의 조그만 해변을 지나니 도대불이라는 민간등대가 나온다. 지질트레일이라는 것이 지형적인 특징과 이를 이용한 옛적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잘 볼 수 있다. 단순한 문화와 지형 관광과는 약간의 이질적인 것이 존재한다. 제주 관광공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역시 눈으로 보는 이만 못하다.


지질트레일이라는 것이 지형적인 특징과 이를 이용한 옛적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잘 볼 수 있다. 단순한 문화와 지형 관광과는 약간의 이질적인 것이 존재한다



도두 불을 지나니 조간대라는 지명의 장소가 나온다. 제주도 곳곳에 널려있는 현무암 바위들이지만 이곳 조간대는 물이 차면 잠기고 빠지면 드러나는 곳이라고 하니 사실 갯벌 같은 역할일 텐데 제주는 그 역할을 현무암이 하는 것이리라. 현무암의 울퉁불퉁한 바위에서 너럭바위 같은 것은 제주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무슨 도움인지는 모르는 관계로 패스... 암튼 마을 곳곳에 이런 장소가 남아있다니 김녕이라는 동네는 참으로 지질을 생활과 잘 연결 지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청굴물의 모습

지질 트레인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여러 본 소개한(내가 쓴 기사만으로도 3번인가를 소개한 듯싶다) 청굴물을 보았다. 사진 그대로 먼 바다 위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주택 바로 뒤편에 자리하고 있어 내심 놀랬다. 이곳 역시 용천수 지역일 테니 빨래터나 아님 목욕하는 장소였으리라. 암튼 참으로 특이한 지형에 특이한 문화가 돋보이는 장소다.


청굴물을 나와 걷는다. 여의 제주 마을과 마찬가지로 담이 온통 현무암으로 구성돼 있다. 담치기 하기가 부담스럽다. 일반 담이면 잡고 넘을 텐데 혹시 담을 넘다 우당탕 쓰러져 버리면 어쩌지 싶다. 멋스럽고 고풍스러운 집담이 길을 내고 있다.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길로 이어지다 옛적 생각이 나는 간판과 가게가 보인다.

마을을 나와 큰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간판은 나를 길 건너 이런저런 밭들이 널려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안내표시판에는 저곳 어딘가를 들러 다시 길로 들어서라는 요청인 듯하다. 먼저 동부보건소 안에 마련되어 있는 건강 빌레 정원은 아마도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거나 인공적으로 바위를 이용해 제주식의 정원으로 재현한 모습 이리라.


이를 제주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적용하면 일반주택의 정원으로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옛적에 베트남 보트피플로 미국으로 건너간 미국 친구의 아버지가 샌디에이고에서 베트남식 정원으로 조경업을 하면서 크게 성공했던 예가 생각이 났다. 제주의 장점이자 자원이 아닐까 싶다.


길은 어느새 나를 공동묘지로 이끌었다. 묘지가 있는 곳도 오름이라고 하니 제주의 오름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단지 오르고 소와 말을 키우는 방목지로서의 역할을 넘어 묘지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본향당이라는 당굿을 지내는 터를 지났다. 팽나무가 그 자리를 지키며 서있다. 생각보다 초라해서 아쉽다.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티가 난다. 아직 철이 아니어서 그런가. 암튼 본향당과 대비되는 당굿 문화는 육지에서도 시골 지역이 아니고서는 이미 과거의 문화유산이 되어 버린 지 꽤나 된 듯싶어  아쉬움이 함께 남는다. 그래도 들어보니 제주의 당굿은 육지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자세히 찾아봐야겠다. 


설명에 의하면 이곳 본향당은 터는  남성신이 아닌 여성 신을 모시는 달이라 한다. 큰도안전 큰도부인이라는 여성 신을 모신다고 한다. 도무지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제주의 특성은 곳곳에서 잘 나온다. 육지와 이름과 단어를 쓰는 방식이 참 다르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제주의 곳곳에 남은 당굿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길을 되돌아 나와 다시 마을과 바다로 나왔다. 이 이후로도 계속되는 바람과 간혹 내리는 빗줄기는 감기로 이미 만신창이 된 나의 얼굴과 몸을 최악으로 몰고 갔다. 오늘 저녁에는 얼마나 끙끙거리며 앓게 될지 생각만 해도 걱정이지만 그래도 제주를 걷는 기분은 상쾌하고 묘한 해방감을 준다. 주말이 계속될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날씨로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을 담밭을 향해 걸으라는 이정표를 약간은 무시한 채 다시 바닷가의 올레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그리되면 지질트레일 길을 거꾸로 걷게 되는 셈이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두 가지를 다 걷게 되는 것이니 바다를 향해 다시 원래의 출발지를 향했다. 목적지는 월정리 해안. 카페촌이 형성되어 있다는 그 월정리를 향해 종착지로 삼으면 오늘의 시간이 맞지 않을까 싶다.


바닷가를 향해 방향을 잡고 원래의 출발 자리로 다시 왔다. 오던 중 코너를 도는데 덩치가 꽤큰 개와 모서리에서 맞부딪혔다. 오른쪽으로 코너를 도는데 녀석이 왼쪽으로 돌며 내 앞에 턱 하니 나타났다. 깜짝 놀라 주춤하는데 나보다 더 놀란 듯 녀석이 움츠리며 뒤로 물러선다. 녀석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서로가 모른척하며 제갈길을 간다. 사람과 맞부딪치게 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가고 픈 생각이 든다. 녀석에게서 사람 냄새가 난다. 표정이 읽히니 그런가 보다.

깜짝 놀라 주춤하는데 나보다 더 놀란 듯 녀석이 움츠리며 뒤로 물러선다. 녀석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바다로 나가 성세기해변을 다시 찬찬히 걷기 시작했다. 고운 모래밭과 이쁜 바닷가를 가지고 있다 참 좋은 해안이다. 여름에는 너무나 이쁜 해변이겠다. 날 좋을 때 오고 싶다. 몇몇 사람들도 나처럼 모랫가에서 사진을 찍거나 풍광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계속해서 해안이다. 아직은 제주가 주는 느낌은 바다가 더 강하다. 산과 들과 숲도 무시할 수 없지만 조금은 더 바다에 열린 가슴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바다만이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산길이나 밭길이 그래서 더 좋은 모양이다. 성세기 해변을 지난 본격적인 해안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뒤로한 해변이 아스라이 보이기 시작하고 환 해산 성이 앞에 나온다. 바람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계속 몰아치고 있다. 코에서는 콧물이 계속 흐르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한다. 자전가 마스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거기에 모자까지 두 겹으로 쓴 덕분인지 그나마 조금 견딜만하다. 날씨가 조금씩 개일 기미를 보이고 있다. 구름 사이로 가끔 해가 나오고 다시 구름에 가리고를 반복한다.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바닷가에 멋진 무지개가 떴다. 왼쪽과 오른쪽을 함께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무지개가 보인다. 사진에 한꺼번에 잡히지 않는다. 너무 가깝다.

지난주에도 서울에서 무지개를 봤는데 요즘 무지개를 자주 본다. 아마도 내가 무지개를 쫒고 있는 모양이다. 내 인생이 무지개를 쫒아 허황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진짜로 무지개를 쫒아 간다면 나는 어쩌지... 그래도 무지개는 보기에 좋다. 잠시 사라졌다 다시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무지개와 함께 해보기는 처음이다. 멋진 하늘과 바다다.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바닷가에 멋진 무지개가 떴다. 왼쪽과 오른쪽을 함께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무지개가 보인다. 사진에 한꺼번에 잡히지 않는다. 너무 가깝다


한참을 걷다 보니 풍력발전기 바로 밑에 도달해 있다. 자세히 보니 현대 제품이다. 제주에너지 발전연구원도 눈앞에 있다. 그 무엇을 떠나 김녕지역이 풍력발전의 보고가 될 것은 분명하다. 곳곳이 나우시카 계속의 모습을 보여준다. 참 좋은 모습이다.

길을 걷다 보면 제주에서 자주 보게 되는 풍경이다. 도로와 갈대와 바다와 검은 바위.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다정하기까지 하다. 이곳은 그 정경에 풍력발전기가 겹쳐지지 묘하고 낯선 기분이 한데 어우러진 느낌이다. 아마도 월정리 해안은 이런 기분으로 카페가 하나둘씩 몰려들어 이제 카페촌이 된 것이 아닐까.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모르겠으나 그곳에 찾아가서 카페를 차리는 사람들 역시 그 느낌이 좋아서였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길을 돌아 마냥 해변으로만 걷자니 아스팔트 길과 오가는 차들로 다소 불편한 생각이 들던 차에 올레길은 물론 지질트레일 팻말도 마을 안쪽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올탓구나 하며 밭담으로 둘러싸인 안쪽 길을 향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이쁜 집들이 한두 개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도 색깔이 바뀌고 펜션도 나타난다. 이곳이 월정리와 멀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저 앞으로 바다가 다시 보인다. 그 뒤편에 작은 병풍처럼 둘러친 카페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월정리에 다 왔네. 조금은 더 가서 극적으로 도착하고 싶었는데 너무 싱겁게 내 앞에 나타나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부터는 월정리 해변이다. 해변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해변이 분명하다. 서울적인 시각에서 이 카페촌이 잘 어울리는 것인지 이 해변을 망쳐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오늘 목표는 월정리에 와서 커피 한잔 여유롭게 마시는 거였는데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막상 와보니 들어가기가 싫다. 연인이나 관광객용의 유흥가 냄새가 너무 짙게 풍겨왔다. 다른 지역의 카페에서 느껴보는 아늑함이나 편안함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여기서 커피를 마시는 일을 포기했다. 대신 해변을 편안하게 걸어보는 일로 즐거움을 대신하기로 했다.


월정리는 이렇게 변하기보다는 좀 더 편안한 장소가 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관광객으로 들르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온몸이 편치 않다. 얼굴 안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감기의 열기가 코와 눈 주변에서 화끈거린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동일주 순환버스가 바로 도착한다. 오늘은 버스 연결이 아주 좋은 날이다. 시간 단축에 그지없이 좋은 행운이 있는 날이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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