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Oct 04. 2017

방에 묻어 놓아야 할 시간들

2014년 10월 3일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나긴 저녁 밤을 혼자 보내게 될 예정이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나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혹은 낯선 상황일지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휴일임에도 오후 무렵 사무실에 나갔다. 그냥 나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가서 앉아 있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았다. 참 무료하면서도 무모한 시간인데 이를 어찌하랴 싶다. 아무런 favor도 없다. 아무런 기대도 없지만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다소 답답할 나름이다.

새로 터를 잡은 제주 연동의 원룸. 무엇이 필요한지 있는게 없다. 매끼니를 떼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일 처음으로 제주도를 느껴 보려고 한다. 올레 7코스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남들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설렐 수도 있지만 나는 시간 보내기와 제주도 적응하기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여긴다.


낯선 방 한 구석에 앉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졸음이 먼저 내려온다.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보면 밤은 지나기 마련이다. 문을 꽉 닫고 있다. 어찌 됐든 일 년은 보낼 것이다. 그 일 년이 얼마나 의미 있고 알차려는지 혹은 또 다른 시간 낭비가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내가 제주에 정착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최소 1년은 보내려 한다.


우선 하루하루를 견뎌야 한다. 시간을 보내야 하고 무엇을 할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나마 집안일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한가롭기는 하지만 오히려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며 오롯이 24시간을 지내본 지가 오래된지라 아직은 부적응의 시간이다.


방이 낯설고 무섭기조차 하다. 날씨가 스산하니 차가워지는 게 겁도 난다. 그래도 내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아 사무실이든 뭐든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은 늘 사람을 외롭고 힘겹게 한다.


맑고 공기 좋은 하늘과 날씨 그리고 풍광을 생각하며 제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

아직은 그 여유가 내게는 없다.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의 생존이 무섭고 이번 달이 특히나 걱정될 뿐이다.

초조한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는 제주의 하루하루는 매일 저물어 가지만 그것 마저도 두려움이 쌓이는 시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3가지의 가능성.


사람들, 신화, 사업. 그리고 과연 제주의 콘텐츠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려는지.


어제는 술집 주인이 나를 앉혀놓고 농을 하는 시간을 한 시간 보냈다. 반갑다고 인사하는 모습이지만 하도 심하게 들이대니 불쾌하기까지 하다. 역시 만만한가. 아직 기를 피지 못하겠다. 내가 쌓아야 할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의 예전 모습을 되찾는 일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향연'과 신비의 바다 위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