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둘러보는 소회
여행을 가는 일은 도시의 찌든 생활을 벗어나 대자연의 품을 느끼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설정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가 봄꽃이 피거나 여름 바다, 만추, 눈 내린 설산 등 경치를 보기 위한 관광은 언제나 여행의 주요 코스다.
도시의 디테일을 찾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서울 생활을 30년 이상을 하면서 어디 음식이 맛있고 가끔 강남, 홍대 앞, 이태원 등의 번화가를 찾는 일이 대부분의 외출 이유였고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도시에서 갖게 되는 관심의 대부분이었던 점에 비하면 조금 낯선 상황이다.
제주로 내려와 육지를 나가는 일이 업무가 돼버렸다. 그 덕에 도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려 애쓴다. 조금씩 도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십수 년 만에 지나게 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다 발걸음을 돌려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선다.
인사동 옆 새롭게 ‘힙한’ 장소가 돼버린 익선동을 방문한다. 상상치도 못한 분위기와 인파에 깜짝 놀란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의 정취를 느끼려 모여든 사람들에게 거리가 완전히 점령당했다. 서울의 북촌과 서촌, 이화마을 등 도시 관광객들의 관심이 옮겨 다니고 있다는 결론이 선다. 그 덕에 한옥들은 카페가 되고 음식점이 되고 옷가게가 되고 소품숍과 빵집이 됐다. 좁디좁은 골목길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SNS용 셀카를 찍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도시 곳곳의 숨은 곳을 찾아 나서는 인파들이 어느 때보다 영향력이 커졌다. 이미 잘 알려진 전주 한옥마을이나 감천마을, 동필항, 김광석 거리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도시는 물론 중소 도시의 수많은 곳에 도시를 탐방하는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도시 재생과 도시 관광이 패키지가 되고 새로운 트렌드가 돼버렸다.
단순히 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찾는 곳에는 ‘킬러 콘텐츠’가 있다.
부산의 이바구길에는 한국전쟁 피란 시절의 기억과 흔적이 있고, 김광석이라는 가수는 대구 거리의 대표 인물이 됐다.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군산의 기억이 됐고, 쇠락한 조선산업이 부산 영도를 바꾸는 모티브가 됐다. 철물공장, 물류창고가 도시의 기억을 넘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개발로 이뤄진 도시, 아파트로 가득한 동일한 모양의 도시에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 뒤돌아볼 새도 없이 똑같은 모양의 삶을 추구하는 순간에도 각 도시에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역사와 문화가 쌓였다. 이제 그 쌓여진 경험의 가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관광이라는 이름 하에 좋은 경치를 찾겠지만 더불어 사람들이 쌓아 놓은 삶의 층이 겹쳐진 곳에 도시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셈이다. 100년이 넘은 건물의 벽면을 새롭게 페인트칠하는 것보다 예전의 벽면을 살리고 그 느낌을 찾아내는 창고와 병원에 앉아 사람들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예전의 타일을 그대로 보전하고 시간의 흐름을 담은 재봉틀과 거울이 놓인 곳에서 사람들은 디자인을 말하고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제주의 원도심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연예인이 들렀던 곳이기에 찾기도 하고 옛것이 보존된 느낌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 주요 목적이 이 장소와 기억을 보기 위함은 아니다.
제주도가 가진 도심의 이야기를 찾는 작업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무게와 크기는 아직 커 보이지 않는다. 도시가 스스로의 매력을 뽐내는 방식이 바뀌었다. 비록 투박하기는 하지만 생존과 생활을 위해 필요로 했던 아무것도 아닌 경험과 흔적들이 도시의 매력이 되고 있다.
여행이나 관광이 경치를 구경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제주의 도시가 다른 이에게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ilbo.net) 2018.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