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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l 04. 2018

쭉 뻗은 삼나무 숲길을 걸었습니다

송당 민오름에서 만난 제3의 사나이

쭉 뻗은 삼나무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말을 들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 당시의 느낌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길을 머뭇머뭇 거린끝에 쑥 걸어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민오름이라고 도로에서 바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숲입니다.

쭉 뻗은 길을 볼 때마다 늘 생각나는 영화는 제3의 사나이라는 오래된 아주 오래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비록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도시의 우수 어린 느낌이고 이곳은 시골이지만 길이 주는 묘한 우수는 왜 그런지 전혀 상관없는 두 장면을 오버랩시키게 됩니다.

백약이 오름의 뒤편 길을 다녀와서도 그 느낌을 지우지 못했는데 이 길 역시 그 영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방역으로 인해 출입을 삼간다는 표지판이 걸려있어 

누구든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사유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입구를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약간의 어두운 느낌을 만들어 냅니다.  그 길이 연이어 이어지는 느낌.

아마도 이 길을 걷는 느낌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길 양 옆은 철망이 처져 있거나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양쪽이 넓은 초원으로 너른 목장지대라는 점이 길과 더불어 대비된다.


우수만으로 길을 설명할 수는 없다. 왼쪽의 울타리 안쪽에 소들이 가득하다. 한가하게 풀을 뜯는 녀석들이 과연 행복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이 여유로워 보이는 것을 부정할 방법은 없다.


이 같은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가 한때는 풀밭을 뛰어놓던 소들의 한가한 모습이 신기하고 경이롭곤 했는데 이제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녀석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오늘도 몇몇의 인간이 나를 구경하며 지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이리라.


꽤나 먼 거리. 10분 이상 되는 것 같던데... 정작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 길을 기나다 보니 이승만 별장으로 향하는 왼쪽의 길이 나온다. 그 위가 오늘의 목적지인 민오름이다.

한가하게 풀을 뜯는 녀석들이 과연 행복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이 여유로워 보이는 것을 부정할 방법은 없다

제주에는 붉은오름만큼이나 민오름이라는 이름도 많은 것 같다. 이 이름이 그리 쉬워 보이나 최소 3개 이상의 민오름이 있는 듯하다. 


암튼 이승만 별장으로 향하는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아담한 별장과 너른 잔디밭이 나오고 모든 이들의 시선을 이끄는 커다란 나무가 나온다. 팽나무 제주 이름으로 퐁낭.  이 나무의 품격은 감탄을 자아낸다. 주변의 멋진 풀밭도 좋고 홀로이 독야청청  버티고 있는 나무와 그 흐드러진 멋스러움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런저런 방향으로 나무를 둘러보지만 어느 방향에서든 나무는 고고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 나무가 없었다면 이 별장의 가치는 급전직하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방향으로 나무를 둘러보지만 어느 방향에서든 나무는 고고함을 잃지 않고 있다

때로는 바람 가득한 풍선이 매달린 모양으로 때로는 멀리멀리 자신을 벗어나려는 모양으로, 불균형을 통해 언발란스의 멋을 드러내려는 모양으로 방향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과 풍취를 드러낸다. 참 잘난 나무다. 주변의 연두와 초록의 차이와 조화를 느껴보는 재미도 솔솔 하다. 색이 푸르르다는 말과 색이 깊다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색이 진하다고 무조건 깊다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 이승만 별장


등록문화재 제113호, 1958년 건립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머물렀던 것을 계기로 이승만 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와 그 주변에 조성된 울창한 나무숲은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는 듯하다. 두 가지 기쁨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쌍희(쌍희)'자와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기를 기원하는 회문장식 등 우리나라의 의장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1950년대 이후 나타나는 서구의 모더니즘 주택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별장 옆으로 조그만 산책로가 열려있다. 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오르다 보면 많은 오름 사이에 차이가 없다. 특히나 숲으로 이루어진 오름의 경우 소나무나 기타 나무들로 하늘이 가려진 길을 걸으면 숲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비탈이 있지만 들어오는 길을 천천히 걸어와서인가 마지막 남은 고비를 넘는 느낌이다. 구비구비 정상을 향해 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 눈앞이다. 정상이라기보다는 분화구라 해야 맞다. 여름이 코앞임을 알도록 모든 풀과 나무들이 에너지를 뿜어낸다.

정상이라기보다는 분화구라 해야 맞다. 여름이 코앞임을 알도록 모든 풀과 나무들이 에너지를 뿜어낸다

능선에 오르니 온 둘레가 풀로 가득하다. 허벅지나 허리 수준의 높이를 자랑하는 잡목과 풀들이 가려져있지만 아래쪽으로는 얇은 소로가 눈에 뜨인다. 이 길을 따라가면 한바뀌를  돌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올라오는 길과 달리 내려가는 빠른 길을 돌아 차를 세워둔 곳까지 가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게다.

거슨새미와 뒷편의 안돌,밧돌 오름이 보인다.

특별히 어려운 공간이 없이 능선을 이어가는 소로는 오름의 끝자락을 향해 가더니 갑자기 내려가는 방향으로 길을 바꾼다. 길을 잘못 들었다. 이대로 내려가다가는 아까 방목 중인 소들과 만나게 되리라.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가다 뒤를 돌아보니 내려온 길의 흔적이 아득하다. 아차 싶다. 이대로 내려가면 어디가 나올지도 모를 터이지만 반대편 능선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아쉽게 하산하는 꼴이 된다. 고민이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운 일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이다. 머뭇거리는 사이 조금씩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하면 이미 되돌아 갈 길에 대한 미련과 앞길을 헤쳐가는 어려움 중에 현실로 닥친 일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중간에 멈춰서는 일은 말로는 쉬워도 참 어려운 일이다. 올 초 교래 곶자왈을 다녀오다 느낀 바가 이런 내용이었다.


이대로 내려가면 어디가 나올지도 모를 터이지만 반대편 능선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아쉽게 하산하는 꼴이 된다


머뭇거리다 뒤돌아섰다. 험한 하산길을 마다하고 오던 길로 뒤돌아섰다. 되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과 달리 너무 낯설다. 이 길을 내가 왔던가 싶다. 돌아가다 보니 능선에 오르기 직전 올라온 마지막 출구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거닐다 첫 출발지를 찾았다. 그 지역의 주변을 둘러본다. 새로운 이정표로 숙지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내려갈 때 또 헷갈릴 것이 뻔하다.


주변을 둘러보며 반대편 능선길을 택했다. 이제 보이지 않던 백약이오름과 좌보미 그리고 멀리 돌리미와 비치미, 그리고 개오름도 보인다. 다행이다. 내가 아는 오름들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고개를 삐죽 내미는 기분이다. 길은 여전히 숲이 되어버린 풀밭이 이어가더니 다시 이곳도 하산길이다. 소나무 길로 이어진 길이 중간에 헷갈린다. 이길로 내려가면 오던 길과 달리 바로 출발점 근처일 듯싶은데 길이 묘연해지니 고민이다. 예전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마구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련만 왠지 모르게 힘이 나지 않는다.  내 주변에 머뭇거릴 일이 뭔가 많아졌는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머뭇거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순간  제주에서 내가 지내온 생활이 나를 충분히 보수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기득권조차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을 만드는가. 기득권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우스운 생각이 든다. 년세이긴 해도 살 집을 마련했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직장을 다니고  주변의 지인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간간히 신문에 글도 쓰고 있어서 보수적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지랄도 풍년이라는 생각과 함께 헛웃음이 나온다.


사소한 기득권조차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을 만드는가. 기득권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우스운 생각이 든다


다시 방향을 틀어 출발지를 향했다. 왕복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풀과 나무들에 좀 더 집중한다. 저 멀리 보이는 소 목장의 모습과 숲 너머의 또 다른 오름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올라왔던 길을 내려오려니 이렇게 오래 올라왔던가 싶다. 그래도 아래 익숙한 퐁낭이 보인다. 다시 봐도 멋진 나무다. 시원한 색을 느낄 수 있다. 잠시 다시 한번 머물다 출발지로 향한다.


나오는 길. 부자처럼 보이는 두 명이 내 앞을 스쳐 지나며 나를 쳐다본다.  뒤를 이어 조금 나이 든 남녀가 나를 오랫동안 쳐다본다. 들키지 않은 관계라도 되나. 왜 이리도 나를 의식하는 것일까. 길이 긴 만큼 생각의 여운도 길어지나 보다.


삼나무 길을 쭉 걸어나간다. 모든 길들이 이토록 일직선이긴 쉽지 않지만 일직선으로 뻗은 길은 흥미롭고 여운을 오래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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