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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21. 2017

청보리밭 생생한 17코스 다시 걷기

2015년 4월 11일

날 맑고 바람 좋은 4월의 어느 주말 보리밭이 펼쳐진 외도의 바닷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광령리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겨울의 스산함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보리밭이 주는 느낌은 젊음이구나 하는 마음을 전해주려 한다. 바다가 뿜어내는 싱그러움과 함께.

애월 어딘가에 새롭게 문을 연 리조트에서 대학교 선후배 동기들 몇 명과 전날의 저녁을 마치고 아침을 맞았다. 제주에 터를 잡은 나로서도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유쾌하면서도 흔치 않은 경험이기도 하다.

보리밭이 주는 느낌은 젊음이구나 하는 마음을 전해주려 한다. 바다가 뿜어내는 싱그러움과 함께

가이드를 하기로 한 동기가 선택한 곳이 17코스. 지난해 늦가을 스산한 날씨의 주말 오후가 아쉬워 2시경부터 걷기 시작했던 코스라 아주 썩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코스다. 더구나 용두암까지 도착했을 때는 밤 8시가 넘어 깜깜한 상태에서 허기진 몸을 이끌고 숙소에 찾아들었던 기억이 있어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광령초등학교에서 시작한 발걸음이 무수천을 내리 걸으며 바닷가로 향했다. 이미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는 길들이어서인지 사심 없이 걸어야만 했다.  

  

가는 도중 곳곳에서 유채꽃을 만나더니 이윽고 청보리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다. 어릴 적 시인들이나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만 나오는 청보리밭의 그 싱그러움을 설명하던 문구들이 조금씩 기억나기는 해도 그 푸르름의 느낌을 몸으로 이해해본 적이 없다.


아! 보리밭의 느낌이란 이런 것이구나. 화려함으로 치면 당연히 유채꽃이 더 활발하고 이쁘겠지만 꽃의 색깔과 푸르름이 주는 청춘의 상징과는 사뭇 다르다.


젊음이란 좋은 것이구나. 순간 젊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늙었는가. 아니면 늙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나 내가 마음이 늙어 세상을 늙게 보는 게 아닐까.


푸르름은 5월이 되거나 한여름이 되면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쿵쾅인다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알작지에 앉아 자갈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을 또 다른 푸르름과 대면했다. 초록의 푸르름과 파랑의 푸르름은 그 색깔을 표현하는데 한두 가지로 결코 설명할 수가 없다.


오늘 그 푸르름의 상큼한 모습을 사무치도록 몸으로 보았다. 좋은 날씨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오고 살랑이는 보리의 움직임이 봄바람에 일렁이는 젊은 처자의 마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리라.



알작지를 지나 이호태우로 가는 길목에 있는 보리밭길이 왜 이리 이쁘게 묘사가 되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 보리밭길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계절에 걷고 있었으니 무슨 감흥이 남아 있었으리오.

바람도 적당히 불어오고 살랑이는 보리의 움직임이 봄바람에 일렁이는 젊은 처자의 마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리라

이호태우해변의 유인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재촉하며 도두봉을 향했다.

도두봉은 제주바다와 공항 그리고 한라산을 볼 수 있어 참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그  전망대에 오늘은 날씨가 한몫을 해주고 있다.

종착지인 용두암에 내려 형식적인 사진 한 장을 찍고 친구와 해안가에서 커피를 마시러 갔다. 바다고 보이는 좋은 장소에서 마시는 음료수는 주말 오후의 따스함과 정감을 전해주기에 충분했으며 나 역시 여행객의 한 일원으로 와있는 느낌으로 다시 가슴이 짠 해진다.


괜히 제주 해안에 있는데 서울에 올라가고 싶은 이 심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다가 서울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들을 공항에서 배웅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현실의 나를 되새긴다. 나는 무엇하러 이곳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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