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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30. 2016

제주 저지문화예술인 유령마을

예술이 소외를 부르며 한적한 별장만 남은 껍데기 문화공간을 둘러보며

제주현대미술관과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을 둘러본 소회


제주의 한경면 저지리는 소위 핫한 곳이다.     


실체는 모르지만 문화예술인 마을이 있고 제주현대미술관이 생뚱맞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올레길이 3군데나 교차하는 올레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저지오름이라고 하는 가벼운 산책코스의 시작점이자 근처에 오설록이 있어 버스나 자동차로 지나며 눈과 귀에 낯설지 않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 어떤 이유를 대도 제주도 다른 지방의 노인네 몇몇은 다른 평가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지를 사람이 살만한 장소가 아닌 소나 말들이나 살아야 어울린다는 깊은 산골로 표현하던 극단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도 뭔가 개념이 서있고 문화적 날카로움이 존재하는 근거지일 것 같은 이유는 문화예술인마을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치 때문이기도 하다. 뭔가 예술인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동경심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저지 마을회관 앞은 낯설지도 않다. 익숙한 동숭동이나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어디쯤으로 생각하기 쉬운 심정적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회관으로서도 그럴듯한 모양새도 그렇거니와 꽤나 깊은 한경면의 교통 불편한 장소에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자리 잡고 있으니  나와 감성적 코드가 통할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기대심리가 작용한다.       


하루를 보내기에 큰 문제가 없을 듯했다. 저지오름을 오르고 제주현대미술관과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을 둘러보는 스케줄은 나쁜 구성은 아닌 듯 싶다. 약간의 운동과 문화적 경험 그리고 문화향기 가득한 곳에서의 산책. 괜찮은 구성이 아닐까.


뭔가 개념이 서있고 문화적 날카로움이 존재하는 근거지일 것 같은 이유는 문화예술인마을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치 때문이기도 하다


저지오름은 별도 이야기하기로 하자. 다소 심심한 마음을 달래며 마을회관 앞으로 돌아왔다. 그 장소가 내일 다시 와서 저지 마을에 관한 회의를 할 장소라는 점을 미처 깨닫지는 못했지만 시작점으로 삼기에는 부족함 없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특히 그 앞에 자리한 버스정류장의 커다란 팽나무 두 그루는 내가 몹시도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암튼 그 자리에서 5분도 채 안 걸리는 곳에 제주현대미술관은 자리 잡았다.  현대적인 느낌이 약간 부족하기는 하지만 과천의 현대미술관의 느낌을 조금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입구로 들어섰다.     


돌을 쌓아놓은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하게 돌 2개를 쌓아놓은 것인데 사람의 느낌이 산다. 아니 그보다는 유령이나 귀신의 느낌이 난다. 좋은 말로 하면 정령이다. 아마도 돌의 색이 어두워서 주는 느낌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순간 일본 만화 '원령공주(모모노께 히메)'에 등장하는 숲의 정령들인 '고다마'가 생각났다. 일본 애니를 너무 많이 본 때문인가.     

날씨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약간은 습한 기운을 안고 박물관 앞에 도달했다. 올라오는 입구까지 현대적인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한적한 시골의 넓은 관광지나 유원지 입구에 온 기분이 든다.     


미술관은 다행히 내가 알만한 '김흥수 화백'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많지 않은 작품이지만 마냥 생소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갖게 되는 동질감은 제주의 깊은 곳에서 갖게 되는 반가움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 외에 몽돌과 네트워크를 주제로 한 설치 미술류의 작품에는 큰 감동을 기대할 수 없었다. 아직은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길을 따라나서니 야외 전시장과 기프트샵으로 발걸음을 이끈다. 아무 생각 없이 기프트샵에 들러 약간의 눈요기를 하고 나오는데 마음은 못내 아쉽다.  이 서운함을 극복할 무엇이 없을까. 수많은 박물관의 기프트샵을 둘러보고 나오는 아쉬움이 여기에도 여전히 동일하다.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다. 사고 싶은 제품도 없거니와 구매자의 감각을 자극할 것 같지 않은 기프트용품의 한계를 보면서 현대라는 말이 주는 '세련됨'을 찾기에는 부족함이 먼저 앞선다. 그래도 이제 국립박물관에 가면 사고 싶은 게 몇몇 가지 생겼던 기억이 났다.


올라오는 입구까지 현대적인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야외 전시장으로 나왔다. 형형색색의 조형물과 조각품들이 정원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다. 순간적으로 발길을 옮기려다 주춤하게 된다. 색깔이 화려한데 비해 모양이 다소 이상하다. 순간 인상이 찌그러진다. 자세히 보니 제대로 된 모양을 가진 조형물이 하나도 없다. 마치 실험실에서 이종교배(hybridization)를 통해 다양한 종들의 돌연변이를 만들어낸 듯한 모양과 기괴한 몸통을 결합시킨 비 현실적인 조형물들이 늘어져 있다. 이것을 예술적 상상력이라고 부르는 데는 동의하고 싶지 않은 모양새들이다.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왜 저런 조형물들을 세워놓고 방문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술이라기보다는 흔히 공상과학만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기괴한 과학자의 집착이 만들어낸 이상한 동물들의 모양을 전시해 놓은 착각이 들었다.  열대림 안에서 자신만의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기괴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H.G. Wells의 소설 '닥터 모로의 섬'과 주연의 맡은 마론 브란도의 음울한 영화 장면들이 기억난다. 90년대 중반의 오래된 영화로 인간이 스스로 창조자가 되기 위해 만들어낸 기괴함의 내용이었다. 더 오래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것을 상상하기 전에 그 동물들이 겪을 고통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이처럼 터무니없는 조형물을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내걸지 않았으리라 싶다.     


현대의 예술이라는 것이 기괴함을 포함해야 의미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머리가 꽃 모양인 사슴, 개구리와 트리케라톱스를 결합시켜놓은 모양, 송아지의 몸통만을 연결시켜놓은 조형물 등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당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한마디로 불쾌함이 다가온다. 예술의 이름으로 너무나 성의 없는 단순한 차원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물이다.  

   

눈으로 훑어보고는 잰걸음으로 마당을 빠져나왔다. 이젠 어디로 갈까.    

 

휑덩그레한 마을의 한 중간 길에 정체모를 나무 이정표만이 곳곳을 가리키고 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거니와 그것들이 뜻하는 바도 모르겠다. 마을 지도를 보며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커다란 마당에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별장풍의 다양한 집들이 띄엄띄엄 소똥 떨어져 있듯 널려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어를 새겨놓은 돌과 돌탑들이 집 입구에 서 있지만 '이곳으로 오시오'라기보다는 '이곳부터는 너희가 올 곳이 아니니 돌아가시오'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넓은 정원과 한적함 그리고 누군가 편안함으로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음직 하지만 외부인과는 철저한 격리를 전제로 하는 다양한 공간과 집들이 넓은 땅을 점유하며 자리를 잡고 있다. 집집마다 택호가 있는 모양인데 잘 모르는 한자와 의미라 눈길이 가지 않는다.


커다란 마당에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별장풍의 다양한 집들이 띄엄띄엄 소똥 떨어져 있듯 널려 있다


문화마을이라는 이름 하에 아주 저렴하게 이미 사회적인 명성과 부를 가진 육지의 예술가들에게 극히 저렴한 가격으로 택지를 분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곳을 문화예술인의 거리로 만들어 가겠노라는 의도였던 모양이다. 한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픈되기도 했고 몇몇이 써놓은 블로그로 인해 멋진 구경거리가 있다는 듯한 통속적인 여행기를 본 적이 있기에 나 역시 그러리라고 믿었던 터였고 그 정체가 궁금했었다.     

거리를 거닐며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문화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명예와 부를 가진 문화인들의 별장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문화적 행태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물론 초기에 분양을 받았던 사람들도 이미 되팔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리에는 길을 정비하는 공사 용역을 하시는 분들과 나와 같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이곳을 들른 몇몇 분들이 거리를 걷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또 집집마다 잔디를 정리하거나 조경을 정리하는 분들, 아마도 이분들 역시 집주인이 아닐 것이라는 인상이 너무나 강한 몇몇 사람들만이 눈에 띈다. 이곳은 공교롭게도 걸으면 걸을수록 늪으로 빠져드는 중압감이 조여 온다.     


문화란 이런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문화가 박제가 되는 순간 그것은 향유하는 몇몇 인간들의 치장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장소를 문화예술인마을이라고 소개하고 이를 재생산하는 글을 쓰면서 건물이 멋있다거나 정원이 좋다거나 전시회가 멋지다거나 등의 허울 좋은 내용을 소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어 진다. 이 마을에 관광객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와 예술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몇 블록을 걸으며 제주현대미술관 분원과 그 앞은 진 갤러리를 보면서 전시된 그림 몇 점을 살펴보았다. 전시장을 들러보며 웃음이 나왔다. 작품이 아니라 상황이 우스웠다. 그분들이 나름 유명한 작가들 일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앞서 다른 것이 먼저 들어왔다.     


아주 가물에 콩 나듯 찾아오는 갤러리 관람객들로 인해 무료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안내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들은 사람이 들어왔다는 사실로 인해  약간의 경계심과 반가움이 온몸에서 배어나온다.     


아내가 안내원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참 심심하시겠어요"

"네"     


안내원이 답을 한다. 웃고 있지만 웃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편한 직업이지만 하루 종일 앉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5분 정도를 머물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그 일이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 나름의 사정이야 알리가 없지만 그런 추측이 들었다.     


갤러리를 나오며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빨리 이 마을을 벗어나자"

"응"

"근데 이 마을은 이름을 바꾸어야 해. 이 마을의 이름은 문화예술인 유령마을이야"     


그렇다. 처음에 제주현대미술관입구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던 그 유령 같던 돌들의 기운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돌에서 느껴지는 유령의 기분과 기괴한 조형물이 주는 그로테스크함 그리고 마을 곳곳이 주는 생기 없는 박제화된 집들과 공간 활용에서 문화가 죽어있음을 너무 생생하게 느껴진다. 문화가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의 전형중 하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너무 우울하고 기분이 쳐진다. 두 번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 유령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온몸을 툭툭 털었다.     


"곽지로 쌀국수 먹으러 가자"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고 엑세레이터를 밟았다. 애꿎은 자동차만 과부하 상태로 속력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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