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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04. 2016

제주 4.3 추념식을 다녀오다

나는 왜 4.3 추념식장을 찾는 것일까.

예상대로 찌뿌듯한 날씨가 점점 더 짙어온다. 분명 비는 내린다 했으나 아직 내리고 있지는 않다. 4.3 추념식장을 향해 가는 차창 밖으로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기념식이 끝날 때까지만 참아주면 좋겠는데 이 같은 상황이라면 중간에 내릴 것이 뻔하다.


봉개동을 올라가는 길은 여느 제주의 봄길과 마찬가지로 벚꽃이 한창이다. 흐릿한 하늘색과 벚꽃의 색은 언뜻 스스로 환상에 빠지려만 하면 비슷한 종류의 색조다. 하늘이 도로까지 내려앉거나 온통 하늘이 꽃이 되어 버린 모습이다.


이미 추념식장은 온갖 자동차와 유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과 가방에 음식을 싸들고 올라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등 제주도 전역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실제로 각명비 등에 새겨진 마을의 이름을 보며 아이러니하게 나는 제주의 마을을 배운다. '이런 마을도 있구나'


왜 4.3 추념식장에 가려하는가. 가는 내내 이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더 이상 취재라는 명분과 상관없다. 추념식장에 가지 않는다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일이다. 


지난해는 안개가 무지막지하게 끼었다. 한 치 앞도 구분이 안될 상황이었다.  1m 앞도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추념식이 열렸다. 올해는 대신 비가 내린다. 그 슬픔을 아는 듯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내릴 것 같다.


다시 원위치. 나는 왜 4.3 추념식장에 가는가.  나에게는 의무감이 없다. 혹시 추념식에도 갔다 왔다는 자기만족인가.


공교롭게도 제주에 내려와서 관광객들처럼 나 역시 수많은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이미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4.3이지만 그것을 실감하기란 사실만큼 감정적 몰입은 쉽지 않다. 제주시내 가까이에 있는 곤을동 마을 터부터 다랑쉬 오름의 이야기, 광치기 해변에 가도 역시 4.3의 흔적을 본다. 그러나 마치 관광객이 박물관에서 문화재 보듯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든고 본다. 특히 관광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외지인들에게 제주에서 가장 언급하기 힘든 이슈가 4.3과 강정에 대한 이야기다. 육지에 있으면 그 같은 사실조차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알고 있다 해도 극히 단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주에 내려오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제주의 모든 사람들은 다 관련이 되어있다. 가능하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평상시에 4.3 평화공원을 찾는 것과 추념식에서 관련된 분들을 보는 것은 느낌이 매우 다르다.


평상시에 바라보는 4.3 평화공원은 숙연하기는 해도 역사적인 사실에 더 가깝다. 반면 추념식장의 4.3은 제주의 현실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찾아 꽃을 놓고 술을 올린다. 앉아 흐느끼는 할망도 보게 되고 비석을 쓰다듬는 분들도 본다. 


구경꾼으로 추념식을 찾은 나는 본 행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 내용은 일반적인 기사에 자세히 나올 테니 말이다. 정치인중 누가 다녀갔고 누가 어떤 말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내가 다시 언급할 이유가 없다.  60여 년 전 가족 중 누군가를 어이없이 잃고 그 한을 가슴에 담고 사는 모습을 볼뿐이다.  


위패봉안실에서 옆에 선 할머니가 안타까움으로 가족을 이름을 찾는다. 

"여기에는 왜 고씨 밖에 없어. 김씨는 어디가 있는 거지?"

할머니는 다음칸 위로 올라간 김씨 성이 못내 보이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찾으시는 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김만옥이야"

찾아보니 다음 칸 위에서 세 번째의 한 가운데 이름이 있다.

"할머니 위에서 세 번째 줄 있죠. 그 줄 한 가운데 있어요"


할머니는 그제야 한참을 그곳을 쳐다보고는 가져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술을 꺼내 그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서 계셨다. 나는 슬며시 그분 옆을 벗어났다. 그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었다.

제주도는 활황이고 모든 곳이 관광과 개발의 붐으로 새로운 도약기에 있다. 그 발전의 특징 중 하나가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꾸는 일들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물론 기존의 집이나 자연물도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급격하게 도시화의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 와중에 4.3의 흔적이 지워진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제주의 개발과 발전을 뭐라 말할 일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아직까지 가슴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적 현실이 과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여전히 정치적 이슈가 되고 이념갈등의 불씨로 쓰려는 의도가 있는 상황에서 과거로 묻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화공원이 지대가 높아서이겠지만 벚꽃에 앉은 까마귀들은 참 묘한 분위기의 장면을 연출한다. 예부터 동아시아의 까마귀는 영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올해도 수많은 영령이 저 까마귀들을 통해 가족들을 보고 있겠구나 싶어 자꾸 눈길이 간다.


엘리엇의 '잔인한 4월'은 황무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남도의 섬과 바닷길에는 여전히 격랑으로 휘몰아치고 있다. 곧 4.16이네. 이는 또 어떻게 넘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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