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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01. 2018

평대 해안도로

살아심 살아진다는 마을 평대리의 바닷가

평대 해안도로는 핫한 곳이다. 제주도 해안 도로치고 핫하지 않은 곳이 없는 상황이지만 평대 지역 특히 해안도로에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끝없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월정리가 서울의 방배동 카페거리나 방이동 혹은 신천연 주변처럼 변해갔다면 평대는 그 변화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월정리 해안의 스필오버의 느낌으로 관광객들이 늘어나나 싶었는데 어느덧 유명한 장소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바닷가에 빨간 소파를 늘어놓고 명소가 된 카페에서부터 새우튀김을 파는 푸드트럭으로 시작해 명실공히 유명 음식점으로 자리한 쉬림프박스, 자그마한 분식집에 끊임없이 줄을 서서 주변 언저리에서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은 떡볶이와 튀김을 먹는 평대스넥 등이 꼭들러봐야 할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뿐이랴 돌솥밥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명진전복에는 도저히 밥 먹을 엄두를 못 낼 만큼 주차장에 쌓여만 가는 '허'자 넘버를 지닌 렌터카들을 쳐다보며 해안도로를 지나게 된다. 

평대 지역 특히 해안도로에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끝없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이밖에 세터데이 아일랜드나 래이식당 등 특색 있는 식당이 들어서면서 평대는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더 이상 숨겨진 장소가 아니다. 노출되면서 세화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당연한 제주 동부의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평대를 잘 모르고 지나는 여행객들이 차를 몰고 지나다 보면 의아한 광경들 한두 가지가 보인다. 월정리 해안이야 당연히 카페촌이 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번화한 건물들과 고운 모래해안이 눈에 띠지만 그 너머 행원이나 한동리에 이르게 되면 인상적인 해안이나 바다를 보기에는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남아있다. 그래서 목적지를 세화 바닷가로 향하게 된다. 특히나 평대는 더 그렇다. 바닷가 만으로만 본다면야 지역의 항구나 해안이 두드러지지 않아 그냥 지나면 아무도 모를 것이고 실제로 바닷가에 차를 세워놓아도 이곳이 어디쯤인지 혹은 무엇이라 불리는 곳인지 확연히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런 곳에 줄을 지어 커피숍과 식당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으니 사람들의 정보력이란 나이에 반비례하는 느낌이다.


이미 이방인의 성지가 되어버린 평대 마을이 되어버렸고 현지인들도 한 두 집씩 기존의 바닷가 자산을 배경으로 식당을 내거나 카페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다른 돈벌이보다 수익을 내며 안정적인 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고 하루가 다르게 땅값도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월정리가 평당 1000만 원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는 들린 지 몇 해 되었고 2000만 원이 넘었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그 때문인가 평대 역시 땅값 오르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어디 블루마블 하는 것도 아닌데 땅값이 오르는 속도는 어느 곳보다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래 살지는 않았어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인지라 두서없이 두런거리는 장소이기도 하기에 최근에 일어난 평대의 변화는 눈길을 사로잡기에 어려움이 없다.


아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밭담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창고가 개조되고 바닷가가 새롭게 단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별히 기대를 가져볼 일도 아니고 통상 마을사업을 하다 보면 그 결과에 놀람보다는 실망의 경우가 더 크기에 색다르다고 생각지 않았다.


어느덧 관계자의 강한 주장에 힘입어 바닷가의 변화를 둘러보고자 해안가를 서성인다. 최근 들어 거주지를 바닷가에 조금 가까운 일주도로 바로 옆으로 옮기기도 했거니와 핫한 동네의 언저리에 살기에 돌아다닐 기회가 비교적 잦은 편이라 무심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아주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다가 바뀌었다. 거칠게 배열되어 있거나 시멘트로 대충 단장되었던 지역이 새롭게 판석을 깔고 조형물을 올리고 지역의 이름을 세워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도깨동산, 용왕당, 도댓불 등 대충 알 수 있는 지명과 배드린개, 넙덕빌레, 장떡코 등 얼른 들어서는 도대체 알 수 없는 이름과 대충 짐작은 가는 이름까지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지고 표석도 늘었다. 비록 디자인을 가미한다고는 했지만 그 투박함을 본질적으로 벗어버릴 수 없다는 나름의 평가를 내린다. 그래도 그 정도로 애쓴 것이 어디냐... 공공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도시나 농촌지역의 터무니없는 디자인 수준을 보아왔던 터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래도 애를 썼다는 평가 이상을 내리지는 않기로 했다. 아무리 노력을 했어도 찬사를 보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할까.

공공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도시나 농촌지역의 터무니없는 디자인 수준을 보아왔던 터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래도 애를 썼다는 평가 이상을 내리지는 않기로 했다

해안가의 변화를 찬찬히 둘러보는 중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통상 마을 사업의 결과물을 보면 지역을 설명하기에 바쁜데 이곳에는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설명할 내용이 없지는 않을 텐데 불친절함의 소산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음인지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깨동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팻말이 붙어있다면 그 팻말에는 왜 이곳이 도깨동산이라고 불리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지역의 이야기는 어떠하다는 내용을 담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 설명 대신에 생뚱맞은 시비에 시 한 수 적혀있다. 분명히 낯선 구조다. 시인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고... 


시비를 세운이의 의도는 분명하다. 도깨동산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거나 그 설명 대신 시가 도깨동산의 의미를 더 잘 표현하고 전달할 것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시비의 내용을 둘러본다.


도깨동산


파도에 밀려가서

살아오길 여러날이였네

힘쎈 부대각은 

깊은 바당을 떠도네

도체비가 춤을 준다

마음은 콩닥콩닥

살암시민 살아 진다고

오늘도 바당에 몸을 던져본다


이 시의 내용대로라면 이곳은 도깨비 동산이다. 도깨비가 나온다는 곳이다. 배 타고 나간 어부가 난파가 됐든 침몰이 됐든 조난을 당하다가 어찌어찌 살아오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부대각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곳에서 난 힘이 센 장사였던 모양이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 전설 속의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죽임을 당했을 테니 그 원혼과 희망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이곳을 도깨비 동산으로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은 계속해서 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살다 보면 살게 된다는 제주의 여느 곳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담겼다. 삶의 애환과 원망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생은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C'est La Vie.(그것이 인생이다)  어떤 인생의 어려움이나 사건이 있어도 살아가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져 해녀의 물질을 하는 곳이리라. 이렇게 따져보면 이곳이 평대 주민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조난당했던 어부가 살아 돌아온 곳, 지역의 힘센 장수가 봉기 아닌 봉기로 관에 잡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곳, 여러 가지 인생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해녀들의 물질 장소인 점 등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그 해석이야 내 맘이지만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임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관광객들에게 무언가를 꼭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설명충'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사람마다 새롭게 이곳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시도다. 약간은 머무를 시간을 준다. 시간적으로도 그렇지만 마음속에서도 그곳에 대해 생각을 하게하는 '포즈'를 전달해 주는 셈이다. 


또 다른 시비를 찾았다. 이번에는 도깨동산 뒤편에 있는 어멍불턱이다. 불턱이야 해녀들이 잠수 후에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불을 지피고 옷을 갈아입고 하던 곳이다. 그곳의 표현은 어떠한지 보고프다.


어멍불턱


어머~엉

애기 울엄서-

절치는 바당보다

더 기막힌 설은 애기

혼적오라

큰 낭불에 손 담그고

젖가슴도 데우고

배분 애기는 잠이드는데 

어멍 얼굴은 잘도 탐서라


나름 이 시를 해석해보기 바란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해녀 이야기를 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그 해녀의 삶을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겉핥기에 불과한지를 한 순간에 느끼게 된다. 해녀의 고달픈 삶과 항일항쟁을 이야기하고 바다 위에서 맘껏 잠수하는 모습을 표현하지만 그 속내에 대한 이야기는 전달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관광객들에게 무언가를 꼭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설명충'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사람마다 새롭게 이곳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시도다

참고로 '절치는' 이란 파도치는 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았고 '낭불'은 나무 불이라고 해석하면 될 일이고 '설은'은 서러운이란 뜻일 테고 '혼적오라'는 어서 오라는 반가운 인사말에 쓰는 제주의 사투리임이 분명하다. '혼적 옵서예'라는 말을 많이 쓰니 알 수 있는 표현이다. 해석이 크게 어렵지만은 않을 듯하다.


사실 이 시의 반전은 맨 마지막에 있는 구절이라 생각된다.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아이에게 따스한 젖을 먹이기 위해 불 가까이에 손도 빨리 따스하게 하고 가슴도 녹이려는 의도가 읽힌다. 엄마의 얼굴은 이로 인해 너무 불이 가까운 관계로 같이 타는 것으로 해석하면 쉬운 일이다. 그런데 그 내용만은 아닌 듯싶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니 아무리 여자들 사이지만 젖가슴을 드러내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나름 맞는 말이다 싶고 반전이라고 생각이 든다. 여자로서의 해녀의 모습이 드러나는 구절이라 생각하니 이 시구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생긴다.

여자로서의 해녀의 모습이 드러나는 구절이라 생각하니 이 시구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생긴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다양한 지명을 새긴 글귀가 보이는데 역시 설명이 없다. 설명이 필요하면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시간과 기억을 좀 더 오래 간직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이렇게 장소마다의 기억을 되새기며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를 걷는다. 도중에  시비 2개를 더 발견했다. 도댓불과 용왕당이다. 앞의 시비에 비해 내용의 단순함이 좀 더 직접적이라 더 이상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도댓불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대는 한자로는 등대라고 쓴다. 이를 일본어로 읽으면 도대가 되는데 아마도 이를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버릇하면서 도댓불이라는 용어로 굳어진 모양이다. 등댓불이라고 해서 이상할 리 없는데 말이다.

도댓불


왕석으로 성을 만든

배들인 개엔

멀리나간 밤배가 

어서 돌아오기를

아들이 눈에 밟혀

할머니는 장작을 이고 

오랫도록 불을 지폈다

아슬하게 보이던 

불빛은 

아득한 사랑이네


이번에 찾은 시비는 용왕당이다. 바닷가에 당이 있으니 해녀들이 제를 지내는 곳임이 분명한데 시비를 보니 이름이 용왕당이다. 용왕님에게 제를 지내는 곳이 분명할 터이다. 새롭게 만들고 제단을 마련했다. 제단이 너무 단순해서 마음에 든다. 굳이 복잡할 일이 없다. 바다를 향해 제물을 올려놓고 빌 수 있는 곳만 있으면 될 일이다.


용왕당


비아니다

늘 오는 바당에

용왕님만 믿고 옵니다

바램이 있다면

우리식구 어디가서

다치지 말고

몸 축나지 않게

바당물질 오래해서

나 먹을건 내 힘으로

먹게시리

살펴줍서 살펴줍서


다양한 곳을 찾아 걷다 보니 새롭게 표지석이 보인다. 지금까지 다닌 모든 곳이 벵듸고운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길이다. 벵듸라면 넓은 평야 같은 곳을 이르니 평야지역의 이쁜 길이라는 뜻일 테고 평대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아직은 낯설고 새로운 장소이자 이름이지만 다양한 곳을 둘러보는 계기를 삼을 만하다. 이곳을 찬찬히 둘러보는 재미도 있을 터이다. 굳이 새롭게 늘어나는 카페와 식당만의 장소가 아니라 마을의 곳곳이 살아서 숨 쉬는 장소로 찾아볼 곳이다. 우선 바닷가에 나름 이정표와 머물 곳이 생겨서 다행이다. 그냥 스쳐지나 월정에서 세화로 이어지는 지나는 길이 아니게 된 것을 축하할 일이다. 핫한 지역이 된 만큼 핫한 무엇이 있어야 할 텐데 그 시작의 돌이 놓인 셈이다. 눈여겨볼 만한 장소가 생겨 조금은 기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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