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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25. 2016

청양고추를 먹는 마음

매운맛으로 되뇌이고 싶은 자신의 시간들

매운맛은 집착이자 유혹과 가깝다. 그것으로 나를 돌아 보기로 했다.


제주 식당의 특징인지 다른 곳도 그런지는 잘 모른다. 반찬으로 매운 청양고추가 따라 나온다. 해장국집에 가도 고기 국숫집에 가도 매운 청양고추는 기본이다.


난 매운 음식이나 고추라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어릴 적부터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에 약했다. 결정적으로 매운 음식을 먹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날이면 몸에서 큰일이 난다. 딸꾹질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딸꾹질이 그치질 않는다.  1시간 이상 딸꾹질이 계속되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 뜨거운 국물은 경계대상 1호다. 


그럼에도 매운 고추를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나이가 들면서 무교동의 매운 낙지볶음을 먹는 나 자신이 이상하지 않게 됐다. 

불과 몇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청양고추와 함께하는 식사가 이상하지 않다.지금도 매운 음식을 먼저 찾아서 먹지는 않지만 끼니때마다 청양고추를 반찬으로 두고 먹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고통을 스스로 끊지 못한 채 반복적 습관을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이러고 있는 내가 낯설다.


매운맛은 짜고 단 맛들과 다르게 고통을 수반한다. 점막을 자극하여 맛을 느끼게 하는 특성상 맛이라기보다는 고통의 자극이라는 편이 더 가깝다.


왜 이 고통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는 것일까? 도전정신이거나 아니면 늙어서 일 수도 있다. 아님 고통을 즐기는 건가? 나는 왜 청양고추를 먹고 있을까.


점막을 자극하여 맛을 느끼게 하는 특성상 맛이라기보다는 고통의 자극이라는 편이 더 가깝다


고통은 빨리 벗어나고 픈 자극이지만 역으로 짧은 순간 수많은 기억을 되새기게 해준다. 메조키스트와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자신이 깨어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나태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일상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청양고추가 주는 매운맛인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가끔식 요가를 하면서도 나를 돌아볼 시간은 존재하고 멍한 바다를 보면서도 자신이 느껴지는 순간은 어렵지 않다.


깨어있으라 하는 것 같다. 스스로 잘 안 되는 자기 통제의 시간을 주고 싶은 모양이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엄격하거나 되짚으려 해도 안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움을 이런 저런 이유로 회피하는 경우는 너무 허다하다. 핑계가 궁색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용인된다. 합리화의 시간이 자연스럽다. 약해빠진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깨어있으라! 자기 자신을 엄격히 돌아보라!


쉬고 싶은 날들.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 순간 나는 다른 누구의 충고보다 청양고추가 주는 강한 자극에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 아직 살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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