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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23. 2016

우도 단상_서서히 가라앉는 유람선

우도의 현재를 보며 미래를 우려한다

우도는 미지의 섬이었다.  '섬 속의 섬' 우도는 육지사람들에게는 결코 쉽게 갈 수 없는 머나먼 곳이었다.  어찌어찌하여서 제주도에 오고 또 성산 일출봉까지 와서 아쉬움을 달래며 못가보고 그리움으로 바라보는 섬이었다.


이제는 반나절 코스의 관광지가 되었다. 작년에 200만 명이 다녀갔다. 150만을 넘으리라는 당초의 기대를 훌쩍 넘기고는 방문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작년 가을에 이어 올해 봄 다시 우도를 찾았다. 불행히 작년 방문에는 안타까움과 좋았던 추억이 반반 섞였다면 이번 방문은 피천득 님의 '인연'을 느끼는 듯했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좋은 기억보다는 오지 않아야 했다는 결심만 확실해졌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날 좋은 날 다시 한번 방문할 것이다. 3번째까지 방문해보고 '인연'을 되새겨야 한다면 포기할 것이다. 

헐래 벌떡 잡아탄 도항선에는 나보다 먼저 갈매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새우깡에 대한 집착으로 배의 동선을 따라 성산항과 우도를 오가고 있는 녀석들이다.


갈매기 새끼들이 진짜 새우를 잡아먹고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엄마, 새우에서 새우깡 맛이 나."


저 갈매기들이 새우맛을 알기는 알까?


이전 방문과 달리 이번 도항선은 천진항이 아닌 하우목동항으로 향했다. 동선이 헷갈렸다. 우도봉부터 가려했는데 동선에 차질이 생겼다.


살아있는 산호가 만들어 놓은 홍조단괴 해변이 보인다.

옆에서 아내가 배가 고프다고 연신 장난처럼 식사하고 가자고 재촉한다. 괜히 맛집 찾아가면서 시간을 보내느니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식집이다. 칼국수를 판다고 하니 일단 문을 열었다.


관광지의 식당처럼 이곳 역시 문을 여는 순간부터 불편하다. 비어있는 식당도 그렇지만 주방에 있는 분이나 서빙하는 아가씨나 아무리 봐도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식당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메뉴를 살폈다. 세상에 칼국수가 1인분에 12000원이다. 순간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아무리 관광지 물가라고 하지만 국수가 한 그릇에 12000원이라니. 순간 망설이다 그냥 주저앉기로 했다. 다시 나가서 식당을 찾아서 밥을 먹는 것이 번거롭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났다. 시간도 많지 않은 탓이다.


"칼국수 2인분 주세요."


물컵과 밑반찬이 나온다. 김치 서너 쪽과 물기 뺀 노란 무 몇 조각이 덜렁 접시에 담겨 테이블 위에 놓인다. 

아내의 얼굴 표정이 어둡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반찬이 이게 뭐니?"


우리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몰래 메시지를 이용해 이집 반찬의 어이없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본 음식이 나오고 잔뜩 부피감만 키워놓은 홍합과 조개로 해물의 느낌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칼국수는 정체불명의 맛이다. 국수도 덜 익었다. 돈과 시간과 기분이 아깝다.


어떻게 식사를 했는지도 모른 채 식당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물류비가 많이 들어도 손님에게 이런 가격에 이런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하루가 전부 비슷했다. 길거리를 끊임없이 다니는 전기차와 자전거 그리고 자동차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다음 배에서 방문객이 한가득 선착장에 내린다. 다시 관광버스와 자동차 자전거 전기차 등을 타고 섬의 곳곳으로 흩어진다.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결국 시간의 촉박함으로 버스를 타고 코스를 돌기로 했다. 애초에 걷기로 한 계획이 어긋난다. 시간도 없거니와 걸어서 가기에는 교통이 너무 산만하고 어지럽다. 온 섬이 원칙도 없이 온 갖가지 교통편이 뒤엉켜있는 유원지다. 주변의 경치와 이질감을 줄 뿐이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검멀레 앞의 주차장에 내렸다. 여기는 더 아사리판이다. 버스와 렌터카, 전기차와 관광객이 뒤 엉켜있다. 카페와 식당 등 다양한 바가지 상혼만 가득 남았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이다. 가장 기본적인 가격이 4천 원이다. 또 어이가 없다. 


동굴에서 바라본 바다, 자연풍광은 나무랄데 없는 곳이 우도다.
우도봉을 내려오면서 보이는 마을의 풍경.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가 눈앞에 보인다.

내 마음을 아는지 하늘이 맑은 모습에서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하고 있다. 다행히 바람은 많이 불지 않는다. 우도봉과 검멀레와 천연동굴을 보고서는 제자리로 왔으나 마지막 버스가 떠나버리고 없다. 시간이 늦었다. 난감하다. 마지막 배까지는 40여분이 남았다. 걸어갈 생각을 하니 닿을 수는 있을 듯하다. 그런데 영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버스 한 대가 오더니 기사분이 창문을 연다. 당황해하는 우리와  버스 끊겼다는 매장 직원의 얘기를 듣더니 고민한다.  한참을 생각하고는 우리더러 타라고 한다. 물론 코스가 다르지만 우리가 표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태워준다.


친절한 사람이다. 그는 중간중간에 길 잃은 많은 방문객들에게 항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느라 여념이 없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까지 구사한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우도에 온 관광객들에게 친절한 그 기사분이 없었더라면 우도는 우울함만을 남겼을 것이다. 다행히 그 기사분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한 번은 더 와서 우도를 보리라.


다음에는 하루를 묶고 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천천히 여유를 느끼는 우도라면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닐 듯 싶다. 아쉬움이 남는다.


항구에 도착하니 이번에도 배가 막 떠나기 직전이다. 선착장에서의 여유로움도 없이 우리는 배를 타고 성산항으로 내달아 도망치듯 우도를 빠져나왔다.


뒤돌아서 섬을 바라본다. 유원지의 혼탁함과 무분별한 개발, 그리고 질서도 없이 오로지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혼만이 남아있다. 그들은 그 상혼과 무분별한 관광객이 이 섬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자본의 달콤함을 아는데 스스로에게 족쇄를 거는 일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섬 속의 섬 우도가 침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유람선이 떠올라 못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성산항을 향해 가는 도항선에서 내내 우도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해가 넘어가는 3월의 저녁 여운이 밋밋하게 쓸쓸한 하루다.  


많이 사람들이 우도를 찾는 것을 보면 우도가 가진 매력은 여전하다. 이를 어떻게 좀더 좋은 관광자원으로 사용하는 가는 다른 문제인 듯 싶다.


앞으로 결코 제주 방문객들에게 우도를 추천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바다너머로 보이는 지미봉.


<우도봉 등대. 그리움과 등대만큼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나에게도 괜히 등대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뭐지 이 그리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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