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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9. 2017

하루 종일 버티는 장소를 찾다_3월 말의 위미 바닷가

2015년 3월 29일 남원 위미를 점찍다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없는 바닷가, 위미 해안로


토요일에 이사를 했다. 아침나절 가볍게 몇 박스의 짐을 싸고 6개월간 지냈던 방을 나섰다. 목적지는 제주시청 부근의 건물. 4층 높이의 사무실 건물 맨 꼭대기다. 혼자서 살고 있는 널찍한 공간에 비집고 들어갔다. 방이 3개나 있으니 그중 하나를 무작정 밀고 들어갔다.


저녁 무렵 2명을 더 만나 한껏 술을 마시고 들어오니 한밤중이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아침에 깼다. 새롭게 아침을 해서 먹어야 할 텐데 이거 저거 생각해보다가 무언가를 만들어 첫 식사를 하고는 방향을 잡았다. 위미에 가기로 했다.


예전부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점찍어둔 마음빛 그리미를 가서 온종일 버티다 오리라 다짐했던바 밥을 먹고 전화를 했다.

첫 식사를 하고는 방향을 잡았다. 위미에 가기로 했다

"한결 선생님, 계신가요?"

다행히 오늘 갤러리에 있단다. 무작정 친한 척을 하려는 내 의도를 받아주리라 믿고 그곳을 향했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는 오랫동안 앉아 있을 테니 쫒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바닷가에서 관광객으로 잠깐 들르는 느낌이 아닌 시간이 지나는 모습을 차분히 느끼고 싶었다. 이벤트가 아니라 그냥 앉아서 혹은 걸으며 제주의 바다 그리고 나의 시간, 다시 하늘을 느끼고 싶었다.


상당히 낯설다. 묵을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곳 사람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나 혼자서 친하기로 하고, 익숙하기로 하고 와있는 곳이다.


한결 선생은 나를 반겨준다. 고맙다. 나를 대접하려 하지 마시고 자신의 일을 하자고 서로 다짐하고는 각자의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나는 멍한 하늘과 바다를 보다가 그냥 컴퓨터로 글을 긁적이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가끔은 나무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려보고 싶었다.

어떻게 그리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풍경을 손쉬운 카메라가 아니라 연필로 종이 위에 기록해보고 싶었다.

나를 대접하려 하지 마시고 자신의 일을 하자고 서로 다짐하고는 각자의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손쉬운 기계적 기록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진작가들은 엄청 화낼 테지만 대부분 진정성이 그다지 많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사진의 기록보다는 인간의 힘으로 가공된 그 과정과 결과물을 봤을 때 더 감동이 찾아오지 않을까...


스마트폰으로 찍어 본 사진이 그다지 멋은 없지만 오늘의 최고 발견은 무엇보다 갤러리 뒤쪽의 넓은 공간이다. 내일 학교 학생들이 텐트를 치며 3주간 캠프를 진행하는 곳이다. 아들놈이 있는 성미산도 그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넓디넓은 캠프장과 그곳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을까... 산책을 나섰다. 이 해안을 벗어나 코너를 돌기만 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눈에 보인다. 건축학개론의 서연이네 집이 카페로 변신한 것이다. 영화 촬영 후 이 집을 매입해서 카페로 꾸몄다. 대박이 나서 차들이 줄을 잇는다. 좋은 집을 가지고 있지만 동네와의 이질감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보면 볼수록 상업성이 한적한 제주를 잡아먹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보면 볼수록 상업성이 한적한 제주를 잡아먹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도 무엇이 좋은지 연신 이곳을 찾는 렌터카들이 줄을 잇는다. 하물며 오늘은 관광버스마저 보인다. 허걱...

옆집의 할아버지가 멍하니 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젊은 남녀들과 방문객들을 구경하고 앉아있다. 저 할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저 할아버지를 구경하고 할아버지는 관광객을 구경하는 중이다.

다시 갤러리 뒤편이 궁금했다. 지난번에도 궁금했지만 무작정 갤러리 뒤편에 올랐다. 내일 학교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3주간 이동수업 중이다. 이들을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 텐트 치는 자리로는 더없이 좋아 보인다. 더구나 마당 여기저기에 피어난 유채꽃이 봄 제주를 알리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다. 올여름에 여기에 텐트를 치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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