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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30. 2016

생명의 순간_강아지 나오는 날

강아지들이 세상으로 나왔다. 생명을 본 느낌이 새롭다.

저녁 무렵 아직 요가수업 하러 갈 시간도 아닌데 전화가 왔다. 아래층 사는 요가 선생으로부터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 수업에 함께 가지 못하니 알아서 오라는 전화다.      


“오늘 검도관에서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으려고 해서 먼저 가봐야 해요. 죄송하지만 따로 수업에 오세요”


내가 사는 집의 주인장이자 1층 식당의 사장님이기도 한 요가선생의 수업에 불쑥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이 지난해 말. 계속된 망설임 끝에 약속한 말이 있어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참석을 결심하고 무작정 나섰다.      


주인장을 요가선생으로 만났으니 이것도 내 복이다 싶어 게으름으로 단련된 몸에 충격을 주기로 한 것이다. 


요가수업은 한라대학교 근처에 있는 검도 도장에서 한다. 검도 수업이 끝나고 저녁시간에 아름아름 모이는 10명 정도가 매일같이 요가수업을 한다. 말이 요가수업이지 사실 초급수준의 스트레칭이다. 다른 숙련자들이 아닌 나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그 검도도장의 관장이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는단다. 견종은 골든 리트리버다. 요가 선생의 개 사랑은 각별하다. 자신이 키우는 라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친구역할을 하는 개가 새끼를 낳는다고 미역국을 끓여 갔다.  

    

강아지나 개를 키우고 싶은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의 집 개가 새끼를 낳는데 미역국을 끓여갈 정성은 없을 듯 싶다. 그만큼 의미있는 개 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검도장에 도착하니 10여분의 시간이 남았다. 입구에서 요가 선생을 만났다. 


“어서 오세요. 이집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같이 가서 보실래요?”     


생뚱맞은 제안이다. 어릴적에 동네개가 강아지 새끼를 낳게 되면 일부러 캄캄하게 해주거나 했던 기억이 있다. 어미도 자기 새끼를 다른 사람들이 못보게 하려고 사람들이 접근하면 평소와 달리 엄청 사납게 짖어댔던 기억들도 가지고 있다.      


“낳자마자 바로 봐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워낙 순하고 미역국도 줘야 하구요.”     


검도관 뒤편의 조그만 창고로 들어갔다. 그 앞에 건장하지만 깜깜해서 생김새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개가 사납게 짖는다. 낯선이들의 발자욱과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이 아닌 2명의 모습이 보이니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끼들의 아빠개라는 전언이다.


실내에 들어가니 어미개는 힘이 들고 지친 표정이다. 산모인 셈이다. 요가 선생이  머리를 만져주자 그대로 가만 있는다.      


흥미로운 점은 둘 사이의 교감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저 사람이 나를 보살펴 주러 왔다는 느낌을 온전히 전달받는다. 찬찬히 머리를 스다듬고 안스러워하는 표정을 받은 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출산의 고통이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표정이다. 새끼들이 엄마 가슴팍에 파묻혀 꼬물 거리는 것이 보인다.     


“4마리 낳았어요. 더 낳을 것 같아요.”


 더 낳을 것 같다는 말에 일단 나 같은 낯선이는 모습을 감춰주는 것이 불안감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오랜만에 보는 강아지와 어미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어떻게라도 해보라는 표정이다


다음날, 저녁을 먹고 따스한 이불에 잠시 누운 나를 아내가 흔들어 깨운다. 


“오늘도 요가 하러 가자.“     


가기 싫은 순간이다. 이불의 포근함을 걷어차고 온 몸을 비틀고 내 몸의 아픈 곳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어제 그 개 새끼 더 낳았어요?”

“6마리 낳았어요”


내가 보고 간 이후에 2마리를 더 낳았다. 6마리나 낳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검도관에 도착 후 새끼 낳은 곳을 다시 찾았다. 어제와 달리 녀석은 조금 정신이 든 모양이다. 밑바닥에 깔아준 종이박스위로 꼬물거리는 새끼들이 낑낑거리고 있다. 요가 선생이 바닥을 다시 정리해 주려니 어미개가 일어난다.      


다시 봐도 이 녀석 참 잘생겼다. 그냥 이쁘다는 느낌보다 강아지 도감에서 보는 듯하게 잘 생겼다. 골든 리트리버. 노리끼리한 털 색깔이 골든 리트리버라는 이름하고 너무나 잘 어울린다.     


어미개가 문밖에 잠시 나갔다 와서 자리를 잡으니 새끼들이 낑낑대며 어미를 찾는다.하나, 둘, 셋 ... 아내가 강아지들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어머, 저 강아지 좀 이상해요.”


아내의 지적에 요가 선생이 강아지 한 마리를 들어보니 강아지가 다리를 뻣뻣하게 뻗은채 움직임이 없다. 마치 사후경직이라도 일어난 듯 싶다. 강아지를 다시 어미 옆에 놓아두자 어미개는 그 강아지를 연신 혀로 핥고 입으로 옮겨보고 한다. 강아지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다. 추워서 그런 것은 아닌 듯 싶고 약하게 태어난 것인가. 안타까움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적자 생존의 현실을 절감한다.     


“관장님, 전데요. 한 마리가 이상해요. 죽으려는 듯 뻣뻣해요, 다른 한 마리도 심상치 않고요.”     


역시나 다른 한 마리도 남짝 엎드리듯 팔다리를 뻗은 채 움직임이 거의 없다. 잘 하면 두 마리가 다 죽게 생겼다.


마치 생쥐를 연상시키듯 눈도 못뜬 채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이 어미젖을 찾아 배로 파고든다. 그 와중에 어미는 움직임이 없는 새끼를 연신 핥아대다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어떻게라도 해보라는 표정이다. 저 어미의 마음은 어떠할까.     


“지난번에도 5마리를 낳고 한 마리가 약하게 태어나서 죽었어요” 


어미개의 출산경력을 알려준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집에 돌아왔다. 자그마한 생명이 이 세상에 와서 바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한 채 잊혀지는 순간이다. 그 사실조차 돌아오는 길에 벌써 잊었다.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 너무 쉽게 등을 돌려버린 느낌이다


집에 온지 10여분이 지나고 요가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밤중에 무슨 일이지 싶다. 다급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다


“그 강아지 살아났데요. 관장님이 바로 가셔서 따뜻하게 해주고 거의 2시간을 심장 마사지를 해줬더니 오줌을 조금 싸고는 살아났데요. 지금 어미 젖 빨고 있데요. 다른 한 마리도 마사지해주니 다시 살아나구요. 일찍 발견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와,,,다행이다. 너무 잘됐어요”     


죽어가는 듯한 작은 생명이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됐다니 괜실히 더 기쁘다. 생명은 어떤 순간에도 소중하다는 것, 그러기에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 너무 쉽게 등을 돌려버린 느낌이다.      


녀석이 식식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대신 좀 더 생명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욕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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