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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08. 2018

제주 이주민과 4.3

4.3 70주년 추념식을 다녀오면서

4.3 70주년 당일날. 추념식 행사가 어느 때보다 크게 치러질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만큼 추념식장에 참석하는 일은 어쩌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다. 4.3 유족도 아닌 내가 유족들의 아픔을 보면서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는 이주 후 4년째 방문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적응이 쉽지 않다. 내심 추념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그대로 출근할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 들었지만 그보다는 추념식장에 꼭 들러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강한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하는 현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기대감 때문에라도 포기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추념식장을  향하는 동안 청명하기만 하던 하늘이 운무로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구간이 생겨버렸다. 오늘 행사장 날씨가 이러면 곤란한데 하는 생각이 들며 2015년 추념식 날씨가 생각났다. 그날은 행사장에서 1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황당한 날씨였었고 그로 인한 때문인지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은 쉽지 않은 날이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다행히 그 구간을 지나 함덕에 이르자 날씨가 언제 안개가 끼였냐는 듯 푸르른 하늘을 드러냈다. 신기한 날씨다 싶다.


4.3 평화공원에 이르는 구간까지 청명한 날씨 덕인지 추념의 기분보다는 나들이 기분이 먼저 든다. 그만큼 따스한 봄과 자연의 싱그러움이 함께 어우러지기 좋은 날씨인 셈이다. 봄꽃이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니 당사자들은 더 슬프지 않았을까. 그러나 생각은 날씨에 머무르기에 답답한 구석이 느껴진다. 생각이 한 곳에 꽂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하는 현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기대감 때문에라도 포기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당사자의 상태를 감정 이입하려 해도 가능하지 않은 일. 그 슬픔은 그대로 덤덤하게 받기로 하고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화두처럼 생각이 가라앉질 않는다. 이주민들에게 4.3은 어떤 의미일까. 최소한 어떤 느낌일까. 논리적으로 따지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와 관련된 일들보다 훨씬 더 한결 매우 많이 그보다 더 심하게 어처구니없이 기도 안찬 경천동지 할 비인간적이자 잔혹함을 보이는 사건인데 이주민의 입장에서는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논리적인 것과 정서상의 느낌은 여전히 일치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주민들에게 4.3이란? 이주민 전체를 대표 할리도 만무하고 공정한 평균치의 감성을 가졌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이주민인 나의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이주민의 딜레마를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사회적 사건을 시민사회나 사회운동의 접근방식으로 이해하는 분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일반적인 이주민들에게 제주에서 마주 대하기 가장 힘든 사건은 누가 뭐래도 4.3이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멋진 관광 코스마다 부닥치는 4.3의 흔적은 건너뛰면 뛸수록 생활의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몇 년간 생활하면서 논리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키워드는 4.3, 출륙금지령, 강정, 제2공항 등이었다. 다른 사안들이야 그렇다 쳐도 4.3은 다른 키워드와 달리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전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의 입장에서는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논리적인 것과 정서상의 느낌은 여전히 일치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하나 쉽지 않지만 사실 '4.3을 대한민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상당히 방향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3에 대한 평가가 아직도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 성격을 규정짓는 시도와 토론은 지속되겠지만 그것이 결정되기 전까지 4.3을 마치 딴 사회의 사건처럼 쳐다보는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추념식장에 시간이 빠듯하게 도착했지만 자동차를 어느 쯤에서 세워야 할지는 이미 경험치로 숙지된 상태이다. 차라리 어느 정도 걷는다는 생각으로 차를 세우면 된다. 예년과 달리 사람들이 더 많다. 아마도 정권의 변화와 4.3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일일 터이다.

일반적인 이주민들에게 제주에서 마주 대하기 가장 힘든 사건은 누가 뭐래도 4.3이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멋진 관광 코스마다 부닥치는 4.3의 흔적은 건너뛰면 뛸수록 생활의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소위 VIP가 참석하는 자리인 만큼 당연히 보안검색대가 마련됐다. 음... 그럼에도 보안 검색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 추념식장의 주변 통제도 생각만큼 강압적이거나 까탈스럽지 않다. 원래 VIP가 참석하면 이 정도 가지고는 턱도 없이 강화할 텐데 상당히 유연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VIP가 참석하는 행사에 관여하면서 경호실로부터 수많은 질문과 제재를 경험했던 터라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차치하고 행사의 시작에 앞서 현기영 선생의 추도사 낭독은 전국적으로 4.3의 물꼬를 튼 '순이삼촌'이 있기에 더 의미가 있게 느껴진다. 현기영 선생의 추도사는 순간순간 마음의 구석구석에 닿는다. 암튼 행사의 면면을 설명할 일은 아니므로 더 설명할 일이 없다. 다만 참석자들이 문대통령의 추념사를 읽는 내내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단상과 단상을 비추는 대형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사실 대통령의 추념사를 이토록 집중하면서 들어본 적이 있기나 했던가. 그냥 의례적인 추념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몇몇 문구에 들어서는 박수를 치며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진짜 많은 사람들이 이 정권의 4.3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어찌 대응하는지를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참석자들이 문대통령의 추념사를 읽는 내내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단상과 단상을 비추는 대형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사실 대통령의 추념사를 이토록 집중하면서 들어본 적이 있기나 했던가

4.3은 이주민들에게 개념적이자 논리적인 아픔이다. 감정이입을 통해 인간적인 아픔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아픔을 정면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인가 수많은 전시와 사실 기록을 바라보는 느낌은 아프기에 외면의 심정에 가깝다. 7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도 있지만 그 사실을 직면하게 될 때 겪게 될 트라우마에 올곧게 자신을 내던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는 4.16 세월호 침몰의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 아픔을 연상시킨다. 사건 간에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상황을 뻔히 보고 알면서도 이를 어쩌지 못했던 그 아픔을 직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4.3은 여전히 추상적인 상황으로 남았으면 하는 얄팍한 기대마저 갖게 된다. 그 현실에서 도망치고픈 심정이 늘 있다는 것을 세월호의 아픔을 대하면서 나는 내 자신에게 보았다. 그 아픔을 혼자서 감당하기에 참 힘들었던 상황과 4.3의 상황은 유사하다.

4.3은 이주민들에게 개념적이자 논리적인 아픔이다. 감정이입을 통해 인간적인 아픔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아픔을 정면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3만 명이라 1/10이라는 숫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나하나 생명을 살리고 가족을 유지하려는 원초적 지속성을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폭력으로 꺾어가는 인간의 잔혹함과 이를 당연시 여겼던 그 당시 당사자들의 심적 상태를 생각해본다. 왜 그들은 그렇게 분노로 같은 사람들에게 잔인했을까. 이데올로기가 그토록 이성을 뒤집어엎을 만큼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데...


매년 느끼는 일이지만 나는 추념식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추념식이야 추념식일 뿐. 각명비와 위령탑 그리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묘비와 이름앞에 앉아 술을 따르고 묘비를 쓰다듬고 이름을 부르는 나이 든 분들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감정 이입해보려고 할 뿐이다.


나도 모르게 찔끔찔끔 흐르는 눈물을 왜 흘리는지도 모르게 닦아내며 4.3과 함께  내가 제주에 빚진 느낌을 갖고 살기로 했다. 그 빚을 어찌 갚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억하면서 역사로 인정하고 살 수 있는 길에 동참하면서 말이다.


아직까지 4.3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4.3이 제노사이드라고 생각하지만 일부는 4.3항쟁이나 민주항쟁으로 재개념 지으려는 시도도 나온다. 그 무엇이 되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데올로기로 덧붙여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떨어진 낙엽이 켜켜이 쌓여 나무와 숲의 자양분으로 활용되듯 4.3이 제주사회의 역사적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각명비와 위령탑 그리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묘비와 이름앞에 앉아 술을 따르고 묘비를 쓰다듬고 이름을 부르는 나이 든 분들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감정 이입해보려고 할 뿐이다

진실의 완전한 규명과 해결을 이번 정부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것을 기대하며 과도한 요구와 행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또다시 많은 기대 속에 요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감성적 접근을 넘어 역사의 논리와 미군의 책임, 사건의 정명 등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동의하지 않는다. 후일 어떤 생각을 갖게되든 일단은 인간적인 감정선에서 이를 대할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주민들이 이러지 않을까 싶다.

떨어진 낙엽이 켜켜이 쌓여 나무와 숲의 자양분으로 활용되듯 4.3이 제주사회의 역사적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제주 사람들에게 4.3이 억울하고 당연한 실체 규명의 의무와 권리가 있지만 이주민들에게는 그 접근법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이주민들이 약해서라거나 무지해서라기 보다는 공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감이 일어나면 논리적 설득보다 함께 일을 도모하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수월한 과정임을  살아오면서 배워오지 않았던가. 


역사의 흔적은 왜 이리 아픈지 모르겠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더 슬프다. 며칠은 몸이 아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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