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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08. 2018

제주의 봄을 탐하다

색을 통해보는 봄의 그리움/ 제주색의 삼분지계

제주의 봄이 불현듯 왔다가 짧은 시간에 사라지고 있다. 이 글을 긁적이는 당일 4월의 눈이 내리는 경험을 한다. 3월에 내리는 눈이야 어쩌다가 맞이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지만 4월에 눈보라와 눈발을 맞이하리라고는 차마 꿈에서 조차 생각하지도 못한 날. 그 찬란하고도 왕성한 제주의 봄은 이상기온이 끝없이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제 갈길을 간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또다시 여름 같은 날씨를 뿜어내리라.

그 찬란하고도 왕성한 제주의 봄은 이상기온이 끝없이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제 갈길을 간다

벚꽃의 느낌을 채 가슴에 담기도 전에 어렴풋이 왔는가 싶은데 깜빡이는 사이 저만치 가버렸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음 주가 되리라는 모든 이들의 예상속에 지난주에 다녀온 제주의 봄맞이는 이제 다시 그 색을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많은 곳이 유채꽃 등의 봄꽃 축제를 한창 여는 사이 꽃샘추위는 꽃잎 대신에 눈꽃을 보여줬다. 벚꽃은 눈꽃과 지독히도 닮았다.

벚나무 밑에서 보는 하늘은 빛이 투과되며 엷은 분홍으로 물들이는 환한 미소를 만든다. 그것이 벚꽃의 힘이자 처절함의 순간이기도 하다. 집 앞의 버스정류장 앞에 핀 벚꽃이 언제 만개했는지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제주도내 곳곳은 벚꽃 축제로 가득하다.  전농로와 종합경기장 일원, 장전리의 벚꽃은 채 피기도 전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웬걸.... 이제 피려나 싶으면 비바람에 꽃잎을 날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파르라니 새싹이 핑크빛 공간을 대신한다.


그렇다면 대신 유채다. 벚꽃과  유채꽃이 과연 잘 어울리는 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들지만 그래도 한 군데 심어져 함께 공간을 나누는 경험은 이시절 이곳이 아니고서는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없기에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제 피려나 싶으면 비바람에 꽃잎을 날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파르라니 새싹이 핑크빛 공간을 대신한다

유채꽃 축제가 시작되기 전주 주말 이른 아침.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가시리 녹산로를 찾는다. 아침이라 약간은 한적하지만 그래도 녹산로의 위용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지라 사람들이 벌써 많다. 아직까지 벚꽃이 제 힘을 발휘할 만큼 시간이 무르익지 않았다.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무를 심은지 오래되지 않은 탓인가 풍성한 느낌보다는 유채꽃의 보조역할을 하는 느낌을 준다. 녹산로는 아무래도 유채꽃이 더 무게감이 크다. 그래서 축제 이름도 유채꽃 축제이기도 하고 유채꽃밭이 1만 평 정도 펼쳐져있는 장관도 볼 수 있는 일이다.

녹산로의 벚꽃과 유채꽃 길은 약 5km에 달하기에 차로 달려도 한참을 가야 한다. 유채꽃 플라자를 지나 가시리 목장의 행사장에서 유채꽃밭의 기운을 만끽하고 나오려니 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북적대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꽃놀이도 의미가 있지만 너무 정신이 없기에 제주대 앞의 벚꽃도, 전농로의 벚꽃도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잠시 눈을 호강시킨 후 길거리를 벗어난다.


제주의 봄색은 사실 벚꽃과 유채꽃 그리고 동백꽃의 '천하삼분지계'라 할 수 있다. 4.3을 연상시키는 동백꽃의 붉은색과 핑크색 그리고 노란색의 삼분지계는 너무나 강렬하기에 하루를 날 잡아 다 볼 수 있는 거리를 찾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여행이다. 

제주의 봄색은 사실 벚꽃과 유채꽃 그리고 동백꽃의 '천하삼분지계'라 할 수 있다

녹산로를 빠져나가기 전에 그래도 길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벚꽃과 유채꽃의 조화를 즐기는 사이 옆으로 난 뒤편 숲 속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곳에 동백들이 피어있다.  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유독 앙상한 가지들에 푸르르다 못해 기름기가 반질거려야 할 나뭇잎 대신 누런색의 잎새들이 앙상한 가지들 사이에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사이를 처절하게 힘겨운 듯 동백꽃이 매달려 있다. 마치 힘겹게 숨이 넘어가는 어미의 젖을 빠는 아이처럼 나무는 이미 에너지를 다해가는데 마지막 안간힘을 쓰듯 제 모든 생의 마지막 찬란함을 위해 온갖 꽃을 피우고 있다. 아름답다 못해 슬프고 처연하다.

그래서인가 다른 나무들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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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를 다해가는데 마지막 안간힘을 쓰듯 제 모든 생의 마지막 찬란함을 위해 온갖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있다


동백을 보는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 나무와 꽃과 누렇게 변해가는 잎새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주변의 벚꽃과 멀리 화려하게 배경을 덮은 유채꽃을 비교하며 봄의 색을 만끽한다.


나무를 맴돌다 이 나무가 그토록 처절한 이유를 알게됐다. 얼마 전 거센 비바람에 뿌리가 뽑혀버린 것이다. 한쪽의 뿌리가 땅에서 떨어져 나오니 더 이상 양분을 공급할 수 없게 된 나무는 자신의 최후를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잎새를 가지에 매달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영양분을 모두 모아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무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라 나무에 살며시 손을 대고는 인사를 전한다. 

'그동안 많은 수고를 해 주었구나!'

녹산로를 벗어나 동백마을을 찾아 나선다. 남원으로 향하기 전 제주도에 유명한 동백꽃 군락지중 한 곳인 동백마을을 찾는다. 이 곳은 간간히 길거리에 떨어진 동백꽃의 모습을 찍고 웨딩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차를 몰고 지나다 잠시 세우고 사색할 수 있는 서성임의 장소이기에 개인적으로 다른 곳의 동백군락지 대신에 찾는 곳이다. 


꽃이 떨어지는 동백은 그 모양이 그리 이쁘지 않지만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그지없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죽음 이후의 인간이나 생명이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는 없는 것. 존엄함을 간직하던 생명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4.3을 상징하는 문구이기도 한 강요배화백의 '동백꽃 지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꽃이 떨어지는 동백은 그 모양이 그리 이쁘지 않지만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그지없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괜히 이유 없이 서성이다 오전 시간을 보내며 붉은 동백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길을 나선다. 

다음은 벚꽃 구경이다. 왜 그 화려한 벚꽃의 거리들을 놔두고 이 먼 남원의 태위로까지 찾는가 하고 물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도내 벚꽃 거리에서 서귀포시의 남원을 가장 좋아한다. 벚꽃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소박한 거리와 잔잔한 느낌. 시간을 멈추어놓은 듯한 아늑한 분위기에 벚꽃이 거리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거리를 압도한다는 느낌보다는 거리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주변에 오래된 집들이 모여서 서귀포만의 여유로운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나를 찾게 만드는 이유다. 

벚꽃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소박한 거리와 잔잔한 느낌. 시간을 멈추어놓은 듯한 아늑한 분위기에 벚꽃이 거리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서서히 걷다가 길을 틀어 마을 안쪽을 서성인다. 벚꽃을 구경하는 것만큼이나 마을 안쪽의 올레길 들과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듯한 여유로움을 알 수 있는 거리를 걷는다. 이곳 사람들이야 그 여유로움을 어찌 느낄지 알 수 없지만 한적함은 화려함으로 감쌀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 각자의 느낌과 매력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봄색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이가 들어서 인가 봄의 화려함에 설레다가도 막상 찾게 되는 거리는 소담스러운 길에서 더 안락함을 느끼게 된다. 늙었나. 인정해버리기는 싫지만 조금은 나이를 먹은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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