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Nov 29. 2017

'향연'과 신비의 바다 위미

2015년 8월 22일 야외의 아마추어 공연을 보며 삶을 생각하다

하루 동안의 일정을 이렇게 자세하고 다양하게 쪼개서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의 짧은 호흡에 또다시 놀라기도 한다.


글을 오랫동안 이어가며 쓰기가 힘들다. 기사는 차라리 오랫동안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글들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


아마도 본질적으로 감성을 표현하거나 사람의 깊은 마음과 자연의 교감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한 인간인 게다.


그 때문에 최근에 한 사람으로부터 이유도 알지 못하는 심한 질책을 받고 상처를 받기도 했으니 나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알지 못하는 부족함이 많이 남아있는가 보다. 나이가 먹어가도 그 본질을 깨닫는 일이 왜 이리 힘들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자연의 놀라운 모습과 경외로운 장관을 보면  마음이 조금은 더 순화되고 자연과 가까우랴 싶지만 역시 그때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아마도 본질적으로 감성을 표현하거나 사람의 깊은 마음과 자연의 교감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한 인간인 게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내 생각이 어떻다는 말을 잔뜩 써놓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생각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써버린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미봉을 내려와 종달리 정류장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동쪽 끝 성산에서 동해 일주 버스를 타면 거리상으로 보니 1시간 20여분이 걸릴 거리이다. 지금이 4시 30분이고 향연의 시작은 6시이기에 딱 맞는 시간일 것 같다.


한참 동안 버스를 기다리고 앉았다가 오른 버스는 상당히 여유가 있는 상태였지만 다음 정류장부터 내리는 사람은 없는데 계속해서 버스에 사람이 오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위미항까지 1시간여를 달렸다. 지방 버스를 타며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오르는 모습은 언제나 정겨운 느낌을 준다.


대학시절 안동이나 대구 혹은 동해안을 여행하며 텅 빈 시외버스를 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내 생각이 어떻다는 말을 잔뜩 써놓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생각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써버린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불편했다

원래의 예정지보다 한정거장 먼저 내렸다. 동행자에게 위미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거니와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이네 집을 둘러 가고 싶었다. 육지인들은 아무래도 건축학개론의 서연이네 집이 많이 알려져 있어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다소 위안을 삼는 듯싶다. 나나 제주의 사람 혹은 그 마을 사람들은 서연이네 카페가 동네 입장의 불청객과 다름없는데도 말이다.


그 서연이네 집을 지나 목적지인 위미 마음빛 그리미를 향해 천천히 걷는다. 목적지는 그곳이지만 제주에서 내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쉽게 가져보기 힘든 복 이리라...


이미 그곳 사람들과의 친밀도도 깊어졌거니와 그곳에서 알게 된 외지인들도 한 두 명이 생기다 보니 생활의 모습이 도시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항구를 지나 목적지 앞에 다다르기 전 묘한 해무에 휩싸인 먼 섬이 보인다. 아마도 섶섬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묘한 분위기가 그동안 가져보지  못한 기분을 준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게  좋다.

지방 버스를 타며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오르는 모습은 언제나 정겨운 느낌을 준다

나를 반겨주는 주최 측 사람들과 반갑게 손을 흔들며 갤러리에 들어가니 아는 사람들 몇몇이 눈에 띈다. 역시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잡았다. 지난주에 서울을 다녀와서 못 만난 한결 선생과도 농반 인사반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어느덧 이 사람들, 아니 제주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연은 역시 아마추어 공연인지라 감 칠 만나거나 커다란 감흥을 주지는 못해도 연주를 잘하는 분들과 아직은 익숙지 못한 분들의 실력 속에서도 자신의 취미를 무대에까지 올린 갤러리 운영진과 선뜻 올라선 분들의 용기가 몹시도 고맙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혼자였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하며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나와 동행한 이는 어지간히 낯설고 어색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의 이 분위기를 도시의 사람들이 익숙할 리가 만무하다.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 모르는 사람들과의 어색한 파티는 여전히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도시에서의 생활은 인간을 분절적으로 만들어 놓고 무능력하게 만드는 것이 맞다.


결국 다른 저녁 약속을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이 서귀포로 향했다. 오늘은 서귀포 어느 모텔에서 잠을 청하리라.

그만큼 도시에서의 생활은 인간을 분절적으로 만들어 놓고 무능력하게 만드는 것이 맞다

지난번 강정대 행진에 참석할 때도 긴장감만 가지고 동행과 한 모텔에서 잠이 들었던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몹시 힘들었는데 최소한 오늘은 이런 긴장감 없이 후배와 도란도란 이야기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주일이 넘게 지난 기억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기분 좋은 기록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보리밭 생생한 17코스 다시 걷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