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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r 22. 2019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의 짜장면 맛은?

한 편의 광고가 만들어 놓은 관광 생태계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 마라도를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언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과 다름 아니다. 마라도는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 섬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 보다는 자전거나 차를 타고 완도의 땅끝마을을 다녀오듯  손쉬운 상징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경계 끝까지 가봤다는 기록일 것이다.  마라도는 한반도 남쪽 한계의 끝이다. 

마라도라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그리고 배를 타기 위한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라도행 욕구가 갑자기 솟아오른다


쌀쌀한 아침 날씨와 낮의 날씨가 현격히 다른 일교차를 보이는 날. 요즘은 일기예보를 보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미세먼지 때문이기는 하지만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혹시 우산이라도 들고 가야 할지 헷갈리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매우 추운 꽃샘추위 수준이지만 오후에는 햇볕이 쨍쨍할 거라는 예보를 보는 순간 어딘가 가기 힘든 곳을 가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약속한 지인을 만난 게 오전 9시다. 이 정도라면 제주도내 어디든 갈 수 있다. 기껏해야 한 시간이니 말이다.


경계 끝까지 가봤다는 기록일 것이다.  마라도는 한반도 남쪽 한계의 끝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숲길이나 오름 어딘가를 가는 게 맞지만 바다에 천착하고 있는 요즘이라면 일단은 바다 쪽이 우선순위다. 바다에 까지 생각이 미치니 제주도를 둘러싼 모든 해안이 거의 생각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섬이다. 가장 손쉬운 곳은 비양도지만 사실 그다지 매력이 없다. 우도는 관광객에 질려 별로 당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파도다. 들어가기가 쉽고 잠깐 다녀오기에는 좋은 장소다. 1시간을 운전해 새로 열린 운진항에 차를 댔다. 시간은 10시가 겨우 넘었는데 11시에 배가 있다. 그 중간에 마라도라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그리고 배를 타기 위한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라도행 욕구가 갑자기 솟아오른다. 마라도... 가슴속에 묻어둔 방문의 욕구를 순간 갑자기 불사 지르게 됐다. 목적지는 마라도다.


 상술로 인해 진정한 관광 혹은 여행은 의미가 여지없이 퇴색되어가는 현실을 알게 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10시 30분 배를 타고 가는데 섬에서 나오는 배 시간이 오후 1시란다. 운항시간 25분을 고려하면 섬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빠듯한 2시간이다. 그 안에 그 유명한(?) 마라도 짜장면을 먹고 섬 한 바퀴 돌고 배 타기 전 최소한 10여 분전에 선착장에 도착해 있으려니 남은 시간은 1시간이 빠듯하다. 한 시간을 머물자고 마라도에 들어가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매표소에서 뒤에 나오겠다고 하자 좌석 지정제라며 상황을 봐서 다음 배 시간에 좌석이 남으면 시간을 연기해야 한단다. 지정좌석제도 아닌데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 나중에 확인해본 일이지만 곧 성수기의 관광시즌에 사람들을 2시간 단위로 돌려야 들고나는 사람들을 꽉 채울 수 있고 그래야 효율이 좋아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술로 인해 진정한 관광 혹은 여행은 의미가 여지없이 퇴색되어가는 현실을 알게 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한 시간 늘려놓았다. 배에 승선한 사람이 반도 되지 않으니 자리가 부족할 리가 없을 일이다. 시간을 50분 벌었다.

마라도 도착은 매 멀미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에 이루어졌다. 해안을 나아가자 파도가 높다. 평상시 잔잔하다는 바다도 조금 멀리 나오면 이 같은 파도가 당연한 일일 것이다. 10여분이 지나고 쾌속선의 꼭대기에서 바다를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는 것도 서서히 느껴지는 울렁거림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지난여름 차를 몰고 내려오느라 완도에서 제주까지 태풍이 지난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탔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 배는 크기는 했지만 한 시간 이상 뱃멀미로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남는다. 무엇보다 이 같은 쾌속선은 싱가포르에서 빈탄으로 들어가던 아주 오래전 신혼여행 시절 40여 분간 쾌속선에서 질리도록 배 멀리를 했던 순간들을 기억나게 한다.


어쩌면 떠있다는 느낌과 괜히 큰 파도에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배는 가파도를 지나고 좀 더 넓은 바다를 향한다.  저 앞에서 비스듬히 기울어져 마치  전복 같은 느낌의 큰 덩어리가 임시로 떠있는 느낌을 준다. 마라도다. 2년 전 일본의 히메지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이에시마라는 섬을 들어갈 때와 느낌은 비슷한데 앞에 보이는 섬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이에시마는 채석을 해서 반만 남은 흉물스러운 뾰족한 섬이었던 반면 마라도는 평평한 땅이다. 그래서 어쩌면 떠있다는 느낌과 괜히 큰 파도에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도착한 살레덕 선착장의 물은 너무나 맑아 투명한 빛이었다.  이렇게 조금만 나와도 깨끗하고 투명한데 왜 인간들은 자신들의 터전인 바다를 그리도 못살게 구는지... 마라도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나와 같은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꽤나 큰 기대감을 주는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마라도에 도착해서 보게 된 너른 풀밭은 그 너머로 계속 이어진 바다와 태양광판이나 상가들의 일부가 보이면서 모든 판단을 한꺼번에 내릴 수 있게 해 준다.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다가 아닐까? 아무런 이용도가 없는 초지가 쭉 뻗어있다. 그 아래는 현무암이 푸르른 바다와 경계를 지으며 이어져 있다. 바다는 이 작은 섬이 가지려는 정체성을 그나마 지켜주려는 듯 푸르름과 짙은 어둠의 구분을 명확히 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마치 어디에서라도 부르는 듯 급하게 초지를 가로질러 상가를 향해 걷는다. 아마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심하게 주입된 때문인지 목적지를 알고 있는 듯 바삐 걷는다. 조금이라도 먼저 입도한 사람들이  선착장을 향해 돌아오는 모습과 막 도착한 관광객들이 선착장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교차하며 자그마한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나마 이 관광객들을 보내고 찬찬히 바다와 홀로 된 마지막 남도의 섬을 느껴보고자 게으름을 피워본다. 우도의 우도봉처럼 높은 봉우리도 없는 마라도는 약간의 기울기가 있는 마라봉(봉우리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음) 정상지역을 제외하면 그저 평평한 초지의 연속인 셈이다. 


조금이라도 먼저 입도한 사람들이  선착장을 향해 돌아오는 모습과 막 도착한 관광객들이 선착장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교차하며 자그마한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느낌을 받는다


초지를 지나자 마을이 나온다. 아니 상가가 나온다. 짜장면과 한과를 파는 집 그리고 편의점이 손님을 맞는다. 가게는 연이어 계속되면서 마치 부실하기 그지없는 가건물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가건물은 아닐 텐데 목조를 급조하거나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상가의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미국의 그 흔한 서부영화에서 말을 타고 낯선 마을로 들어서자 보완관과 마을 사람들 식당 점원 등등이 사람들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모양새는 조금 다르지만 서부영화의 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만의 착각일 테지만 그 착각은 아마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마라도 사람들의 생활은 절대 느낄 수 없으리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들에게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짜장면을 팔아주는 손님일 뿐이다. 나 역시 마라도에 도착해서 어디서 짜장면을 먹을지가 궁금했었다. 그 맛은?

마라도의 관광객은 쉴 새 없이 늘고 있다고 한다. 120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기도 안찰 노릇이다. 이 남쪽의 외딴섬에 일 년에 1백만 명 이상이 방문해서 약 2시간의 방문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방문객의 거의 대부분은 짜장면을 먹을 테고. 광고 한편이 관광시스템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었는지를 연구해 봄직한 충분한 사례인 셈이다. 관광 측면이 아니라 미디어의 영향력을 연구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일까.


아니다 다를까 가는 곳곳마다 짜장면집이 손님을 반기고 상당히 많은 가게에 손님들로 꽉 차 있는 것을 보니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족히 10곳은 넘을 텐데 이들의 경쟁  또한 대단히 치열할 것이다. 근데 다른 먹거리는 없나? 혹시라도 며칠씩 이곳에 묵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으며 지내야 하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없는 섬을 느끼고 싶은데 이곳에서 식사 끼니가 걱정이 된다. 차분함을 느낄 수 없다니 섬이 주는 고립감이나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너무나 단편적인 관광의 모습을 보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광고 한편이 관광시스템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었는지를 연구해 봄직한 충분한 사례인 셈이다


식당가를 지나자 다른 식당가가 나온다. 새롭게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상권도 확대되고 있는 모양이다. 커피숍도 보이고 무언가 새로운 건물을 열심히 짓고 있다. 펜션도 그럴듯한 곳이 있다.  그 어디를 가든 걷는 길은 바닷가를 돌며 천천히 걷는 산책길이 전부이다. 그 길이 30분이면 족하다는 주위의 말이 사실이다. 급하게 돌자면야 30분이 무에 필요한가. 그래도 섬에서 느끼는 기분은 누가누가 먼저 섬을 도나가 아니라 천천히 자신들이 방문한 이 섬에서 삶의 무엇, 혹은 하루의 무엇이나 한 순간의 무엇을 느끼고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관광객 역시 기계처럼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월 중순이라 많은 관광객이 오지 않아서 이 정도다. 안 그러면 오고 가는 관광객들로 줄을 서서 섬을 한 바퀴 돌다 배 타고 돌아가면 그만일 것이다. 

섬의 남쪽 끝자락으로 가자 많은 사람들이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예상대로 한반도 최남단이라고 쓰인 돌 팻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나 역시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이상의 남쪽에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는 없는 셈이로구나. 남쪽까지 내려왔다는 기쁨도 있지만 참 좁다는 생각도 가시지 않는다. 내가 꽤나 남쪽에 내려와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섞인다.


이윽고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썼던 부부가 결혼했다는 마라도 성당이 보인다. 나름 큰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흙으로 장난처럼 빚어낸 듯 자그마한 모양새다. 아담하다는 표현이 어울리겠구나. 그리고 당연히 있을 마라도 등대. 등대가 있으니 이곳이 정상인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맨 처음 출발한 살레덕 선착장이다. 벌써 한 바퀴를 다 돌게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돌아갈 수 없다. 중간을 가로질러 마을 안쪽으로 가보고자 한다. 마을이라야 몇 채 없는 주택에 식당가가 전부이니 예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육지를 그리워했으려나. 저 멀리 빤히 보이는 산방산과 송악산이 있는데 그곳조차 머나먼 저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너머의 육지는 얼마나 먼 심리적 거리를 가지고 있을까.


남쪽까지 내려왔다는 기쁨도 있지만 참 좁다는 생각도 가시지 않는다. 내가 꽤나 남쪽에 내려와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섞인다


이제는 점심을 먹을 차례 그나마 구력이 오래되어 보이는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짜장면 8000원 해물짬뽕 12,000원. 가격이 세다. 짜장면에 해물이라고는 오징어스러운 조각 몇 개와 해물짬뽕에도 홍합이 대부분인데 새우 2마리 그리고 또 오징어 몇 쪽. 역시 관광지 콘셉트에 관광지 가격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일말의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다시 방점을 찍기로 했다. 짜장면이 그렇게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평범한 맛이어서 안타까움이 생긴다. 인천의 짜장면 거리의 그 맛을 배워오면 좋으련만... 비싼 가격은 인정하지만 맛의 평범함에는 인정이 안된다. 마라도의 정체성을 어쩔 수 없이 간직하게 된 짜장면인데... 한 통신사의 광고가 한반도 최남단 섬의 운명을 이토록 바꿔놓은 것도 놀랍지만 그 콘셉트가 여전히 유지되고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은 마케팅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집착인 것인가.


식사 후 한 곳밖에 찾지 못한 커피집을 찾아 커피 한잔을 들고 정자에 앉아 바다를 관조하기로 한다. 4명의 청춘남녀가 나의 관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연신 떠들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그나마 오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젊은 여자 한 명이 혼자서 열심히 셀카를 찍는다. 식당에서 내 뒤에서 묵묵히 짜장면을 먹던 여자다. 혼자서 이곳까지 와서 여행을 다니다니 대단한 자기애라고 할 밖에...


선착장 앞에 도착하니 저 멀리서 쾌속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 다른 무리의 관광객을 잔뜩 싣고 선착장에 한 무리를 부리고 그만큼이 섬을 다시 떠난다. 2시간이 마라도에는 수용 가능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는 것은 어쩌면 마라도의 수용력을 넘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처럼 여유를 부리느라 섬을 벗어나는 시간이 길다면 계속해서 섬에 들어오는 관광객이 줄지 않는 상황에서는 섬에는 사람들만 자꾸 늘어나는 셈일 테니까 말이다.  


한 통신사의 광고가 한반도 최남단 섬의 운명을 이토록 바꿔놓은 것도 놀랍지만 그 콘셉트가 여전히 유지되고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은 마케팅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집착인 것인가


역시 이곳도 오후 늦게 와서 다음날 떠나는 스케줄을 잡아야 비로소 섬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후 늦게 다시 오고 싶어 졌다. 제주의 모든 섬은 관광으로 올 일이라기보다는 여행으로 와야 한다. 그래야 섬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마라도는 더욱더...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왔다 사진 찍고 가는 곳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짜장면 맛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섬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섬에 가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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