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이 살아있는 오사카의 기타카가야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별 탈이 없는 한 그대로 있을 것이다. 100년 넘게 그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니. 잠깐 사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 정도까지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를 일이다. 오래된 도심이 쇠락해서 잊혀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 안에 삐죽이 순을 내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온전히 잊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거리다. 오히려 많은 것을 기억하고 사용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훨씬 강하다.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의 남쪽에 있는 기타카가야 지역은 소위 오사카의 원도심이다. 조선소로 융성했던 지역이었으나 조선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이제는 예전의 영화와 오래전부터 살아온 흔적들만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 거리를 걷다 나는 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심이 아름다운지를 알게 됐다. 물론 이곳의 다른 기능들을 파악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단순히 도시의 겉 표면을 훑어보더라도 삶의 흔적과 그 안 깨알처럼 숨겨져 있는 소소한 즐거움에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왜 오사카의 이 지역을 잊어버리고 있었지...
이 지역의 한 곳을 리모델링하는 공사는 어쩌면 기존의 쇠락한 건물을 그대로 보전하는 방법을 찾는 듯한 느낌이다. 겉의 모양을 그대로 살리고 안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고치는 공사였는데 겉의 모습이라는 게 얼른 보기에도 너무나 낡고 그대로 놔두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그들은 그 외관을 그대로 보전하기로 결정했고 안의 공사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도심이 쇠락해서 잊혀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 안에 삐죽이 순을 내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온전히 잊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거리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치사마라는 이 지역의 독특한 회사 덕분이다. 지역의 상당 부분을 사들여 거의 절대 지주와 다름 아닐 정도의 부동산을 소유한 회사다. 부동산 및 비행기 임대가 주업인 이 회사는 지역을 개발하는 방식이 나름 독특하다.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추진한다. 더불어 돈이 되지 않을 듯한 사업에 선뜻 투자하거나 지역주민들의 사업에 참여한다. 도시를 재개발하려 하지 않는다. 좋은 회사로 보인다. 아니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상한 회사인 게 틀림없다. 슬로건이 ‘100년 앞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것도 예사롭지는 않다.
겉모습으로 도시와 지역을 훑어볼 경우 보게 되는 게 간판이나 독특한 가게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그 지역만의 특이한 경관이나 조형물이 있으면 더 좋은 일이고.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하나의 가게가 있었으니 담배가게다. 어린 시절 일반 동네 슈퍼에 붙어있거나 별도로 따로 떨어져서 열려있던 담배가게가 있었다. 조그만 구멍으로 돈을 내고 '청자 주세요" "환희 주세요" 등 담배를 달라고 이야기하면 안쪽 방 안에 앉아있던 주인장이 답배와 거스름돈을 거슬러주던 모습이 선하다.
송창식의 노래인 '담배가게 아가씨'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현존하는 가게라는 점이 내 눈길을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아... 저런 담배가게가 아직도 남아서 장사를 하고 있다니'
가게 이름을 보니 '마에다담배가게'인데 옆에 있는 찻집과 함께 운영하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건 가게 옆에 담배자판기가 2개나 놓여있는데 여전히 담배가게는 열려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얼마나 장사가 될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저런 가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정겨운지...
이 동네 거리를 무작정 걷다 만난 또 하나의 앙증맞은 코너가 도서관이다. 온통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여관의 입구에 놓인 Little Free Library이다. 주인장이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책 몇 권을 넣어둔 나무 상장에 자유롭게 넣어두고 빌려가서 보는 시스템이다. 기회가 되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어디가 좋을까.
여관 옆을 지나다 만난 광주리 리사이클링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예술적인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이걸 만든 사람도 어지간히 삶의 무료함이 가득한 것이 아닐까. 어쩌다 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생활예술가들의 범접할 수 없는 아이디어가 새롭다.
예술적인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이걸 만든 사람도 어지간히 삶의 무료함이 가득한 것이 아닐까.
마을 곳곳이 예술이다. 원래 예술마을을 주창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도시의 구력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축적된 모습일 것이다. 어느 마을에나 있음 직한 벽화도 재미있거니와 집 앞의 데크를 자유로운 모양으로 만든 것도 독특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아파트먼트 안에서 아트를 찾아내 시선을 끌도록 한 글자의 표시는 예술과 마을에 대한 애정을 저절로 연결시킨다.
이렇게 마을을 쳐다보니 별거 아닌 것도 독특하고 재미있어 보인다. 도시에 역사가 있다는 것은 무언가 내용이 켜켜이 쌓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다. 그 쌓이는 모습이 안테나를 모아놓은 장소에서도 느껴진다. 전파가 잘 잡히니까 모아 놓았겠지만 안테나를 아직도 저렇게 TV를 보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게 더욱 놀랍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아파트먼트 안에서 아트를 찾아내 시선을 끌도록 한 글자의 표시는 예술과 마을에 대한 애정을 저절로 연결시킨다
어느 골목을 들아서 무심히 걷다 만난 가게의 모습. 전면에 유리로 된 쇼윈도가 없으니 무엇을 하는 가게인지 알 수 없었는데 위에 놓인 안경모양의 간판을 보는 순간, 아 이 집이 안경가게로구나 바로 알 수 있다. 내부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볼 만큼 용기는 갖지 못했다.
무엇보다 코토하나라는 회사. 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회사의 모습이다. 부동산 관리회사가 무료로 빌려주어서 사무실로 쓰고 있다고 한다. 그 들은 이 마을을 대상으로 마을 사업을 하고 있다. 근데 어떻게 운영이 될까. 궁금하면서도 그들이 기여하는 옛 도심지역 마을의 모습이 정감으로 다가온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고 유지되고 있는지...
오사카를 최근에 다시 다녀오면서 화려하고 발전된 모습만 보게 되니 이전에 봤던 모습이 생각난다. 모든 도시가 다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오래된 도심도 어떻게 삶의 기록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뜻밖의 회사와 활동가들로 모여진 회사. 그들은 관과 아무런 관련도 없이 도시를 자신들의 의지로 열심히 살리고 있었다.
다음에는 여기를 다시 가보고 싶어 진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고 유지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